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세월호 사건과 스토리텔링-미투라고라(펌)

탱자 조회수 : 1,302
작성일 : 2014-05-09 20:51:37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이란 것이 인간 본연의 성품에 기인하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능력도 끊임없이 훈련되고 개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0대 초반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정확한지 자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내가 그 책에서 받아들인 메시지는 그런 것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저 사랑이란 것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심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지사지, 네가 받기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마라는 황금률 등이 모두 이러한 원칙에서 나오는 교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인문학의 존재 이유라는 것도 바로 다른 사람의 상황과 심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교회학교 중고등부 교사로 일하면서 10대 청소년들에게 국내외의 짧은 단편들을 읽는 연습을 시켰던 것도 이런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모파상의 <목걸이>, 루이제 린저의 <빨간 고양이>,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영화)> 등을 읽고 감상하면서 독자가 등장인물들과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를 토론해봤다. 요즘 청소년들이 공감하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갈수록 심각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판단을 한 것도 그런 경험을 통해서였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유효기간이 뚜렷하게 존재하지만 인문학의 지적 소산들은 본질적으로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직 시간의 경과 속에서 계속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인지 아닌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 유효기간이 밝혀질 뿐이다.

 

우리나라의 문학 작품들을 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두고두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가 드물다는 점이다. 그냥 시험 공부를 위해서 강제로 읽고 배우는 작품들은 많지만, 말 그대로 우리의 생활과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재연되고 감상되고 다양한 부가 컨텐츠가 더해지는, 말 그대로 자신만의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그런 작품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세계사적인 경험 자산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는 점에서 이것은 정말 비극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근대화와 식민지배, 해방과 분단, 전쟁과 독재, 개발과 민주화 등 다른 나라들이라면 몇 세기에 걸쳐서 경험했을 스토리들이 이렇게 짧은 시기에 어마어마한 경험으로 축적돼있는데, 왜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풍부한 스토리 자산을 마음껏 활용하는 위대한 작가 정신이 많이 보이지 않을까? 내가 과문한 탓에 있는 분들을 몰라보는 것인가?

 

세월호 사건의 비통함이 도무지 가시지 않는다. 지금도 페이스북과 각종 언론에 올라오는 얘기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막막하다. 문득 나도 이러다가 광란의 상태가 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마저 느낀다.

 

후배와 이런 얘기를 하다가 '다른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그 아이들이 겪었을 그 상황이 너무 분명하게 상상이 되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들었다. 공감한다. 아마 이 사건으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모든 분들이 비슷한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문득 다시 위대한 작가를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모르기는 해도 아마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주었던 정신적 충격과 고통도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그럼, 우리의 정신은 다 치료되고 아무 일도 없어지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아픔이 진정으로 치료되는 것은 그것이 올바로 서술되고 표현되었을 때이다. 이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고 본질이고 존재 이유이다. 사람들이 그냥 자기의 고통을 누군가 들어주기만 해도 힐링의 효과가 생기는 것도 이런 원리이다. 세월호 사건도 위대한 정신이 서술해야 한다. 이 사건의 본질과 콘텍스트를 담아내고 우리 모두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스토리텔링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치유가 가능하다. 그래야 살아남은 우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저 아이들을 정말 안식으로 보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http://theacro.com/zbxe/special1/5040877
IP : 61.81.xxx.225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82549 그리워요.. 노짱님 5 내일 2014/05/23 758
    382548 김진표 후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 무무 2014/05/23 1,414
    382547 안산시장 이렇게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9 샬랄라 2014/05/23 1,622
    382546 (주)아해'원자력폐기물 처리 기계' UAE와 계약?? 33 (주)아해 .. 2014/05/23 2,724
    382545 박원순 시장 선거 포스터요 ... 2014/05/23 852
    382544 (일상글) 8살 아들아이.. 공부습관.. 대체 어찌해야합니까 24 ... 2014/05/23 3,007
    382543 신한카드 쓰시는 분들-개인정보 수집항목 대거추가된거 확인하세요 8 2014/05/23 1,784
    382542 호외방송 - 비공개 육성최초공개, 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 노변.. 4 lowsim.. 2014/05/23 1,447
    382541 평일 점심의 패밀리 레스토랑의 광경.... 70 ... 2014/05/23 17,995
    382540 국어해야하나요? 3 중3 2014/05/23 1,151
    382539 강릉서 발견된 ‘박근혜 풍자’ 스티커, 전국에 붙는다 27 우리는 2014/05/23 4,672
    382538 자위대, 미 요청으로 한반도 진주 가능 5 전작권없는한.. 2014/05/23 1,023
    382537 (일상글) 중 1 아이 한자 공부 처음 시작하려는데... 4 한자 2014/05/23 1,194
    382536 남재준 국정원장 사임에대한 유우성 변호인단의 입장 (펌) 2014/05/23 1,049
    382535 서울 교육감토론회 보고계시나요? 4 녹색 2014/05/23 1,216
    382534 [펌글] 고(故) 유예은양 아버지 유경근씨 어제 성당에서 하신 .. 10 링크에요 2014/05/23 2,598
    382533 (그리운 노짱님)초등6학년 아이 옷 본인이 사 입나요? 5 초등6학년 2014/05/23 1,344
    382532 "정몽준, 시립대생 황승원 씨 죽음을 아나요?".. 2 샬랄라 2014/05/23 1,390
    382531 세월호 사태에도 김기춘 '유임'…영향력 더 강해지나 外 1 세우실 2014/05/23 815
    382530 궁금해서 묻습니다. 1 .. 2014/05/23 598
    382529 대체 왜 노통을 그리 두려워하는걸까요? 35 의문점 2014/05/23 3,523
    382528 안산..이러다 새누리 되겠어요 4 ... 2014/05/23 2,033
    382527 82님들 도와주세요.... 3 콩알맘 2014/05/23 822
    382526 아이의 말대답은 어떻게 해야 되나요? (초1) ... 2014/05/23 883
    382525 지난주 청해진이 아해 그림 또 사들였다는~ 9 약1억원어치.. 2014/05/23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