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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치킨이 아직 통닭이였을때..울 아빠와 통닭

작성일 : 2014-10-04 05:59:28
울 아빠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철이 없으신 분이니
나름 일관된 삶을 사셨다는 덕목 하나는 보유하고 계시나
그 덕목의 유탄은 오롯이 가족들의 몫이였다.
 
떨어져 있어도
별로 그립지도 않고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살가운 인사말도 대략 패쓰한
무심한듯 쉬크한 부녀사이가
아빠와 나를 관통하는 역사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비가 오는 주말이면
국민학교 교문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어찌어찌 남매를 자전거에 실어
정확하게 학교와 집 중간에 있던 통닭집에 데리고 갔던 삼십대의 아빠가 생각난다
 
잘생긴 외모
시골 부잣집의 막내 아들
으리 으리 좋아하던 박력남은
각박한 서울살이에
그 놈의 의리에 생까이고
날마다 커가는 아이들 틈에
먹고 사느라 같이 밥벌이 하느라 바쁜 마누라 대신
일주일에  한번 새끼들 목에 고기를 넘겨주려 왔던거 같다.
 
단골 통닭집에 들어가
닭을 시키고
뜨근뜨근한 닭이 나오면
각 부위별로 엄마 몫을 따로 챙기고
지난 주에 먹다 킵핑해 놓은 소주 반병을 찾아 한 잔 따르면
우리 남매는 하이에나 새끼들처럼
오골오골 고기옆에 모여 앉아
통닭을 뜯곤 했다.
 
부른 배를 두들기며
집으로 돌아 오면
피곤한 일상에 늘 기미가 끼어 있던 엄마가
일에서 돌아 와 있고
아빠는 무심한듯 쉬크하게 엄마에게
챙겨온 통닭봉지를 건네고 나서야,
엄마의 늦은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더랬다.
 
언젠가
아빠한테
그때 먹은 통닭만큼 맛있는 닭이 없다고 말했더니..
아빠는
다른 기억을 풀어 놓으셨더랬다.
맨 처음에는 통닭 반마리를 시켜도 많이 남았었는데
날이 갈 수록 우리 남매의 양이 늘어서
한마리 반을 시켜도 모자라는 지경이 되서야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더라는...
 
얼마전 동생넘이랑  통화를 하다가
남들에게는 못하는 아빠의 뒷담화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
아빠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 같아
뭔 복에..자기 한 일에 비해, 진짜 복이 많지 않냐?
아마도 전생에 청산리 전투에 참가해서 혁혁한 공을 세웠거나
혹여, 김좌진 장군일 수도 있어..
그러니, 자기가 한 것도 없으면서, 이리 많은 걸 우리한테 받지..
도대체 뭘 했다고..
엄마가 혼자 고군분투했구만..
 
모..이딴 말을 하다가
우리는 그 옛날의 통닭집 이야기를 하고..
 
동생은 그 옛날
국정교과서에 실린
눈밭을 헤치고 아픈 어린 아들을 위해
서러운 서른 살의 아버지가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 대신
통닭집 기름이 내 피에 흐르기 때문이라는 시를 읊어 대다가
그래서 내 혈전이 탁하다는 둥
이동네 저동네 다 훑던 뒷담화는 끝이 났더랬다.
 
 
좋은 기억들은 휘발성이 강해 날아가 버리기 쉽고
아프고 서러운 기억들만 가슴에 쉽게 남는다 했던가.
 
힘들고 괴로웠던 이야기들
구비구비 억울했던 사연들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플러스 마이너스해서
이리 비오는 날 생각나는 통닭이라도
추억 만들어 줘서 대견하우..아빠..
 
철이 없어도
아픈데도, 또한, 없어 다행이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겠죠.
 
언니들도
즐 주말~
IP : 72.219.xxx.35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무심한듯 쉬크함이여
    '14.10.4 6:02 AM (72.219.xxx.35)

    육아에 시달리며 오랜만에 쓴 글이..스스로 아까워서리

    평소 눈팅으로 고맙게 사연들을 읽던 사이트마다 올리고 있네요.

    미즈빌..그리고, 오유와 82쿡 세군데.

  • 2. ....
    '14.10.4 6:15 AM (116.41.xxx.57) - 삭제된댓글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저도 요새 늙어가는 아버지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화가 나서 울컥할 때도 있고
    짠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 3. 통닭의 추억과 더불어
    '14.10.4 6:33 AM (71.114.xxx.6)

    전기구이 통닭도 기억나네요.

    먹고 싶다!

  • 4. .....
    '14.10.4 6:34 AM (121.160.xxx.21)

    이 아침에 재미난 글 읽게 해줘서 고마워요..울아빠도 생각나구. 이따 전화한통 해야지.

  • 5. 아너무재미있잖아요
    '14.10.4 7:02 AM (183.98.xxx.95)

    글 너무 재미있어요 추억이 아련하면서도 유머가 살아있네요
    산수유대신 통닭기름 ㅋ 추억담을 반마리에서 한마리반으로의 변천으로 받아치신 아버님의 시크한 유머감각을 물려받으신 덕인듯요

  • 6. ...
    '14.10.4 7:19 AM (113.10.xxx.53) - 삭제된댓글

    저도 어릴적 아버지가 하얀 종이에 쌓여진
    영양센테 통닭을 사오시던 기억이 너무 좋아요.
    지금도 그 맛보다는 봉투에서 나던 냄새가
    너무도 뚜렷해요.

    입맛이 변한건지~
    몇년 전 그 추억의 영양센타 통닭집이 있어
    반갑게 들어갔더니 말라 비틀어진
    병아리 같은 닭이 맛이 없더라구요.

    냄새는 그 냄새였는데...

  • 7. 철이
    '14.10.4 8:02 AM (61.76.xxx.120)

    없어도 아픈데가 없다니 다행이네요
    그 아버진 지금은 뭐하슈? ㅎㅎ

  • 8. 5초
    '14.10.4 8:45 AM (173.63.xxx.63)

    어머! 반가워요. 저도 미즈빌 회원인데. 글 제목만 보고도 감칠맛나는 글솜씨 일것 같아 클릭했는데 정말 찡한 글이네요. 저도 사춘기때 아버지 막 무시하고 속으로 미워했는데 지금은 아버지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나네요. 8년 전쯤에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자식을을 위해 희생만 해서 정말 안태까워요. 어쨌든 옆에 계시니 잘 지내시길 바래요. 사람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사람 수준에서 가장 사랑을 많이 주는 방식이 자식에게가 아닌가 생각되어요. 근데. 오유는 무슨 사이트예요?

  • 9. 여기가천국
    '14.10.4 9:40 AM (219.240.xxx.9)

    오유는 오늘의 유머 줄임말이에요 ㅎㅎ
    감동적이에요. 시크하면서도 공감가는 ㅠㅠ
    저희아빠도 엄마를 무던히 힘들게 이기적으로 살고 자기하고픈거 다하고살았는데 한거에 비해 복이 많아요. 고생은 엄마 혼자 다했는데 말이죠.

    저희에게는 잘해주셨어요. 늘 자전거 태워주고 주말마다 캠핑가고 이뻐해주고 용돈도 몰래 주시고 그랬네요

  • 10. tods
    '14.10.4 9:48 AM (59.24.xxx.162)

    잘 읽었습니다. 글 잘 쓰시네요 ^^
    저희 아부지도 그 어느 댁에 빠지지않을만한 여러 사건사고기록을 갖고계십니다...
    저는 명동에 있던 통닭집하고 태극당 아이스크림빵이 기억나요.
    아빠 월급날이나 술 하잔 하신 날은 뭔가를 들고 퇴근하셨던것 같아요.

  • 11. 여기가천국
    '14.10.4 10:43 AM (219.240.xxx.9)

    월급날 술한잔하신날 뭐사가지고오심 22222222
    통닭 닭발 과자세트
    ㅋㅋ 먹을게귀하던시절 큰기쁨이었죠

  • 12. ..
    '14.10.4 10:45 AM (59.15.xxx.181)

    잘 읽었습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신 아버지...부럽습니다
    제 아버지는
    저한테 받지도 못하고
    곁을 떠나셔서
    더보고 싶네요..

  • 13. 그대여
    '14.10.4 11:15 AM (175.223.xxx.8)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슬픈 이야기는 모두 끝내요.

  • 14. 저도
    '14.10.4 12:01 PM (175.223.xxx.176) - 삭제된댓글

    님글 덕분에 아버지 생각나네요.
    파란만장 울아버지...

  • 15. 쮜니
    '14.10.4 12:34 PM (117.111.xxx.58)

    이런 글 넘 좋다는..,,ㅎ

  • 16. 에효
    '14.10.4 3:33 PM (123.99.xxx.250)

    매일 생각나는 아빠가 오늘 더 생각나네요...
    저도 통닭 사주시던 아빠가 보고싶네요.

  • 17.
    '14.10.4 4:58 PM (110.10.xxx.161) - 삭제된댓글

    한편의 수필을 읽은것 같습니다

  • 18. 갈색종이가방속의
    '14.10.5 3:06 PM (122.37.xxx.51)

    통닭이 참 먹음직스러웠죠
    어느새 치킨이 고유명사가 돼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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