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아침에 봤는데...
사람들이 후덜덜. 천만, 아니 최고 기록되는게 아닐지...
연령층도 너무 다양하더라구요.
영화보고 난 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칼럼을 봤는데...
아주 좋은 칼럼이더군요.
알고보니 민주당 국회의원이던데...
이 사람, 원래 이렇게 글을 잘 쓰나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명량’이라는 영화가 인기다. 정치사회적으로 우리 시대의 리더라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마음에 희망이 아니라 많은 그늘을 드리우게 하다 보니 다시금 이순신과 같은 영웅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싶어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속으로 죄스럽다.
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의 3대 해첩 중 김훈 소설가의 ‘칼의 노래’에서 나왔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로 유명한 해전이다.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으로 조선 수군이 전멸하자, 선조는 백의종군한 이순신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한다. 조선 수군에는 고작 12척의 판옥선이 남아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선조는 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힘쓰라 권고하지만, 이순신은 필사즉생, 즉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라는 답변을 올린다. 그리고 결과는 300척을 동원한 일본 수군에 대항한 12척 조선 수군의 승리였다. 아니 이순신의 승리였다.
이 기적 같은 승리를 가져 온 이순신의 능력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300척과 12척이라는 비교는 단순히 숫자의 격차를 뛰어넘는다. 그 차이에는 절망과 공포, 두려움 그리고 승패에 대한 결말도 다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순신의 수군은 일본 수군을 대파했다.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긴 것이다.
이순신의 리더십을 고민하면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운주당’이었다. 운주당은 그의 집무실이자, 회의실이었다. 하지만 운주당은 그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한 편으로 그곳은 휴게공간이었다. 부하들과 늘 바둑도 두고 술도 마셨다. 군사전략을 논했고, 조선 수군을 이야기했으며, 군부대가 어떻게 돌아가고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를 온몸으로 들었다. 딱딱하고 격식이 차려진 회의가 아니라 자유롭게 바둑도 두고, 술도 마시면서 부하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가감없이 들으면서 조선 수군의 앞날과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했던 것이다. 운주당은 그래서 항상 열려 있었고, 일반 병사들도 찾아올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었다. 즉 이 운주당이 바로 이순신의 리더십이었던 것이다.
이는 원균이 이순신이 삭탈관직 당하고 백의종군 후 운주당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원균은 무엇보다 운주당을 부하들에게 폐쇄했다. 자신의 첩을 데려와 살았고, 부하들을 멀리했다. 술자리는 첩하고만 나누었고, 군사전략은커녕 부하들이 찾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그는 군사정보에 어두웠고, 군사전략은 병사들에게 전파되지 않았으며, 부하들이 칠천량 수전은 불가하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신들이 무서워 조선 수군을 전부 이끌고 바다도 나아갔다. 그리고 결과는 알다시피 조선 수군의 전멸이었다.
운주당은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와 정치가 나가야 할 방향과 같다. 우리 정치도 항상 혁신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혁신은 국민들의 눈으로 볼 때 형식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 변화와 진심을 이야기하지만 행태는 ‘원균의 운주당’과 가깝다. 이제 거짓 주인을 바꾸고 다시 운주당을 제자리로 돌릴 때다. 스스로 갇혀있지 않고 국민들 속으로 들어가 마음도 나누고, 온몸으로 듣는 것. 우리 정치에 ‘이순신의 운주당’을 기대해본다.
이종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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