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인데,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친구를 잘 사귀질 못해요.
이번 학기에도 서로 집을 오가며 노는 같은 반 친구를 한 명 사귀긴 했는데,
결국 그 친구가 우리 아이를 멀리해서 아이가 많이 낙담한 것 같아요.
외동으로 또래 아이들과 많이 부대끼지 못하며 자랐고
7살 유치원 때 전학 한 번, 10살 이번 학기초에 또 전학 한 번..
교육환경만 바뀐 게 아니라, 도시에서 시골로 다시 도시로...
생활환경도 크게 여러 번 바뀌었어요.
학습 같은 인지면에서는 뛰어난 편인데
운동신경이 없고 소위 말하는 눈치가 없어요.
유치원에서 전학했을 때 아이가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정해 보여서
지능이랑 심리 검사를 받았는데
학습과 관계된 언어성 지능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비해
사회성이나 운동 신경과 관계된 동작성 지능이 16 정도 낮다고...
그 정도 차이면 꽤 유의미한 차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어릴 때부터 또래 아이를 보면 반가워하고 같이 놀고 싶어는 하는데
노는 방법도 잘 모르고, 어쩌다 같이 놀게 되어도
친구 관계를 잘 유지하지 못하더군요.
어른들은 아무래도 아이를 받아주면서 얘길하니까
어른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어른들과 1:1로 얘기할 땐 공손하게 말하는 편이고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이나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잘 표현하는 편이라
어른들은 처음에는 아이가 조숙한 영재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그러나 제가 지켜본 바로는 자신의 관심사를 일방적으로 설명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때는
상당히 유창하게 말하지만
상대방의 관심사에 대해 얘기할 때는 적절한 호응을 못하고
뭔가 미묘하게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할 때가 많아요.
어른들은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러려니, 하고 그런 미묘한 어긋남을 받아주니까
그래도 대화가 지속되지만
또래 아이들과 대화할 땐 그 어긋남 때문에 문제가 발생해요.
소위 말해서 아이들이 볼 때 '이상한 아이'인 거죠.
또래 아이들 여러 명과 함께 있을 때 지켜보면
아이가 뭔가 불안정해 보이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아요.
그 어쩔 줄 모르는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된 동작이나 과격한 말로 표현해서 더 문제에요.
학교에서도 그런 패턴이 반복되니까
선생님들이 많이 신경을 써야 하는 아이로 꼬리표가 붙었어요.
인지면에서는 또래보다 뛰어난 아이가 또래들과 잘 협응이 안 되니까
버릇없는 아이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들도 아이가 순진하고 정이 많다는 걸 인정하셨어요.
또래 관계에서 인정받는 좋은 경험을 많이 못해서 더 문제가 심각해지는 건가 싶어서
다른 엄마들과 교류하며
아이들 모임에 아이를 참여시켜 보기도 했지만
계속 겉돌기만 해요.
또래 아이 한 명과 1:1로 있을 때는 그럭저럭 무난하게 노는데
우리 아이가 바라는 것만큼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는 못해요.
아이가 게임이나 로봇, 축구 같은, 또래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별로 흥미가 없어서 아이들과 더 친밀해지지 못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미술이랑 피아노 학원 보내고 있는데
선생님들께 여쭈어 보니
일단은 피아노 연습도 정해진 양만큼 열심히 집중해서 잘하고
미술학원에서도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해야 하는 것들을 즐겁게 잘한다고는 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발표 같은 건 곧잘 해도
수업 시간에 멍하니 있을 때도 있고
자기가 관심 있는 건 몰입해서 잘하는데, 그렇지 않을 땐 꽤 산만한가 봐요.
아이가 짝과 계속 트러블이 있어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보니 영리하고 재주가 많은 아이인데
학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 부주의하게 구는 경우가 많다고 하세요.
책읽기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많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자기가 새롭게 경험한 것들을 소재로 해서
구성이 좀 단순하긴 해도 동화를 혼자 썼어요.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는 관련된 책들 열심히 찾아 읽고
어른들 읽는 잡지도 구독해서 읽는데
이해를 하면서 읽는다기보다는 단순한 암기인 것 같아요.
관심 있는 건 좀 놀랍다 싶을 정도로 잘 외워요.
도표나 반복되는 도식, 사물의 연관 관계에 관심이 많고
자기가 아는 것들을 도표로 정리하는 걸 좋아해요.
제가 볼 때는 사고가 넓게 확장되지 못하고 좁고 깊게 파고드는 유형이에요.
그런 성향 때문에 더 융통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근처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선배 언니가 있어서
가끔 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선배 언니네 아이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해도
본인도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욕구 자체가 별로 없고
일단 학교에서 조용히 있는 아이라 아이들에게 그다지 상처는 안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친구에 대한 관심도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데
그 욕구가 해소되지 않고 자꾸 좌절의 경험이 쌓이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