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번이 결혼하고 나서 세 번째 맞이하는 명절이에요.
첫 번째 명절은 추석이었어요.
양가 부모님들 차로 30분 거리 이내에 사시는데다, 차례도 안 지내고
'원래 부모님은 명절 대목에는 장사하시느라 음식준비 안하는데?'하는 남편의 말만 철썩같이 믿었어요.
평생 음식할 줄 모르던 제가 딴 건 못해도 약식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길래
명절 전날 오전에 약식을 시작했으나 약간의 시간조절 실패로 시댁에 도착한 건 오후 3시쯤...
어차피 음식 별거 안한다고 하셔서 편할대로 하라고 하셨었는데
시어머니 생각하시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거죠-_-;;
제가 만들어 온건 거들떠도 안 보시고 짜증을 막 내셔서 바로 저는 부랴부랴 전을 굽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전 몇 개 굽더니 텔레비젼 앞에 가서 빈둥거리고...
저는 원래 결혼하기 전에는 명절 연휴 끼워서 늦은 여름휴가를 가곤 했었는데,
(저희 집은 차례나 제사는 지내지 않았어요.)
결혼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유부녀의 현실을 자각;;;
원래는 안하던 음식을 산더미 같이 하시고, 그것도 또 저만 시키고...
밥 한 번 먹을 때마다 국그릇, 밥그릇, 반찬그릇 하여간 오만가지 식기 총출동 한거 설거지 하고
차로 2시간은 가야 하는 시외가댁 투어까지 한 다음에
연휴 마지막날에는 친청 갔다오는 길에 다시 들러서 시누이 부부 왔다고 밥 한 번 더 먹고...
하여간 그렇게 뭐가 뭔지 모르겠는 명절을 보내고 두 번째 명절인 구정을 맞이하기 며칠 전,
솔직히 남편한테 첫 번째 명절처럼 못 하겠다고 했어요.
왜 갑자기 안하던 것들을 결혼해서 하냐고, 원래 명절 그렇게 지내시던 분들 아니니
냉동실에서 굴러다닐 음식 만드느라 힘빼는 대신 좀 합리적으로 쉬면서 보내고 싶다고요.
이에 남편도 적극 찬성했으나 남편을 통한 시댁과의 커뮤니케이션 실패...ㅡㅡ
저 아침 출근길에 시어머니 전화오셔서 별별 얘길 다 들었어요.
하지만 결국 굳은 심지로 설날 당일 아침 찾아뵙고 아침 먹고 치우고 저희 부모님댁으로 출발.
저희 부모님댁에서 점심 겸 저녁 먹고 당일로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충분히 쉬었고요.
저 없었는데도 구색맞춘 음식이 조금씩 있는 걸 보니, 불고기만 재워서 하시고 전은 구입하셨던 듯...
이제 곧 세 번째 명절인 추석인데요, 일단 봉투에 용돈 좀 준비했고,
평소에 갖고 싶으시다던 효도라디오에 노래 꽉꽉 채워넣어서 선물해드리려고요.
그리고 전날 저녁에는 전골 해먹으려 하는데 괜찮으세요? 문자 보내놨고
추석 당일 아침에는 조조로 영화 보려고 계획했어요.
그리고 나서 아점 먹고 저희 부모님 댁으로 가는걸로.
원래 명절에 해왔던 가풍이 있었다면 차라리 저도 그러려니 적응했겠는데 그것도 아니고
사실 시어머님도 명절음식 하는거 좋고 신나서만 하시는 것도 아니란 걸 알거든요.
남편네 집 분위기가 허례허식 없고 소탈한 분들이라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도 있고요.
하여간 이번 명절에도 실험적인 시도는 계속 됩니다..
이러다가 보면 언젠가 명절이 괴롭지 않은 날도 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