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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백조들의 시련 (3)

로마연못댁 조회수 : 3,095
작성일 : 2014-03-20 21:18:35

로마에 살지 않는^^ 로마연못댁입니다.

 

어제 밤, 터프하기 짝이 없는 욕쟁이 삼형제 치닥거리에 진을 빼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을 때,

제가 남편에게 말했어요.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가 동화 같다고 해.'

 

남편 : 륄리?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냐고도 하고, 나더러 작가냐고, 지어낸 이야기 같다고도 해.'

 

남편: 륄리? 륄리?

 

가끔 제 옆에서 백조들의 밥 셔틀 보조를 뛰어주는 남편, 잠시 눈을 가늘게 모으고 있더니,

'그 비행레슨 동영상을 보여드려.'

 

제가 쿠션으로 남편의 얼굴을 덮어버렸어요. --;

 

눼,

저희들의 리얼 라이프 스토리 맞습니다.

 

 

 

>>>>>>>>>>>>>>>>>>>>>>>>>>>>>>>>>>>>>>>>>>>>>>>>>>>>>>>>>>>>>>>>>>>>>>>>>>>>>>>

백조 아가들을 돌보면서 백조들에 대해서 공부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너무 빈약해서 놀랐습니다.

 

어떤 먹이를 줘야 하는 지, 어떤 걸 주면 안되는 지.

백조들의 성장 과정, 생태, 좋아하는 환경은 어떤 것인지 열심히 검색을 해봤는데

빵을 많이 주면 배가 불러서 정작 필요한 영양 섭취를 게을리 할 수 있다고 해서,

성장기용 오리 사료를 구입하고.

 

천적은 없지만, 배고픈 여우들의 타켓이 되는 일이 종종 있고,

날아다니다 케이블에 걸려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낚시도구들 중에 연못에 사는 동물들에게 위험한 것들이 많아서

영국에서는 규제를 엄격하게 한다고 들었어요.

 

특히 납성분이 연못을 오염시켜서 연못 동물들이 납중독으로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었든 적도 있었는데

최근 많이 회복되었답니다.

 

얼음에 갇히면 얼음을 열심히 깨줬습니다.

 

백조들은 저쪽에서 둘이 열심히 뒤뚱뒤뚱 미끄러지면서 발을 하나씩 얼음 위에 올려놓은 다음,

가슴으로 내리 눌러서 얼음을 깨고, 얼음이 깨지면 다시 한 발씩 얼음 위로 올라오고,

 

저는 이쪽에서 긴 나무로 얼음을 깨서 꽁꽁 언 연못에 마침내 작은 물길이 생기면

백조들과 그 뒤로 오리들이 졸졸졸 제 앞으로 와서 아주 작은 걀걀 소리를 내는데

 

에드위나 할머니의 남자 친구이신 앨런 할아버지가 가래를 뱉기 전에 내는 소리 같은 그 소리가

딱히 아름답지는 않지만 뭔가 안도감이 몰려오는 소리인 것은 맞아요.^^

 

날아다니질 않으니 케이블 사고의 위험은 덜하다고 생각했고,

여우들도 걱정스럽긴 했지만 들판 가득 토끼들의 세상인 곳이라

굳이 물 속으로 들어가 백조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어요.

 

처음 동네에서 발견했을 때의 비쩍 마른 모습에서 덩치도 한결 커지고

건강해진 백조들을 보고 흐뭇해 하던 2월의 어느 날 아침,

덩치 큰 어른 백조 한쌍이 연못에 도착했어요.

 

할머니들과 저는 연못이 풍성해졌다고 즐거워하며,

새로 온 백조들에게도 먹을 것을 듬뿍 줬어요.

 

 

먹을 걸 주고 돌아서는데,

등 뒤에서 비명소리 비슷한 소리가 나는 겁니다.

 

덩치 큰 흰 백조들이 아직 회색인 백조 아가들을 공격하고 있었어요.ㅜㅜ

 

목을 쪼다가, 몸을 확 부풀려서 위협하며 아가들을 몰고 다니더니,

급기야는 아가들을 연못 구석의 갈대숲 안쪽으로 밀어넣고,

그 앞에 떡 버티고 계속 순찰을 돌면서 나오지 못하게 지키는 거예요.

 

아가들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얼마나 사납게 공격을 하는 지,

 

할머니들과 저는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지만,

어떻게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며칠 동안 백조 아가들을 연못에서 볼 수 없었어요.

 

다친 건 아닐까.

다른 곳으로 떠난 걸까.

 

그냥 다른 곳으로 떠난 것이기를.

 

 

아직 잘 날지 못하는 녀석들이라 가도 멀리는 못 갔을 거라 생각하고

여러 날 근처의 연못들을 샅샅히 찾아봤지만 녀석들의 흔적은 없었지요.

 

야생동물들과의 인연은 항상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그들이 다가와 주면 시작되었다가,

어느 순간 그들이 떠나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라는 것,

그동안 여러번 경험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문득 눈물이 쏟아져 나와서

비 오는 연못가에 서서 혼자 울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손에 든 책은 <유인원과의 산책>

에뮤를 연구하던 사이 몽고메리는 6개월 정도 남부 오스트레일라의 보호 구역에서 에뮤를 지켜 봅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렇게 썼더군요.

.........아니나다를까 그날 밤 어두워지는 풀섶으로 들어가는 새들을 그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에 정해 놓은 규칙을 깨고 필사적으로 그들을 뒤쫓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나는...참담한 기분으로...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그때 내가 원한 것이 단지 자료만이 아니었음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다.............

IP : 92.233.xxx.253
1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티라미수
    '14.3.20 9:26 PM (39.120.xxx.166) - 삭제된댓글

    어느날, 드디어로 시작되는 감동적인 결말을 기대했건만ㅠ
    앞으로도 동화같이 사는 모습 종종 풀어놔 주세요^^

  • 2. 흐억
    '14.3.20 9:34 PM (92.233.xxx.253)

    쓰다가 올라가버렸어요.

  • 3. echo
    '14.3.20 9:44 PM (122.136.xxx.94)

    플리즈 컨티뉴...

    오전부터 기다렸어요...ㅠㅠ

  • 4. 하하
    '14.3.20 9:49 PM (175.198.xxx.72)

    이제 사라진 백조들의 등장 기대하며 .....

    재밌는 글 잘 보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 5. 저도..
    '14.3.20 9:54 PM (109.156.xxx.140) - 삭제된댓글

    음..맞아요. 가끔 영국이라 볼수 있는 그 냉정한 자연의 법칙에 마음이 착찹해지기도 해요.
    힘이 있고 없고를 적나라 하게 보게되서 가끔 마음이 아파요.
    지나가다가 다른집 앞정원에 무수하게 널려있는 비둘기 깃털을 보고서도 마음이 아프구요..
    매년 새끼를 4-5마리 낳아서 데리고 다니던 엄마여우의 새끼들이..6개월정도 지나서는 3마리 밖에 안보일때도..마음이 아파요.

    가끔 회색청솔모가 땅에 내려왔다가 여우에게 잡힌것을 보고 소리질러 여우 놀라게 해서 도망가게 하거나..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을때 나무에 있다가 떨어진것을 여우가 바로 물어버리는 장면을 보는것도 마음이 아프네요..
    세컨더리 다니는 딸아이가 냉정하게..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배가 고프니 먹어야 살것이고..못먹으면 여우라도 죽는다고..

    ㅜㅡ 근데 저희가 여우 먹을것 많이 주거든요??근데 꼭 그렇게 여우는 새랑 청솔모를 잡아야 하는지..
    딸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는 고기 안먹냐고..여우도 가끔 고기를 먹어야한다고..
    냉정한것.

  • 6. ...
    '14.3.20 10:05 PM (39.120.xxx.193)

    가만히 앉아서 원글님 들려주시는 얘기 하염없이 듣고싶네요.

  • 7. 로마연못댁
    '14.3.20 11:06 PM (92.233.xxx.253)

    댓글은 수정이 안되는군요.
    지워지고 말았어요.

    바로 이어서 썼습니다요.

    자연의 그 냉정함 앞에서 저도 먹이를 주되 끼어들면 안된다고 여러번 다짐을 하는데,
    흰 백조들이 아가들 어깻죽지를 물고 늘어지며 공격할 때는 저도 모르는 사이 소리를 지르며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던 적도...

  • 8. 열무김치
    '14.3.21 12:11 AM (62.228.xxx.248)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연약한 약자 아기 오리라는 것을 다른 백조들도 아는 듯해요.....
    아 왜 이렇게 슬픈 자연의 법칙인가요....

  • 9. 열무김치
    '14.3.21 1:25 AM (62.228.xxx.248)

    약자 아기 백조요...갑자기 오리라니 ㅋㅋ

  • 10. Dd
    '14.3.21 9:10 AM (211.246.xxx.8)

    동화같고 좋은데요ㅎㅎ
    제목이 눈에 잘 안띄어서 뭍히는것 같아요ㅎ

  • 11. 늦게
    '14.3.26 7:54 PM (223.62.xxx.78)

    찾아 읽고 있어요.

  • 12. 어디로 갔을까요
    '14.4.5 9:14 AM (112.152.xxx.12)

    비오는 연못가에 서서 울었다니 그또한 너무 순수히 아름다운 동화같습니다.역주행하는지라 다음편으로 갑니다~

  • 13. 존왓슨
    '14.6.21 3:16 PM (221.153.xxx.203)

    연못댁님글 3)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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