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어제도 머리기사로 세월호 참사 소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바다로부터 보내온 다섯 번째 편지라는 기사가 첫 기사였습니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박준민 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박 군의 휴대전화가 복원되면서 박 군이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들이
알려져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박 군이 수학여행 경비 때문에 걱정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는
문자 메시지와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어머니가 사준 옷을 미리 입어보고 웃으며 찍은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어른들의 탐욕과 이기심 탓에 인생의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은 박 군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언론이 정확한 보도를 했더라면 박 군이 살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은 기자로서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러웠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최악의 오보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스팟뉴스로 뜬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기사일
것입니다. 이 오보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이게 했고 전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지탄의
대상이 되게 하는 첫 전주곡이었습니다. MBC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MBC의 오보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MBC의 오보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이기 때문입니다.
목포MBC 기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4월 16일) 오전 11시쯤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어선을 빌려 타고 간 취재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6,800톤급 대형 여객선이 뱃머리만 남긴 채
잠겨 있었고 해경 경비정과 헬기, 어선들은 잠긴 선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손을 전혀 쓰지 못했습니다.
잠수요원들은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기자들은 현장 지휘를 맡고 있던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통해 취재를 했고, 구조자는 160여 명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는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고 합니다. 취재기자들은
구조자 숫자가 중복 집계 됐을 것으로 보고 데스크를 통해 서울 MBC 전국부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MBC는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중앙재난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MBC는 왜 취재기자들의 말을 믿지 않고 ‘받아쓰기 방송’이 된 것일까요?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이것뿐이 아닙니다. 해경이 최초 구조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목포MBC기자들이 처음으로 알고 비판보도를 하려고 했을 때 전국부는 이를 다루지 않고 있다가 며칠 뒤
다른 방송사가 먼저 보도하는 바람에 낙종을 했습니다. 타사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것을 죽기만큼이나 싫어하며
특종에 목을 매는 기자들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판단을 한 것일까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오보’와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의 중심에는 세월호 취재를 진두지휘해 온 전국부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전국부의 수장은 며칠 전 더욱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그는 지난주(5월 7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분노와 슬픔을 넘어서’라는 기사를 통해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습니다.
이 보도는 실종자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을 압박’하고 ‘총리에게 물을 끼얹고’ ‘청와대로 행진’을
했다면서 ‘잠수부를 죽음으로 떠민 조급증’이 원인인 것처럼 따져 물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유족들에게 위로는커녕 민간 잠수사 죽음의 원인 제공자인 것 같은 뉘앙스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MBC기자회는 어제 (5월 12일) 성명을 내고 이 기사를 비이성적, 비상식적인 것은 물론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
보도로 ‘보도 참사’로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을 MBC기자에게 있다며 가슴을 치며
머리를 숙인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런데도 문제의 당사자는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하기만 합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어제(12일)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기자회의 사과 성명에 대해 문제의 전국부장이 후배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적극 가담이든 단순 가담이든 나중에 확인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합니다.
MBC 뉴스의 또 다른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전국 18개 MBC 계열사 기자인 우리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MBC의 작금의 행태에 대해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런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일들은 오롯이 전국부장이라는 보직자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며, 보도국 수뇌부 전체의
양식과 판단기준에 심각한 오류와 결함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는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해직과 정직, 업무 배제와 같은 폭압적 상황 속에서 MBC 뉴스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MBC
기자회의 주장에도 공감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이런 ‘보도 참사’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MBC는 절대
국민들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본업으로 삼는 언론인이 자신의 사명을 잊고 왜곡된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직업윤리를 넘어 역사의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의 어두웠던 시절 언론인들이 보여줬던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기회주의와 보신주의의 행보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전국MBC기자회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 그리고 국민에게 MBC의 구성원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MBC가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지만 MBC를 둘러싼 환경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조차 부끄럽게 합니다. 지켜질지 불투명한 약속은 또 다른 기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사죄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 있는 희생자들이시여 우리들을 절대 용서하지 마소서!전국MBC기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