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의문하기를 멈추지 않을 어준씨를 위해 보태는 글

소년공원 조회수 : 4,831
작성일 : 2014-05-19 13:12:34
KFC 8회 거짓말 편을 듣고 듣고 또 듣고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 부분에 김어준씨가 각자 어떤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추도할지, 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스스로도 답합니다.
"의문하기를 멈추지 않겠다" 라구요.

저역시 그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요.
=================================================================

진도 VTS 편집 조작설과 관련해서, 도움이 전혀 안될 수도 있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경험한 바를 써볼까 합니다.

큰 선박의 지휘 체계는 크게 셋에서 다섯 부분으로 나뉩니다.
항해를 주관하는 항해부, 갑판을 총괄하는 갑판부, 기관실을 제어하는 기관부, 그리고 통신을 주관하는 통신국, 마지막으로 선원을 먹여살리는 주방 이렇게 나누죠. (사실, 이 분류는 화물선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세월호와 같은 여객선은 아마도 객실을 담당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유조선이나 기타 특수 선박의 경우에는 또다른 부서가 있거나, 위의 부서 중에 중요한 일을 더 많이 담당하는 등의 차이가 있을 겁니다.)

통신국.
요즘은 GPS 시스템이 일반화되어 항해를 하는 동안 육지와 통신을 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 않고, 또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통신국장이 할 일을 선장에게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게 한 다음 일임하게 합니다만, 200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통신국장의 임무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도로를 운전하는 자동차와 달리, 또한 아무리 길어야 수십 시간만 운항하면 목적지에 도달하는 비행기와 달리,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보이는 망망대해에서 짧게는 수일, 길게는 수십일 수 개월 동안 길을 찾아 가려면 육지와 교신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이 되시겠지요.

그 중요한 통신국이 늘상 상대하는 대상이 바로 주요 항구의 VTS 시스템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도항 제주항의 VTS 시스템은 그 일대를 운항하는 선박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를 주고 받는 곳이며, 따라서 그 통화품질은 절대로 방해받아서는 안되도록 유지되어야만 합니다.

언론에 공개한 진도 VTS 수신내역 - 지직거리는 잡음이 너무 심해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 - 은 그런 상태가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된 것 만으로도 큰 사고이자 문책받아 마땅한 과실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16번 채널(이라고 이해되는)을 통해서 통화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12번 채널인지 또다른 채널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항해중인 선박과 여러 경로로 여러 차례 통화를 했습니다. 제가 선박으로 전화를 걸 수는 없었고, 선박에서 제 전화로 (집전화입니다) 걸려온 것을 받았다는 점만 빼고는, 일반 전화통화와 비교해서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음질이나 수신상태가 거의 차이가 없었고, 태풍이 불거나 선박이 연안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하는 등의 악조건 하에서는 가끔씩 소리가 뚝뚝 끊어지며 들리기는 했어도, 지직거리는 잡음이 통화 내내 그렇게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소리가 끊어지며 들리는 빈도가 높아져서 장시간 통화를 하는 것이 어려워지면, 선박측에서 전화를 끊고 즉시 다른 채널을 사용해서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그러면 다시 깨끗한 통화품질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진도 해경이 내놓은 그 녹음 파일은 완전 엉터리가 맞습니다. 심지어 육지에서 전화로 받은 수신 상태조차도 깨끗하게 들리는데 (그것도 이미 십 수 년전의 장비와 기술력으로), 자기네 시스템 내에서 녹음한 소리가 그렇게 밖에 안들린다면, 그것도 잠시 몇 초나 몇 분간이 아닌 긴 시간 동안에 그런 상태를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은 크나큰 과실이거나, 고의로 훼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따르릉~~~

선장님: 아, 딸매이~? 지금 배에서 무선으로 전화한다. 이거 다른 배도 다 들리는 무선이다.

딸매이: (아, '그' 무선이구나 :-) 네, 아빠, 지금 어디세요? 언제 집에 오세요?

선장님: 응, 지금 일본을 막 떠나서 부산에는 내일 아침쯤 도착하겠네. 그래도 부두에 배 붙이고 수속하고 할라면 집에는 저녁에나 되야 드가겠다. 어쩌면 바람이 마이 불어서 한나절 더 늦어질 수도 있고. 그나저나, 우리 딸매이 대학 합격은 우찌 됬노?

딸매이: (아빠, 속보여요. 지난 번 통화에서 이미 아셨으면서, 지금 주변에 지나가는 배한테 자랑하려고 그러는 거 다 알아요 :-) (하지만 아빠 체면을 생각해서 처음 질문 하시는 냥으로 장단을 맞춰드리며), 아빠, 저 대학 합격했어요!

선장님: 아이고~ 수고했다. 축하한데이~
네, 제 아버지께서는 오래도록 컨테이너나 원목 등의 화물을 운반하는 외항선의 선장이셨어요.
벌써 몇 년 전에 정년퇴직 하셨지만, 손주들 과자값이라도 벌겠다시며 (세월호 선장처럼) 알바 선장일을 그 후로도 간간히 하셨더랬지요. 정규직 선장은 만 65세면 정년이지만, 비정규직 선장은 나이 제한이 없고 정규직 선장이 정기 휴가 또는 응급 비정기 휴가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배는 나가야 하고, 운항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몰라 자녀 결혼식에 불참할 수도 있으니 아예 안전하게 한 두 항차를 쉬어야 하는 것이 이 업계에선 흔한 일입니다.) 간 동안에 한 두 항차만 운항하는 것이라, 간간이 재미삼아 일을 하셨어요.
하지만, 돈벌이는 재미삼아 하더라도, 결코 배에 관한 책임은 소홀히 하지 않으셨지요.
항해, 갑판, 기관실, 통신, 주방까지 모두 아울러 통솔하는 선장님이셨으니까요.

요즘은 경기가 나쁘고 일자리가 많이 줄어든 탓인지, 알바 선장 자리도 귀하다고 하시네요.
그래서 이젠 저희 아버지는 당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라고, 또 당신 연세가 일흔이 넘으시기도 하셨고 해서 일을 쉬고 계십니다.

퇴직한 선장님께 이번 일을 어떻게 보시느냐고 국제전화로 여쭈었더니, 침몰 사고의 원인은 배 아랫쪽의 균형을 잡아주는 물을 너무 많이 빼버린데다 짐을 많이 실으면서 균형을 잘 못맞춰서 그런 거라고 하시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인터넷 기사같은 건 잘 모르시고 엠비씨 케이비에스 같은 공중파 방송 뉴스 보도만 보시고도 이런 진단을 내리신 겁니다.)
그리고 가라앉는 배를 놔두고 떠나버린 선장은 아주 무책임하고 한심한 놈이라며 혀를 차셨습니다.
저희 아버지, 고향이 먼젓번 대통령과 같은 곳이고, 일평생 경상도 싸나이로 살아오시면서 빨갱이들과는 조우하실 일조차 없으셨던 분이지만, 박근혜 정부가 사고 수습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계십니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애도만 하지 말라!의기소침하여 경건한 몸가짐에만 머물지말라! 국민들이여! 분노하라! 거리로뛰쳐나와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도올 선생의 말씀으로 글을 마칩니다.

소년공원
IP : 68.57.xxx.155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도인 김어준
    '14.5.19 1:38 PM (110.14.xxx.144)

    흘러가는? 말속에 가장 중요한 해심이 번뜩

  • 2. 쓸개코
    '14.5.19 1:41 PM (122.36.xxx.111)

    글 잘읽었어요.
    우리 모두 같은마음인거죠.

  • 3. 써니
    '14.5.19 4:15 PM (14.50.xxx.19)

    엄마들의 마음은 어디든 같나봅니다. 요즘 지나가는 고등학생의 교복만 봐도 눈물이 나옵니다.
    정치는 다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며 무심하게 살았던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그냥 있지 않겠습니다. 바다속을 향해 아들을 부르던 단원고 아버님의 처절한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겁니다. 소년공원님도 거기서 애써주세요. 감사합니다.

  • 4. 오늘도
    '14.5.19 8:08 PM (175.209.xxx.14)

    외동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 사연을 보고 또 눈물이 나더군요

    남은 가족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달라는 기도로 또 하루를 보냅니다.

  • 5. 충청도아짐
    '14.5.19 10:36 PM (182.209.xxx.73)

    ... 그렇게 우리모두가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

    힘있는 자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결과를 위해서 함께 힘을 보태

    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 6. ...
    '14.5.20 8:05 AM (125.182.xxx.31)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의문하기를 멈추지 않기에 동참하겠습니다

  • 7. 건너 마을 아줌마
    '14.5.20 12:53 PM (210.205.xxx.128)

    좋은 내용이라서, 더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도록, 제 글에 소년공원님 글을 링크 걸어 두었어요. 실례가 안 되길 바랍니다. ^^

  • 8. 소년공원
    '14.5.20 11:26 PM (137.45.xxx.72)

    건너 마을 아줌마님,
    그게 바로 제가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글을 올리는 이유입니다.
    부디 널리 알려주시면, 천 명 중에 한 명, 만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제 글을 읽고, 정의를 되찾는 일에 힘을 먿는다면, 그것은 제게 큰 보람이 될 것입니다.

  • 9. 감사
    '14.5.22 4:09 PM (175.136.xxx.207)

    소중한 어릴적 경험도 공유해주시고 정보도 올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멀리서도 계속 관심 가져주세요..

  • 10. 음...
    '14.5.26 9:37 AM (118.220.xxx.85)

    이 글을 읽는 지금...
    어찌 이리도 눈물이 흐르는 걸까요???
    우리는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 가는 듯 합니다.
    심지어 그 상식을 이야기 하기도 힘든 세상말입니다.
    님의 용기에 감사드리고
    저도 가족 주위에 만이라도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99111 아파트를 사고싶은데 도움부탁드려요 ㅠ 3 오이 2014/07/20 2,085
399110 고1인강 문의드려요 4 삼산댁 2014/07/20 1,395
399109 운동으로 스트레스푸는게 가능한가요?? 19 .. 2014/07/20 3,897
399108 펀글)의사아들과 식당집 아들 10 2014/07/20 4,570
399107 우울증이 심해져요 왜 살아야하는지 17 ㅠㅠ 2014/07/20 5,345
399106 에ㅅ티 갈색병과 미샤 보라색병중에 4 2014/07/20 3,083
399105 노원,강북쪽 지방종 제거 병원? 2 덥지만 2014/07/20 3,183
399104 안 더우세요? 12 냉방병 2014/07/20 2,934
399103 심장에 혹이 있어 수술을 한다는데... 3 ㅇㅇ 2014/07/20 3,590
399102 사교육 정말 너무 싫으네요... 44 .. 2014/07/20 14,082
399101 현직 시의원 와이프가 시설관리공단 직원? 3 - ㅇ - 2014/07/20 1,454
399100 이혼.. 되돌릴수없는걸까요? 30 ... 2014/07/20 17,580
399099 직장내 스트레스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5 힘들다 2014/07/20 1,933
399098 속이 터질 듯 ㅇㅇ 2014/07/20 1,132
399097 김포공항 관련 여쭙습니다.ㅠ.ㅠ 2 ㅎㅎ 2014/07/20 1,443
399096 통대나온걸 후회하는 분 있나요 15 fs 2014/07/20 7,527
399095 돈 걱정이 없어요. 14 소소하니 2014/07/20 4,769
399094 중개사분 계시면 헬프. 분양상가 월세관련의문 분양 2014/07/20 1,040
399093 돼지고기장조림을 냉동안하고 1박2일로 택배가능할까요? 7 ... 2014/07/20 1,310
399092 소고기만 먹으면 잠이 와요 2 왜이럴까 2014/07/20 1,331
399091 옥수수 수염 질문이요 옥수수 2014/07/20 783
399090 결정사 가입한 어느남자의 만남들 후기_1 1 여드름아파 2014/07/20 17,743
399089 우클렐레 배우는데 피크로 쳐도 되겠죠? 1 ........ 2014/07/20 1,175
399088 막노동하며 의대 합격한 ‘청년 가장’ 박진영 씨 “누구에게나 기.. 30 서남대 의대.. 2014/07/20 11,139
399087 1박2일 국사샘 고깔 외침 듣고 눈물 났어요. 26 참스승 2014/07/20 14,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