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 한 개가 있었어요.
도자기에 은색 배경 깔고 하얗게 그려진 벚꽃무늬가 마음에 들고
입술에 닿는 감촉도 딱이어서
물이며 커피며 홍차며 녹차며 그 컵을 끼고 살았습니다.
내용물이 새고 긴 금이 간 걸 보았을 때는
10여년이 지나 있었지요.
막연히 똑같은 컵이 또 있겠거니 그릇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설겆이를 하다 보면 이건 어제 산 컵, 이건 오늘 산 컵.
아쉬움에 투덜거리는 내게
올케가 이사 선물로 원하는 찻잔을 선물하겠다, 백화점까지 돌고서야
아차...
그 컵과 저는 한 쌍의 조가비였단 걸 알았습니다.
예쁜 컵이 그렇게나 많고
사은품처럼 얻은, 비싼 물건도 아니었는데
그 컵을 잃고 2년이 된 어제까지 그 같은 '내 컵'을 다시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바자회에서 그 컵과 똑같은 컵을, 그것도 셋트로 보기 전까지는요.
제가 샀씁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기쁨의 엉덩이 춤을 췄씁니다!
어머니에게 컵을 보이며 자랑했는데 제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시네요. 상관없씁니다!
매대가 좁아선지 물건이 팔리면 다음 물건을 올려놓는 방식이어서
그 시간, 그 매대에 있지 않았다면 누가 먼저 사갔을 지 모릅니다.
실제로 옆에 분이 관심을 보이셨고요.
아마 매대에 내려졌을 때 제가 제일 처음 봤을 겁니다.
맞아요. 이 컵은 저에게 올 인연이었습니다.
오래 아낌받으며 사용된 물건에는 혼이 깃든다는 미신을 떠올리면
저는 정령이 깃든 컵과, 앞으로 정령이 깃들 컵까지 갖게 된 거겠죠.
기증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덧붙이자면, 그냥 평범한 컵이랍니다. 셋트였단 것도 모르고 한 개만 달랑달랑
어머니가 어디선가 얻어 온 한국도자기표 사은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