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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사랑 –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

스윗길 조회수 : 1,601
작성일 : 2014-07-19 19:36:06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사랑 –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든 평강공주

 

백설공주 이야기는 백마 탄 왕자가 그녀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함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모름지기 설탕처럼 달콤한 사랑이야기란 영웅과 미인이 등장해야 제격이다. 미인이 되 반드시 위기에 빠져야 하고, 관객의 애간장이 다 녹아내릴 즈음, 영웅이 등장하는 것이다. ‘프리티 우먼’ ‘사관과 신사’ 등 잔잔한 로맨스의 주인공에서부터 ‘배트맨’ ‘스파이더맨’ ‘뽀빠이’ 등 한번 등장했다하면 우지끈 박살을 내는 이 영웅들이야말로 정통 서양식 로맨스를 완결 짓는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우리네 로맨스에는 영웅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변사또 수청 제의에 죽을 고생을 하는 춘향과 재회하는 이몽룡도 영웅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의리’의 사나이일 뿐이다. 춘향이 애초 이몽룡을 만나지 않았다면 고초도 없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 때문에 한을 품거나 비탄에 잠긴 비련의 여주인공도 무수히 많다. 연인을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도 많다.

 

공주가 등장하는 사랑이야기로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선화공주와 서동왕자’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이 대표적이다. 이 세 개의 러브 스토리도 남자 주인공들보다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여자 주인공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다. 다만 낙랑공주와 선화공주는 모두 왕자를 상대로 했으나 평강공주만은 천민을 짝으로 맞았다는 것이 차이가 난다.

 

 

울보 공주, 바보 남편과 만나다

 

고구려 25대 임금 평강왕에게는 세 아들과 외동딸이 있었다. 그 외동딸이 평강공주다. 평강공주란 평강대왕의 딸이란 뜻일 뿐 이름은 알 길이 없다. 성은 왕족 성인 고씨였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 편에 따르면, 평강공주는 어릴적 지독한 울보였으나, 바보 소시를 듣는 천민 온달과 결혼하여 온달을 기백이 넘치는 멋진 고구려 장수로 만들었다. 평강공주 이야기는 단순한 연애담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많은 교훈을 안겨주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삼국사기> ‘열전’ 온달 편을 다시 보자.

 

“온달은 평강왕 때의 사람이다. 그의 얼굴은 멍청하게 생겨 남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나 속마음은 순박했다. 집이 몹시 가난해서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거리를 왕래했으므로 그때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바보 온달이라고 했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하니 왕은 희롱하여 말하였다. 네가 늘 울기만 하여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크더라도 반드시 사대부의 아내는 될 수 없으므로 꼭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야겠다.”

 

평강왕이 우는 공주를 달래기 위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한 것은 왕이 알 정도로 온달이 유명했다는 뜻이다. 멍청하게 생기긴 했지만 순박하고 착한 온달을 철없는 조무래기들이 졸졸 따라 다니며 놀리거나 노래를 지어 조롱했을 것이다. 온달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궁궐까지 흘러들어갔을 것이다. 공주도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세뇌가 되어버린건 아닐까. 과연 그 때문인지 혼인할 때가 되었을 때, 공주는 온달에게 시집가겠다고 버텼다.

 

<삼국사기>에는 평강공주가 열여섯 살이 되자 왕은 귀족들이 주로 사는 평양성 상부의 고씨 총각에게 시집보내려 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고구려는 5개의 부족으로 이뤄져 있었고 부족 간의 혼인을 통해 친인척 고나계를 맺게 함으로써 유대를 굳건하게 하는 게 관례였다. 같은 성씨끼리 결혼하는 족내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라와 고려의 경우 왕권을 다른 씨족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근친혼을 했다.) 아무튼 왕이 실제로 공주를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씨족이든 같은 씨족이든, 귀족 가문과 사돈을 맺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공주는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온달에게 시집가겠다는 것이다.

 

공주가 고집을 부리자 왕은 공주를 궁궐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쫓겨난 공주는 그러나 빈털터리가 아니었다. 금붙이 같은 것들도 챙겨나갔던 것이다. 공주가 미리 알고 준비해 놓은 것인지, 왕이 가엾다 하여 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공주가 들고 나간 귀금속은 후에 온달 신화 창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게 궁궐을 나선 공주는 물어물어 온달의 집을 찾아 간다. 하지만 온달의 눈 먼 노모는 당치도 않다며 그녀를 받아들이기 않는다. 울보 평강공주도 황소고집이었다. 왕도 못 이긴 고집이었다. 공주는 온달을 설득하여 기어코 혼인하여 아내가 된다.

 

 

바보 남편, 말 달리다

 

바보 온달의 아내가 된 평강공주가 한 첫 번째 일은 남편에게 말을 사오도록 한 것이었다. 공주는 어릴 적부터 궁궝레서 좋은 말을 많이 보고 타보기도 하였기에 말을 볼 줄 알았다. 나라에서 쓰는 말인 국마는 대개 과하마라 불리는, 키가 삼척밖에 되지 않지만 힘이 좋고 겁이 없는 말이었다. 공주는 온달에게 반드시 국마를 사오라고 당부했다. 온달은 색시의 말에 따라 쓸모가 없다며 내다 팔린, 당장은 볼품은 없지만 잘 다듬으면 명마가 될 만한 국마를 골라왔다. 과연 공주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은 말은 늠름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온달 역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렸고 창과 칼을 휘두르고 활쏘기를 멈추지 않았다. 글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고구려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이면 왕이 직접 나서 사냥대회를 열었다. 온달은 여기에 참여해 그동안 갈고 닦은 말 타기, 활쏘기 솜씨를 뽐내 일등을 하였다. 왕이 친히 불러 이름을 묻자, 온달이라고 답했다. 왕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딸을 빼앗아간 장본인을 마주대하고 보니 화가 솟구쳤다. 왕은 사냥 솜씨는 둘째 치고 딸은 빼앗아간 불한당 같은 놈이라며 당장 물러가라 소리쳤다. 하지만 온달에게 기회가 영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북쪽의 북주가 고구려를 침범하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맞섰다. 이때 선봉에 서서 적진을 휘저으며 맹활약한 병사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 병사가 누구인지 데려오라 해서 보니, 또 온달이었다. 왕은 비로소 무릎을 치며, 과연 내 사위가 될 만한 인물이라며 온달을 받아들였다. <동사강목>에 따르면, 왕은 온달에게 대형이란 벼슬을 내렸으며 이때가 평강왕 19년 서기 577년이다.

 

왕으로부터 사위로 인정받은 온달은 평민 천민들이 살던 평양의 변두리 하부에서 귀족 거주지인 상부로 이사를 하고 복된 나날을 보냈다. 온달의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고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고구려가 평양성에서 장안성으로 수도를 옮긴 지 3년 만인 서기 590년 10월 평강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재위 32년 만에 세상을 떠난 평강왕에 이어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주변의 국제 정세가 복잡해져 있었다. 중국에선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수나라가 세워져 고구려를 위협했고, 남쪽에서 나날이 국력이 커져가던 신라가 국경을 넘보았다. 아래, 위로 치이게 된 고구려는 대책을 세워야 했다. 고구려는 수나라는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군사를 일으키기 어려우니, 신라를 먼저 제압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영양왕은 당장 군사를 일으켜 온달을 대장으로 삼아 남쪽으로 내달리게 했다. 온달은 본래 고구려 땅이었으나 신라에게 빼앗긴 계립현 이서, 죽령 이북, 고현 이내의 땅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지역은 요즘의 강원도와 충북 지역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강 유역까지 장악했단 신라의 반경도 만만찮았다. 고전 끝에 아단성에 이른 온달 군대는 신라와 접전을 벌였지만 온달이 화살을 맞고 죽는 바람에 패하고 말았다. <삼국사기>에는 “드디어 신라군과 아단성 밑에서 싸우다가 유시에 맞아 길에 쓰러져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군사들이 온달의 시신을 담은 관을 옮기려 했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평강공주가 목놓아 울며, 분한 마음을 풀고 그만 돌아가자고 애원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아단성은 지금의 서울시 광장도, 구의동에 걸쳐 있는 아차산성이라는 주장이 지배겆이었다. 하지만 아차산성의 ‘차’와 아단성의 단. 두 글자의 모양이 비슷한 데서 비롯된 착각이라는 반론도 있다. 또 아차산이 한강 북쪽에 있긴 하지만, 온달이 말한 ‘한 수 이북의 땅’은 한강의 북쪽이 아니라 남한강 상류 이북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의 강원도와 충북 일부라는 것이다. 실제로 충주 청풍 단양 영춘 영월 등지에는 고구려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세운 산성과 봉수터가 이어져있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은 고구려 때 을아단현으로, 여기에 세운 산성이 바로 ‘아단성’이라는 것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도 영춘면의 성산에 산성이 있고 온달이 이곳을 되찾기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들은 이 산성을 온달산성이라 불러왔다. 온달성은 사적 제264호로, 그 아래에 천연기념물 제261호인 온달동굴이 있다. 근처에는 고구려식 적석총인 온달묘가 있고 활 고개, 쇠는 돌 등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담긴 곳이 많이 있다.

 

평강공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을 쟁취하고 바보라고 놀림 받던 남편을 고구려의 훌륭한 장수로 만들어냈다. 어쩌면 온달은 원래 바보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실제로는 천한 신분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역사서는 구전이나 설화까지 기록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남편을 만인이 우러러보는 훌륭한 장수로 만들어낸 평강공주의 사랑과 헌신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영원토록 귀감이 될 만한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출처: 역사와 문화를 깨우는 글마루 7월호

 

 

IP : 122.128.xxx.169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호랑이 새끼를 키우면
    '14.7.19 7:43 PM (114.129.xxx.78)

    호랑이가 되고, 개새끼를 키우면 개가 된다.
    헌신적인 사랑이 그 사람의 타고난 품성까지 바꿀수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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