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들었습니다. 사람의 일생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때가 40대라고 하더군요.
사회적으로 새로 밀려 오는 젊은이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지고
신체적으로도 노화가 찾아와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기 시작할 때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다가 오십대가 되면 행복지수가 다시 올라간다네요.
그런 자기자신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된다는 거지요.
철들고 나서부터 제 첫번째 소원은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 거였답니다.
아! 정말 아침은 제게 지옥이었습니다. 그래도 결혼하기 전엔 제 한 몸이니 어찌어찌 일어나 출근하고,
휴일엔 밀린 잠을 보충도 하고.. 또 젊었으니.. 그렇게 힘들지만... 타협이 되었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정말 죽고싶도록 힘들었어요..
게다가 아이는 아침형이었거든요..
그런 생각을 늘 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데 잘 참고 사는 걸까?
나만 유난히 참을성이 없는 걸까? 중간중간 병도 생겨서 수술도 하고..
작은 놈 낳고 한 오년 제외하고는 계속 맞벌이를 하면서.. 그렇게 힘든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술을 했던 두 번정도를 제외하고는 저는 정말 힘든데...
병명은 없었어요... 혈압도 심한 저혈압이긴 하지만 정상범위.. 라고 하구요..
작년부터 팔에 문제가 생겨서 우연히 다니게 된 한의원에서 뜸치료와 침치료를 받았는데
그게 저한테는 효과가 있었나봅니다.
요즘에는 저절로 눈이 떠지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잠이 깨면 생각합니다..
'나 깬거야? 저절로? 정말?'
행복합니다.. 정말.. 이렇게 아침산책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하루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모릅니다.
이걸 시작으로 저의 쉰하나는 행복합니다. 제평생중에 최고로 행복합니다.
오늘 저의 행복을 적어보기로 합니다.
저희 아파트는 이층이라 나무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마트에서 산 9900원짜리 캠핑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무를 바라보면 정말 좋답니다..이러고 있을 때 제 뒤에서는 20-30년쯤된 인켈 오디오에서 음악이 나옵니다.
저 오래된 오디오도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다행히 아직은 소리가 제법 쓸만하네요..
또 저희집엔 멍뭉이도 있습니다. 대소변도 잘 가리고 헛짖음도 없고, 분리불안도 없는
털이 아주 부드럽고 다정한 멍뭉이도 있습니다. 자다가 이녀석의 털을 쓰다듬는 기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따스함을 줍니다. 공터에서 목줄을 풀어주면 저 멀리서 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작은 생명체가 주는 이기쁨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또 저희집 화분에는십년쯤 된 머루나무가 있습니다. 작년가을에 혹시 죽었을까봐 걱정을 했는데..
지금 참으로 푸르른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습니다. 저 멋진 나무도 제겐 행복입니다.
제겐 월급은 작지만, 시간이 자유롭고 업무량도 많지 않은 직장도 있습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좋아합니다. 주말이 지내고 나면 보고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젊은이들입니다.
젊은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건 나이든 자에겐 행운입니다.
사십대를 넘기면서 제 주변엔 사람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많이 정리하게 되더라구요..이젠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거의 없어졌네요..
남편하고는 .. 참 사연이 많지만. 이나이가 되니 서로 싫어하는 부분은 조심하고,
각자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서로 잔소리하지 않는 식구로 관계가 정리되었습니다.
아들 두놈은 아직까지는 자기 할일을 열심히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미지수이지만요..
이래 저래 시간이 여유롭다보니, 여기 저기 공짜로 공부할 수 있는 곳도 많이 찾아냈습니다.
도서관, 동사무소.. 이런 곳에 무료나 혹은 정말 저렴한 가격으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정말 많더군요.
원어민영어, 고전강의, 클래식음악관련 강의, 영화관련 강의, 이런공부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게다가 돈도 별로
안들고 말이죠..
평생소원이던 악기도 배우고 있습니다. 이젠 쉬운곡은 치며너 노래를 흥얼흥얼 할 정도는 되었습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계속 배울 생각입니다.
저의 세월은 이렇게 천천히 제법 잘 흘러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자꾸 울 일이 생깁니다. 푸르른 젊은 생명들이 자꾸 스러져서...
자꾸만 자꾸만 가슴을 치고 울게 됩니다.. 아까워서 아까워서 정말 미칠 것 같습니다..
저는 저의 오십대를 평화롭고 행복하게 누리고 싶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