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니 햇살이 곱다 못해 과하다
아침 나절 바람도 심상찮게 부드럽더니 ..좀..덥다
봄이 꾸역꾸역 올라와 이제사 만세를 부르나 보다
약속이 2시간 뒤로 미뤄졌다
난감하다
촘촘하게 짠 뜨개실에 구멍이 난 것처럼...
아케이드를 걷다가 점심이나 떼우자 하고 두리번 하는데
하얀 캡을 쓰시고 입막음 마스크를 착용한 이쁘장한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 엄마 죽 "이라는 자그마한 글씨의 수줍은 간판
한창 사람들이 몰리는 때라 조금은 한적한 식당을 물색 중이었고
안을 보니 대여섯 정도가 띄엄띄엄 의자에 앉아있다
일행은 얼마 없고 대부분 혼자 밥 먹는 이들이다
그 반가운 동질감이란!
당당히 들어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해도 아주머니가 안고 싶은 데 앉으라고 주문을 받으신다
예전 만화 "호호 할머니"를 닮으셨네...^^
눈도 입도 ..진짜 웃으신다
서비스업이 워낙 피곤한 일이라 대부분 정형화된 인상이 있다
입은 웃지만, 눈은 무의미한 빛을 내보낸다
그렇게 잣죽을 시키고 혼자라는 어색함을 무마하려 괜히 핸폰을 만지작 거리고 수첩을 꺼내
분주한 척하다, 뭐하는 짓인가 싶어 따라주신 보리차를 홀짝댔다
사실 혼자 밥을 먹을 땐 살짝 시간대를 피한다
일군의 사람들이 빠진 식당에선 혼자 라는 의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쩝쩝...다들 맛나게들 먹는다
그릇에 코를 넉자는 빼고 먹느라 얼굴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직장인들이다
동료들이랑 삼삼오오 몰려다닐 시간에 혼자 와 먹는다
여지없이 그들이나 나의 곁에는 핸폰이 있다
앞에 앉은 한 남자가 연신 한쪽 다리를 떨면서 먹는다
한 손엔 수저 한 손엔 핸폰이 연신 왔다리갔다리 한다
다리는 정확히 4분의 3박자의 리듬으로 떤다
돌아앉았다...내 눈이 자꾸 그 남자의 다리를 세고 있다
주문한 죽이 나왔다
과감하게 핸폰의 전원을 꾹~ 눌렀다
오로지 나만의 점심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