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헌법의 초안자 김기춘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다. 요지경 세상이다. '긴급조치'가 없어도 대통령은 지엄한 존재라 누가 감히 쓴소리를 못한다. '유신의 악몽'이 '꿈'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세상이 녹록치 않긴 하다. 유신 '괴물'의 딸이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은 김재규 장군의 명예회복이 아직도 여전히 멀 것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책내용중에서
박정희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 소박하고 선량한, 혹은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을 연출하는 데 능숙했다. 밀짚모자를 쓰고 막걸리 잔을 든 채 논두렁에 앉아 농민들과 담소하는 모습으로 수백만 표를 긁어모으는 데 재능을 발휘했다. 반면에 사람들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는 인면수심의 야비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양면성을 보였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일본군 장교 복장에 일본도를 휘두르며 일본 군가를 부르는 엽기적인 행동도 예사로 했다.(77쪽)
유신독재를 비판하면서 감옥에 들락거리는 국민은 전체 국민의 숫자에서 별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실종된 체제 속에서도 저항만 하지 않으면 큰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를 가장 큰 가치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것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심은 가치관이다. 독재가 나쁜 줄은 알지만 5·16 이후부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박정희의 국장이 치러질 때 목 놓아 울던 국민들은 박정희가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실종시킨 독재자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었다.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