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 수사권·기소권을 뺀 세월호 특별법을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7일 오후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 김병권 위원장은 병원 진료를 받고 있었다. 장기간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과 농성을 거듭한 탓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탓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야는 가족들의 입장과 전혀 다른 내용의 합의안을 발표해버렸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세월호 특별법상 구성되는 진상조사위에 수사권 및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고 현행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내용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 당초 대안으로 제기된 야당에 특검 추천권을 부여하는 내용보다도 후퇴한 내용이다.
김 위원장은 여야 합의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병원을 박차고 국회로 향했다. “고작 이런 반쪽짜리도 안 되는 특별법을 위해 우리가 지금껏 싸워왔던 것인가.” 참담한 심정이 앞섰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노감이 치밀어올랐고,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비대위원장에 대한 실망감도 감추지 못했다. 김 위원장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자식을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고 제 2, 3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게 (유가족이 제안했던) 특별법”이라며 “오늘 합의한 대로 본회의 처리를 강행한다면 조용히는 못 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 얼굴이 많이 안 좋아보입니다. 가족들의 실망감도 매우 클 것 같습니다.
“좋을 수가 없죠. 병원에 있다가 소식 듣고 깜짝 놀라서 뛰어나왔습니다.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진상규명을 하고 책임자 처벌을 할 수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입니다. 최소한 거기에 준하는 특검에라도 합의했어야 했어요. 그런데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이라니….”
현행 상설특검법은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그리고 국회가 추천하는 특검추천위원 4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 상설특검 추천위원회가 선정해 올리는 특검 후보자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상설특검법에 근거한 특검에게는 기대할 게 없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상설특검은 곧 정부가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결국 여야 4대3이 추천하는 특별검사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정한다는 것 아닙니까. 이것 자체로 진상규명을 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묻으려고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곡동 사저 구입 의혹 때도 90일 동안 특검을 하지 않았습니까. 제대로 됐나요? 이번에는 90일 더 플러스한다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걸 봐서는 잘 될 리가 없습니다.”
- 성역 없는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수사·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이 제정될 경우 가장 먼저 무엇을 조사했으면 좋겠습니까?
“대통령이 일곱시간 동안, 그 골든타임 때 어디에 가 계셨던 것인지가 가장 궁금해요. 또 청와대에서 정말로 대통령에게 보고를 제대로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기관보고 때 비서실장이 아무 이야기도 안 했습니다.
또 정말 국정원만 연결되는 통화 라인이 있었던 것인지, 노트북에서 나온 국정원 지적사항 100가지 나온 부분에 대한 진짜 진실이 궁금합니다. 정말 세월호가 국정원 것인지도…. 국정원은 아니라고 하는데, 떳떳하면 진상규명 통해 밝히면 되는 것 아닌가요?
세월호에서 노트북 나오자마자 유대균씨가 잡히고 (정부가 주장하는) 관련자들이 다 자수하는 그런 모습들이 모두 짜여진 각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회 본청 앞에서의 가족대책위 비상 회의 직후 새정연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와 전해철 세월호 특별법 TF 간사가 유가족들을 찾아 이날 합의를 결단한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입장을 대신 설명했다. 요지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협의 국면이 더 어려워질 수 있고, 그럴 경우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합의조차도 유가족들의 요구안보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유가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기존 방식의 특검에 대한 불신은 물론, 진상조사위를 가족들에 유리하게 구성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수사권·기소권을 갖고 있는 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 김영록·전해철 의원은 교황 방한 이후에 새누리당과의 협의가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했다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에요. 그런 식으로 퉁 치려고 하는 건 기만인거죠. 교황이 오기 전에 얼른 마무리를 지으라는 이야기가 청와대에서 내려오지 않았겠어요? 그런 식으로 합의할 거면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깐 차라리 합의하지 말라고 했어요. 10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요?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우리 아들, 딸들이 죽었습니다.
교황께서 돌아가더라도 우리는 수사권·기소권, 그리고 거기에 준하는 특별법을 계속 주장할 겁니다. 죽은 자식을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고, 제2, 3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특별법이에요. 또 400만 국민들이 서명으로 호응해준 특별법이고요. 이게 이런 식으로 시간에 쫓겨서 합의해야 하는 사안인지 묻고 싶습니다.”
-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은 13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합니다. 유가족들 의견을 무시하고 처리를 강행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될 때까지 광화문과 국회에 있을 겁니다. 얼마 전 국회 농성을 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렇게 여야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뺄 수가 없어요. 국회의장께 죄송한 말이지만, 국회 농성장도 끝까지 사수할 겁니다.
두 당이 오늘 합의한 대로 입장을 고수하고 본회의 처리까지 강행한다면 아마 조용히는 못 넘어갈 것 같습니다. 시민단체들과도 협의해서 효과적인 대응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8일) 야당 의원들이 논의를 한다고 하니 그 내용을 들어보고 최종적으로 판단할 겁니다.”
- 새누리당은 피해자지원특위를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새누리당이 유가족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시도해본 적은 있나요?
“전혀 접촉이 없었습니다. 새누리당이 선거 끝나고 피해자지원특위를 구성하고 개별 면담으로 가족들 이야기 듣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분명히 반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배·보상 쪽으로 이야기하려는 것 같은데, 우리는 수사권·기소권에 대한 논의가 아니면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미 선을 그었습니다. 자기들끼리 회의 해서 우리와 만나겠다고 여론몰이 하는 것인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가족대책위가 단식을 결정한 지 어느덧 25일이 지났다. 故김유민양 아버지 김영오(47)씨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싸움이다.
- 단식이라는 극단적인 투쟁 방식을 결정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지난달 12일에 우리가 국회에 특별법 입법을 청원하러 왔었어요. 새누리당이 내려왔는데 아무런 대안도 없이 왔더군요. 둘째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해놓은 안도 없이 우리가 하자는 건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었어요.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단식으로 가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 할 수 있는 싸움을 다 하고 있는데, 여전히 진상규명과는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위원장으로서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위원장으로서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마음이 참 착찹하고 아픕니다. 단식도 하고 국회 농성도 하고 국회의원들 혼도 내면서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니깐 ‘아, 정말 내가 죽어야 고쳐질까’ 하는 생각도 수없이 들어요. 내가 죽어야 된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단식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보수진영에서는 본격적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네거티브’에 돌입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의사상자 지정,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대학 특례입학, 평생 생활 보장 등을 유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보수진영의 여론전은 효과를 발휘하고 있으며, 꽤 많은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 보수진영의 ‘논점 흐리기’에 오해를 많이 받으셨습니다. 오늘 합의안에도 지원에 관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의사상자 지정, 특례입학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내용 다 빼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지금 중요한 건 진상규명이고, 그것을 위한 수사권·기소권을 조사위가 갖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는 없습니다. 진상규명 확실히 되면 잘잘못 밝혀지지 않겠어요? 이후에 의사자 지정해주고 싶으면 해주는 것이고 아니면 마는 거예요. 배·보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사상자나 돈 때문에 이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것 아니잖아요”
- 끝으로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국민들이 저희들을 많이 응원해주고 있는 부분에 대해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저희들한테 힘을 주셔서 이번 기회에 세월호 특별법으로 확실하게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게끔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