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앞에서 실랑이할 때부터 오늘 밤에 잡혀갈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고
잡아가면 별 수 없이 끌려가겠지 싶고 어떻게 되든 자존심은 잃지 말자 혼자 다짐도 하고,
연행이 시작될 때의 시뮬레이션을 혼자 막 하면서 걸었어요.
그러다 딱 비원쪽으로 중앙차선을 넘어가는 순간에 저도 가게 된 거에요.
앞 사람이 가면 뒷 사람도 가야되니까 건너 갔죠.
비원 방향 인도 입구에 수십 명의 전경들이 딱 각잡고 서 있는 게 보이고, 우리가 빠져나갈 길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때 건너편에서 세운상가쪽으로 방향을 잡으며 우리에게 오라고 했죠.
사람들이 다시 건너가고, 저도 묻어서 갔....다 같이 건너왔다고 생각했죠.
그리곤 한참을 사람도 없는 골목들을 터벅터벅 걸었구요.
시청앞 광장에 다 모여서 자리잡기 시작해서 저는 그냥 떠났어요.
조용해진 청계광장 앞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몰려와서
길바닥에 깔리더군요. 방패들고 막 몰려다니는 그런 상황.
그제서야 82를 보고 안국동 쪽 상황을 알게 됐습니다.
시청 앞엔 수천 명이 앉아 있는데, 100여 명이 연행됐다고 하고.
저도 중앙선을 다시 넘어오지 않았으면 그쪽으로 갔을 것 같더군요.
언제 어떻게 끌려갈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옛날엔 끌려가면 생사를 알 수 없기도 했는데, 우린 하룻밤 구금에도 소스라치게 된다 싶네요.
어쨋든...
답답합니다. 우리는 거리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지만, 시간 되면 집에 돌아가야 하고
저것들은 우리를 통제하고 진압하고 지배하는 게 직업이라 돈벌이 걱정 없고요.
어떻게 해야 하죠?
주말에 모여서 밤거리를 행진하는 것, 이 상황을 길게 가져가는 건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아요.
차라리 환할 때부터 행진을 하든가.
뭔가 강력한 전환점이 필요해보여요. 권력의 실세를 조질 수 있는 강력한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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