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예요. 초딩 동창이니까 거의 30년 알고 지냈죠.
초딩 시절에는 베프, 단짝이라고 할만큼 붙어지냈어요.
저희 어머니가 그 친구에게 아주 질색하셨죠. 제발 그 아이랑 놀지 말라고.
근데 어린 저는 엄마가 왜 그러시는지 잘 몰랐어요.
공부도 아주 잘하고 집안도 좋고 어른들께도 예의바르고
친구들 사이에서 매력넘치고 재미있고 유쾌하고...
단지 친구를 편가르기 하고, 자기맘대로 휘두르려는 점이 있어서
그것때문에 제가 부대끼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고 좀 그랬어요.
그래도 그친구랑 놀면 재밌으니까, 엄마의 "걔랑 놀지 말라" 소리가 듣기 싫더라고요.
엄마는 그아이가 순수하지 못하다고 그러셨어요.
졸업후 오랫동안 연락 끊어졌다가 초딩 동창들이 대학 진학한 후 다시 뭉쳐 놀기 시작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낳고 등등등...
어릴때 친구들이라서 참 마음편하고 좋더라고요.
근데 다른 친구들은 어릴 때 친했던 것보다 더 친해졌는데
이 친구는 다 커서 만나니 예전에 엄마가 하셨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더라고요.
앞뒤가 다르달까.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한달까. 숨은 의도가 있달까.
표면적으로는 한없이 잘해줘요.
하지만 교묘하게, 저의 상처가 될만한 옛 기억들을 언급한다던가
(저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사업 망해서 한동안 어려웠던거라든지 아님 찌질한 실패한 연애사 같은거)
친구들 앞에서 저를 교묘하게 깎아내리는 말들...
교묘하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그리고 집안 좋고 시집 잘간 아이들한테는 굉장히 알랑거리면서
조금이라도 형편이 어렵든지, 부모가 이혼하셨다든지, 대학을 잘 못갔다든지 등등
그런 친구들은 아주 대놓고 상처주고요. 모임에서 따돌리고요.
저는 큰 부자도 아니고 큰 약점도 없어서 그냥 교묘하게 까는 정도...
근데 초등 친구들 모임이다보니, 서로 너무 잘 아는거죠.
그 아이의 그런 면에 당해보지 않은 사람도 없고요.
정작 그친구야말로 사기결혼 당해서 (너무 고르다가 사기꾼한테 딱걸렸음 --;;)
인생의 쓴맛을 옴팡 보고 폐인처럼 몇년을 살다가 겨우겨우 이혼했어요.
그러니 밉더라도 불쌍하다는 의미로 모임에서 오냐오냐 받아주었고요.
저도 그 아이가 그런 일을 겪었으니 안됐다, 철이 좀 들었겠지 생각해서 더 오래 참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기질은 어디 가지 않더라고요.
제가 어쩌다보니 그친구가 어린시절부터 오매불망 소망하던 바로 그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데
큰 부자는 아니지만 희귀하고 명예가 있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그 친구가 유난히 저를 타겟으로 삼아 들들 볶고 이랬다저랬다 한듯...
근데 되게 신기한게, 제가 몇번이나 그친구에게 불같이 화를 냈거든요?
저도 당하고 속으로만 꿍꿍 앓는 성격이 아니라서... 할말은 하고사는 편이라서요.
근데, 제가 화를 내면, 그친구는 정말 백퍼 납짝 엎드립니다.
니가 그렇게 생각할줄 몰랐다, 내생각이 짧았다, 모두 내잘못이다, 다시는 이런일 없을거다,
우린 오랜 친구잖냐, 죽을때까지 우린 배꼽친구다, 넌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다 등등등.........
조금도 변명하거나 억울해하지 않아요.
순도 백퍼센트의 납짝 엎드린 사과!!
하지만 그때뿐, 제가 누그러진 것 같으면 몇번 눈치를 본 후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요.
전 그게 되게 신기하고 기분 나쁘더라고요. 간보기 하는거.
근데 어찌나 알랑거리는지, 걔가 맘먹고 알랑거리면 넘어가게 돼요.
제 딸내미 옷이나 악세서리 같은거, 기막힌 안목으로 사다 바치고 등등등...;;;
물건이 탐나서 그런게 아니라, 얘가 이만큼 노력하는데 내가 넘 냉정한가 생각하게 되는거죠.
다른 친구들도 다, 걔 인생이 불쌍하니까 니가 참아주라고 말리고...
아무튼. 이십년 가까이 그런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제 쪽에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건 친구가 아니다.
남들은 참을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못참겠다.
동창 친구들과의 인연은 남기되, 이친구와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깨끗이 포맷하겠다.
피도눈물도없이!!!
그래서 작년이맘때쯤부터 이 친구의 전화를 안받기 시작했습니다.
문자도 씹고 전화도 안받았어요.
그랬더니 작년 제 생일에 정말 거짓말 안하고 하루에 열두번 넘게 전화를 하더라고요.
그래도 끝까지 버텼어요.
중간에 한두번, 제가 마트에서 계산한다든지 아님 지하철을 탄다든지
하튼 정신없어서 발신자 확인 못하고 한두번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더 놀랐던게
이친구는 마치 그 동안 내가 자기 전화를 안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냥 아주 일상적이고 당연한 안부전화라는 듯이
너무나 티없이 해맑게 살갑게 통화를 하더라고요.
제가 친절하게 받아주니까 더없이 안도하면서 끊데요.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 전화왔을 땐 절대로 받지 않았어요.
제일 놀랐던건, 이상한 전화카드를 사서, 발신자 번호가 아주 이상하게 뜨는 전화를 했을 때였어요.
그때 정말 놀랐고 섬뜩했어요.
듣도보도 못한 번호로 전화했길래 검색해보니 국제통신망을 이용하는 전화카드를 쓰는거래요;;;
국내에서 전화하면서, 자기 번호 안 뜨게 하려고 그런 희한한 방법까지 이용하는거죠.
공중전화를 이용해도 이상한 번호가 뜨더군요;;
이후로는 그런 이상한 전화번호가 뜨면 안받아요.
다행히 그 친구는 지방에 살아서, 유선전화를 이용하더라도 지역번호가 떠요. 참 다행이죠.
그 지방에서 오는 전화를 저는 통째 안받고 있는거죠 ;;;
뜻밖에, 친구들에게 아무말 하지 않았더라고요. 저를 엄청 욕할줄 알았는데, 뜻밖이었어요.
제가 자기 전화를 안받는다는게 수치스러웠던 거죠.
친구들이 자기 편을 들어줄 거라는 확신도 없었겠죠.
그저 제가 요새 국내에 있는지, 다른 친구들 전화는 잘 받는지 정도만 교묘하게 확인을 했더라고요.
그친구가 멀리 사니까, 한번씩 서울에 올때는 떠들썩하게 친구들 모임을 만드는데
저는 그 자리에도 안나갔어요.
이제는 문자는 안오고 딱 6개월에 한번쯤, 잊을만하면 한번씩 전화를 해요.
그 희한망칙한 전화카드로요.
확인하는거죠. 받나 안받나.
그 번호가 뜰때마다 이제는 소름이 끼쳐요.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정 때문에, 죄책감 때문에, 불쌍해서, 친구들이 말려서
그친구와 억지로 친분을 유지했던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었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친구에게 진심이 없다는걸 저는 오랫동안 몰랐던 거예요.
마치 저처럼, 생각이 짧아서 실수하고, 진심으로 미안해하는줄 알았죠.
그친구는 달라요. 모든것이 계산하에 이루어져요.
계산하에 앗 실수? 하면서 사람의 상처를 찌르고, 계산하에 사과해요.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저를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고요.
이친구는 살인마는 아니에요. 범죄도 안 저질렀고요.
하지만 양심과 진심이 없고, 모든것이 계산적이라는 점에서 소시오패스의 자질이 충분해요.
살인이나 범죄의 능력이 있고 그게 자기에게 유리하다면 할거예요.
단지 그게 자기에게 해가 되니까 안하는거죠.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게 끊으세요. 정에 이끌려 마음 약해지지 마시고요.
끊고나면 그사람의 전모가 더욱 명확하게 보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