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썸타는 관계', 우린 연애를 하지 않고 연락만 주고받았던 거야

가슴이 설렌다는 조회수 : 4,830
작성일 : 2014-07-13 14:41:08

[한겨레] [토요판] 연애
썸남썸녀 http://durl.me/72453x

▶ 남자와 여자 사이에 미묘한 감정이 있는데 연인은 아니다. 예전엔 이런 관계를 칭하는 용어가 딱히 없었지만, 요즘은 '썸타는 관계'라고 합니다. '썸'(some)은 말 그대로 무언가가 있단 뜻이죠. 그런데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도통 알 수 없습니다. 말뜻이 모호한 만큼, 무수한 유형의 관계가 '썸'이라는 단어로 수렴되죠. 여기 한 썸남썸녀의 사연은 어떤 유형의 관계일까요.


'며칠 전에 생일이었네. ㅋㅋ 지난번에 약속한 게 있으니 축하해줄게. 생일 축하ㅋㅋ'

생일이 사흘 지난 뒤 그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생일 축하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이런 문자를 들여다보자니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예전 같으면 늦은 문자에 톡 쏘아붙였을 법한데, 더 이상 화도 나지 않았다. '고마워 ㅋ' 그에게 성의 없는 답장을 보냈다. 우리의 미련하고 길었던 이야기는 성의 없는 문자메시지를 공평하게 한 통씩 주고받을 만큼의 관계로 정리되고 있었다.

우린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같은 대학 학과 선배인 그는 처음 만난 날, 버스 정류장에서 음료수를 건넬 만큼 친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 동생' 할 만큼 친한 사이가 됐고 특별한 내용 없이도 새벽까지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악을 공유했고 서로 봐야 할 영화를 추천했다. 형제가 없던 나는 오빠가 한 명 생긴 것 같은 기분에 좋았고 또 설렜다. 내 마음을 모르는 친구들은 그를 좋아한다며 상담을 하기도 했다. 내가 그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후배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좋은 선배이자 친구
그리고 오빠이자 '썸남'
내 마음을 아는 듯했지만
모호한 태도로만 시종일관

그가 먼저 손 내밀었지만
다시 연인도 아닌 관계로
이제 나는 연락을 끊었다
그는 진짜 연애를 하고 있다

어떤 날은 그가 나를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아 우쭐했고, 또 어떤 날은 나에게만 스스럼없이 대하는 그를 보며 정말 나를 동생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우울해졌다. 설레는 내 감정만 뺀다면, 우린 완벽한 관계였다. 그는 나에게 좋은 선배이자 친구, 그리고 오빠이자 '썸남'이었다. 그는 학과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친한 사람들에게 나를 부탁했다. "널 보면 아빠 같은 마음이 들어." "나보다 잘생긴 남자가 생기면 사귀어봐." 그가 내게 하는 말들은 나를 몹시 흔들었고 혹시 그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기대했다. 주위 선배들은 농담 반, 진담 반 물으며 궁금해했다. "너희 둘 우리 모르게 사귀는 거 아니야?"

만난 지 1년이 지나면서 우리 사이엔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내 마음을 그도 알아버린 것이다. 그는 한 모임에서 이런 말을 털어놓았고, 친구는 그의 이야기를 내게 전해 주었다. 그 이후에도 수업 자료 복사와 미니홈피 배경음악 설정 등을 아무렇지 않게 내게 부탁했다. 그와 따로 만나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다. '다 알고 있었던 거야?'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그는 애매한 답장을 보냈다. '….' 그의 마음속에서 나는 친한 여동생과 여자 사이, 어디쯤 있었던 걸까.

그날 이후 그는 나를 피했다. 그때 정리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에게 또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고. 신기하게도 우린 다시 예전 같은 사이로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우린 늘 연락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고등학교 친구 모임에 나갔고, 서로 부르면 달려갔다. 학과 모임이 있을 때면 그는 나의 참석 여부를 물으며 "너 안 가면 나도 안 가"라고 말했다. 그에게 정식으로 고백할 수 없었던 건 이 관계를 잃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련한 줄 알면서 고백하고 싶은 내 감정을 눌러야 했다.

내 나이 스물여섯,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던 시기에 억누르던 감정에 한계가 왔다. 그는 살면서 만난 모든 여자 이야기 를 종종 털어놓았는데 어느 늦은 밤 우리 집 앞에 맥주를 들고 찾아왔다. 그가 꺼낸 말은 온통 '그녀'에 대한 것이었다. 6년 동안 잊지 못한 첫사랑 이야기. 그를 보며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우리 이제 그만 보자." 나는 무섭도록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보지 말자고?" 그는 되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녕." 그는 뒷모습을 보이며 멀어져 갔다.

그도 아마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런 말을 내뱉고도 나 또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으니까. 순간의 감정 폭주를 어떻게 수습할까 고민하다 혹시나 해서 다음날 들어간 그의 미니홈피에는 '역시 밖에서 먹는 맥주가 맛있지'라는 일기가 적혀 있었다. 그만 보자는 말에 이유를 묻지 않고 헤어지고, 일기장에 맥주 이야기를 남기는 그의 마음은 뭘까. 연인은 아니라도 좋은 친구 사이였는데 그것마저 착각이었던 걸까. '그냥 그를 보지 말고 살자.' 마음을 굳혔다.

이후 1년, 우리는 문자메시지 한 통 주고받지 않을 만큼 관계를 끊었다. 친구들은 연관 검색어처럼 나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대답 대신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가끔 마음을 터놓을 상대가 필요할 때 그가 생각났지만, 혼자 참는 일에 익숙해서인지 다시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들로부터 그가 잠수를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는 연락할 것 같으니, 사람들이 걱정한다는 얘기를 그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고민 끝에 그의 친구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우리는 다시 연인도, 선후배도 아닌 애매한 관계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를 만나지 않은 1년간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잃고 싶지 않은 관계도 언젠가 잃게 되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끝은 오히려 또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긴 시간, 그를 바라보느라 다른 관계를 놓치며 살아온 것이다.

지금 그는 누군가를 만나 연애중이다. "네가 하는 사소한 이야기도 다 기억해주고, 챙겨주는 사람을 만나." 그는 진짜 연애를 시작하며 내게 조언이라는 걸 했다. "그랬던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던데?" 나는 그를 보며 열없이 웃었다. 그는 시선을 피하며 알듯 말듯 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지금 그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 우리가 오랜 세월 주고받은 그 수많은 연락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연락이 아닌 진짜 연애를 하는 중이다.

진짜 연애를 꿈꾸는 스물여덟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IP : 112.171.xxx.7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썸도 연애의 일종 아닐까요?
    '14.7.13 2:48 PM (59.86.xxx.239)

    감정의 크기에 따라 친구-썸-연애로 단계를 나눌 뿐이지 모종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아주 손쉽게 남성과 여성의 최종단계로 갈 수 있는 사이라는 건 마찬가지라고 보네요.

  • 2. 공감
    '14.7.13 2:53 PM (112.171.xxx.7)

    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2

  • 3. 점넷
    '14.7.13 3:07 PM (122.36.xxx.73)

    으...이런 불확실한 관계를 저는 참 못견뎌하는데요.......예전엔 희망고문이라고도 했던것 같아요.미련을 갖는 쪽이 항상 지는 관계...

  • 4. lㅇㅇ
    '14.7.13 3:15 PM (124.53.xxx.26)

    생각해보니 이런 모호한 상태를 정의하는 말이 생기면 미친듯이 소비되고 자기의 경험을 그때서야 구체화시키는 것 같아요. 윗님들 말대로 희망고문 어장관리 썸...ㅋㅋ 썸이 가장 쿨하네요

  • 5. 사실
    '14.7.13 4:04 PM (121.2.xxx.210)

    어중간한 관계....
    실제로는 상대가 없어도 전혀 상관없는거죠.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99866 여행용 캐리어 비번이 생각이 안나요 ㅜㅜ 1 ㅜㅜ 2014/07/20 2,328
399865 마트 캐시어의 눈빛에서 환멸과 자기혐오를 읽었어요. 69 한풀이 2014/07/20 21,355
399864 [함께해요] 팩트티비에서 이메일 받으셨나요? 11 청명하늘 2014/07/20 1,537
399863 헬스 다니시는분 단백질 보충제 드세요?(체지방감량&체력 .. 9 헬쓰걸 2014/07/20 3,733
399862 예수가 실존했던 인물도 아니고 종말도 세계멸망이 아니죠. 7 종말은거짓 2014/07/20 2,718
399861 홈쇼핑에파는장어... 2 장어 2014/07/20 1,164
399860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요 5 내가이상한가.. 2014/07/20 1,554
399859 박영선...요건 속시원하네요. 2 ㅇㅇㅇ 2014/07/20 2,383
399858 윤후 참 이쁜 아이긴 한데, 매번 과한 옷 42 2014/07/20 18,579
399857 기적같은 일 경험 (밑에 이중주차된 얘기를 보고..) 11 신기 2014/07/20 4,128
399856 앙큼한 돌싱녀 보신 분들? 너무 재밌네요ㅜㅜ 6 dd 2014/07/20 2,062
399855 정말 살이 안빠지네요 7 부문 2014/07/20 3,283
399854 친환경 블루베리에 곰팡이가 ㅜ 5 ㅜㅜ 2014/07/20 5,372
399853 조언부탁드려요 바보보봅 2014/07/20 742
399852 오이지 꺼냈는데 한개가 물렀다면요 1 버버 2014/07/20 1,897
399851 장나라는 작품선택을 넘 잘하네요 13 .. 2014/07/20 5,506
399850 ............ 3 아파 2014/07/20 1,712
399849 클래식 피아노곡좀 찾아주세요 플리즈~~~~ 2 ... 2014/07/20 1,275
399848 제 커피취향_ 전 아이스커피만 좋아요! 9 저 같은분~.. 2014/07/20 2,377
399847 레이어드용 얇은 반팔 티셔츠 좀... 추천 2014/07/20 830
399846 시사통 김종배입니다[7.20] - 북콘서트 겸 제2차 오프모임 lowsim.. 2014/07/20 846
399845 고소영씨도 성형을 한건가요? 19 추워요마음이.. 2014/07/20 13,044
399844 어복쟁반 대체 요리가 없을까요? 음식 2014/07/20 973
399843 질문)생리가 끝나고 사흘 뒤 다시 출혈이 나오네요. 7 부정출혈ㅠ 2014/07/20 5,863
399842 쓰레기 같은 인간들 4 희한한 인간.. 2014/07/20 1,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