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직접 어디엔가 쓴 에세이에 사생활을 드러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어요.
드라마작가로 데뷔한 후, 교사였던 남편과 불화가 생겼고 헤어진 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써놓았더군요. 이혼사유는 가정폭력이었어요.
왜 그렇게 드라마 안에서 가정폭력에 대해 민감하고 단호한지 공감이 되더라구요.
물론 여주인공은 오은수(이지아)였지만 작가 본인은 채린(손여은)에게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구요, 그게 도를 넘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드라마 초반에 지겹고
재미없던 것에 비하면 대중예술로서의 드라마의 역할은 잘 하고 끝내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비록 스토리가 산으로 갔다 할지라도 김수현 작가가 신도 아니고 노령에 이 정도 시청률과
화제를 이끌어낸 건 대단히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작가처럼 불러주면 보조작가들이
타이핑해서 낸 작품도 아니고 쪽대본 없이 직접 쓰는 걸로 유명한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요.
물론 거장 소리를 듣는 수십년 경력의 소유자이지만 쓰는 드라마마다 빠지지 않은 이혼녀들과
과부들...그리고 본인의 캐릭터를 빼다박은 듯한 없는 집안에서 자란 똑똑하고 경우 바른 여주인공들.
청주에서 유명할 정도로 수재였고 잡지사에서 일하고 받은 돈이 너무 야속하고 홀대하는 회사에
분개해서 월급봉투를 박박 찢어버렸다는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아이를 키우고 독립하기 위해서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써있더군요.
암튼, 차기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고 이 정도 뽑아냈다면 반은 성공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드라마작가들 중에 제가 좋아하는 분들은 하나 둘씩 세상을 뜨기 시작하네요. 조희 작가는 아예
검색에 제대로 뜨지도 않는데 자살하셨다고 얼마 전에 들었어요. 김수현 작가샘의 제자였구요.
SBS [결혼]이라는 드라마가 인상적이었죠. 최명길과 양금석이 임채무를 놓고 벌이는 전쟁 아닌
전쟁...그리고 새로운 연인이었던 남성훈(이분도 고인이 되셨죠)과의 갈등...엔딩은 너무나 끔찍하게
마무리되었지만, 조민수의 당찬 연기와 윤동훈의 지적인 캐릭터가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아무리 막장드라마가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김수현 작가는 세상에 크고 작은 울림을 주는 분인 것 같아요.
대사가 길고 클리셰가 꽤 반복되지만, 묘하게도 화면을 사로잡는 언어의 마술사라는 호칭은 잘 어울립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셔서 좋은 드라마 계속 써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주 마지막회라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