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희생자의 죽음이 또 다른 죽음 막고, 서로 살리는 세상 만드는 것”
이날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박성호(임마누엘) 군의 18번째 생일이었다. 박성호 군은 참사가 일어난 지 8일 만인 4월 23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온 가족이 안산 천주교 선부동성가정본당 신자였고 박 군은 복사로 활동하면서 사제를 꿈꾸던 예비신학생이었다.
성호 없는 성호의 생일을 단 한 번도 지낸 적 없었다는, 박 군의 어머니 정혜숙(세실리아) 씨는 이날 다른 날보다도 더 무너지는 마음을 돌볼 사이도 없이 유가족 대표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
“성호는 워낙 착했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아이였어요.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싶어 했으니까, 분명 하느님 품에 안겨 있을 거라고 믿어요. 오늘 성호에게 가서 부탁하고 왔어요. 우리는 너무 힘이 없으니까…… 아직도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 1분, 1초라도 빨리 부모 품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네가 같이 하느님에게 전구해 달라고요. 우리가 힘이 없지만 그래도 애쓰고 있으니까……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다면, 천상의 힘으로 부디 이 일을 해결하게 해달라고. 더 이상 누구도 이렇게 죽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왔어요.”
면담이 끝나고 함께 안산 합동분향소로 향하는 길, 품에 없는 아들의 생일을 챙기는 방법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정혜숙 씨는 이야기를 하다가 채 말끝을 맺지 못했다. 다만 아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왔노라고 전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제 성호는 이 세상에 없어.”
성호 군의 아버지는 함께 팽목항으로 달려가던 길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학교에서도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해 혼란의 연속이었고, 이어지는 오보를 보면서 최악의 상황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엄마이기 때문에 그래도 한 줄의 희망을 놓을 수 없어서, 단 한 명이라도 살아오기만을 바랐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4월 16일로부터 3일간,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점점 가라앉고 있는데, 구조는 하지 않고 부모들을 대상으로 브리핑부터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들을 대하는 이들은 단지 가족들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사람들일 뿐이었다.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그 시간동안 아이들이 수장되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 다음에는 주검이라도 건져 달라고 애원해야 했다.
정혜숙 씨는 “사고 후 3일 내내 그렇게 우리는 농락당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배 안에 갇힌 순간부터 50일이 지난 지금까지 그 일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다”면서 가족들이 겪고 있는 분노와 실망, 좌절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왜 우리일까? 그 의문을 떨칠 수 없었어요. 왜 우리 아이들이지? 우리는 가진 것도 없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저항하지 못하고 금방 포기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왜 감추려고만 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어요. 사람은 본래 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 현장에는 인간적인 모습, 선한 의지,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모습이 없었어요. 왜 유가족을 감시하고 모든 언론을 막아야 했는지 국가는 분명히 이야기해야 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이 함께 겪고 함께 품고 있는 의문입니다.”
정혜숙 씨가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화랑유원지 야외음악당에서 봉헌되는 추모 미사에 참석해 기도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정혜숙 씨는 “이것은 대학살”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 사태가 단지 ‘무능함’ 때문이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역시 가만히 있었을지 모른다”면서, “우리는 무능을 넘어 모든 거짓과 음모를 겪었고, 건져낼 수 있었던 아이들을 시간을 지연하며 건지지 않은 것을 목격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