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교조선생님이셨나요?
어제(8월 2일 토요일 오후 7시)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요구하며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목숨을 걸고 20일 가까이 단식농성 중이신 세월호유족들과 함께하는 음악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에 통분을 하며 활활 타 올랐던 촛불도 시나브로 꺼져가는 것을 확연히 확인할 수 있었다.
참여인원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고, 집회가 끝나면 경찰과 대치하며 청와대로 가겠다고 퍼포먼스나 다름없는 그 알량한 반짝 가두시위조차도 없이 이제는 청와대나 경찰의 바람대로 아주 평화로운 집회로 끝나고 마니, 말 그대로 순수한 음악회였다.
집회 주최 측과 사전에 약속이 되어있는지 경찰차로 철벽을 치던 것도 없고 경찰이 불법시위니 해산하라는 개소리 경고방송도 없었다.
그래 노래듣자고 주말 금쪽같은 시간에 광화문광장에 나왔던가?
오후 5시가 지나도 사람이 모여들지를 않아 씁쓸한 기분을 억누르며 바닥에서 치솟는 분수에 몸을 적시며 아이들이 흥겹게 물장구를 치는 분수대 장군의 동상 앞에 비닐판에 이런 격문을 써서 물에 담가 놓았다.
<장군이시여!
그래 이 못난 후손들 이 짓거리 하는 것을 보시려고 12척의 배로 울돌목에 가라앉는 나라를 건져내시어 이 못난 후손들에게 물려주시었습니까?
장군께 다시 한 번 눈물로 호소합니다.
저 북악산 밑 푸른 기와집과 여의도에 바가지를 엎어놓은 지붕을 이고 있는 의사당에 웅크리고 있는 왜구의 무리를 모두 다 팽목항으로 끌고 가서 바다 밑에 쑤셔 박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호소합니다.> ; 기억을 되살려 쓴 글임으로 내용이 다소 틀릴 수도 있음,
오후 7시가 되자 가까스로 3-4천명이 모여들어 그런대로 음악회가 시작되었지만 씁쓸한 기분은 변함이 없었다.
그때 빗방울이 몇 방울 뿌리고 나서 동편하늘에 선명한 쌍무지개가 떠올랐다.
쌍무지개가 뜨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는데, 박근혜의 난정에 저항하는 촛불도 시나브로 꺼져가는 것으로 보아 그 쌍무지개는 박근혜의 쌍무지개 같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니 하늘도 미친 것 같았다.
이제 세월호참사에 저항하는 촛불도 8월 15일이 종착점인 것 같다.
물론 그 뒤에도 촛불이야 아주 꺼지지는 않겠지만 1-2백 명 모여 켜든 촛불로 뭣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 다음에는 세월호의 슬픔은 단지 유가족만의 슬픔이 되리라!
해가 지자 촛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스티로폼 판을 하나 주워 아래와 같이 써 들고 촛불 켜 들고 있는 분들의 앞에 들고 서서 촛불을 꺼트리지 말 것을 침묵으로 호소했다.
<촛불 든 당신 손이 아름답습니다.
5천만이 외면해도 당신과 내 촛불 둘만 꺼트리지 않으면 (특별법)관철 시킬 수 있습니다.> 하고 써서 한 바퀴를 돌고 힘없이 화분대의 턱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때 웬 날씬한 미모의 아가씨(?)가 다가와 자신은 자신이 쓴 피켓을 들고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러자고 대답하고 뉘시냐고 물어 보았더니 “전교조교사인데 선생님(필자를 가리키는 말)이 즉석에서 쓴 피켓을 들고 전교조집회에 응원을 보내시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고 하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화분대 턱에 걸터앉고 그 선생님은 옆에 서고 한 상태로 웬 젊은 남성에게 그 여선생님이 사진 찍어주기를 부탁했다.
필자의 짐작에 선생님부부(?)로 그 젊은 남자선생님은 미모의 여선생님 부군이 되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면서 속으로 “아- <천생배필>이란 이런 부부를 가리키는 말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음악회가 끝나고 힘없는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주) 촛불 ; 손에 켜든 촛불은 상징일 뿐이고, 정통성이 결여된 역겨운 정권이 자행하는 독재와 난정에 순응하지 않고 양심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저항의식이라고 나름대로 정의를 해 보았다.
그 미모의 부부선생님은 뉘 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