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께 걱정만 끼치고
정작 저는 냄새를 좀 풍기고 다니기는 했지만,
영국 북서부의 아름다운 Lake District 에서 6일 동안 즐겁게 지내다 왔어요.
냄새가 가장 오래 남아있던 게 머리카락이었어요.
제가 어깨를 덮는 길이의 머리에 웨이브까지 있어서 특히 냄새가 머물기 좋았던 거 같은데,
냄새가 이젠 다 빠졌구나 싶어서 안심하려던 즈음,
머리를 묶고 있던 핀을 뺐을 때, 훅하고 다가오는 그 신선한 시궁창 냄새에
한순간 욱해서 머리를 확 밀어버릴 뻔도 했어요.
저희가 묵었던 농장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달걀을 주시면서 풀어서 머리에 바르고 한참 있다가 씻으라고 하셔서
달걀을 머리에 바르고 랩으로 두르고 있다 씻었는데 효과가 좋았습니다.
오늘은 백조들하고 가까이 사는 이야기 해드리고 싶어요.
저희집 뒤에 세개의 연못 중 두번째로 큰 듀크 연못에서
지난 여름 백조 한쌍이 자리를 잡고 여섯마리의 새끼들을 낳아 길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나는 연습을 하다가 전선에 걸려서 죽고,
겨울이 가까워 오면서 부모 백조들이 날지 못하는
두 녀석을 남겨두고는 새끼 세마리만 데리고 떠나버렸어요.
남겨진 두 녀석이 저희집 뒤의 로마 연못에 터를 잡고는 배가 고파서인지 자꾸만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날지 못하는데다 아직 털갈이 전이라 어두운 회색에 가까워서 저녁엔 잘 보이지도 않는 녀석들이
밤에도 어기적대며 큰 길을 건너다닌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에드위나 할머니와 제인 할머니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서
이 녀석들을 돌보는 중이예요.
동네 사람들에게 백조들을 보면 동네에서는 먹을 것을 주지 말고
연못으로 몰아 넣은 뒤에 먹을 것을 주시라고 부탁은 해놨는데
어떤 분들은 새라면 질겁을 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웃집 마당을 떡하니 점거하고 앉아서 꿈쩍 않는 녀석들을
들어서 연못까지 옮겨놓은 적도 여러번.
하긴 연못도 여우들 때문에 불안하긴 해요.
이 녀석들이 스스로 앞가림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이는데
겨울을 어떻게 날까 걱정스러워
여러 기관에 조언을 구해보기도 했는데, 별로 쓸만한 내용은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올해 79세 에드위나 할머니와 68세 제인 할머니께서 전문가(?)한테 들었는데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익히도록 해줘야 한다고.
48세의, 꽃(!)같은 저를 보면서 말씀하셨어요.
아....... ㅡ,.ㅡ
그래서 제가 하루에 두번씩 백조 아가들에게 비행레슨을 했습니다.
백조 아가들에게 비행레슨이라니 아주 우아한 느낌이지만,
사실은 먹이로 이 녀석들을 언덕 위로 유인한 다음,
꼭대기에서 광년이로 돌변!
괴성을 지르며 막 몰고 내려옵니다.
음하하하하하 ^^;;;;
비가 자주 내리는 이 곳의 언덕은 많이 미끄러워서 제가 비틀비틀거립니다.
이 놈들 날개 열심히 퍼득이지만 날지는 못하고 똥만 쭉 지리면서 죽어라 내뺍니다.
한번은 두 녀석이 달려가다 한 녀석이 나 그만할래 하고 중간에 주저앉는 바람에
그 녀석을 피하다가 제가 그만 꼬꾸라져서 앞구르기로 언덕을 내려왔어요.
온 몸에 백조 똥 범벅...ㅠㅠ
저의 육중한 몸으로 백조 아가를 덮쳤으면 어쩔 뻔 했을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잔뜩 껴입은 옷 덕분에 별로 다치지는 않았는데,
다음날 비참한 기분이 들 정도로 온 몸이 쑤시기는 하더라구요.
개들 데리고 산책 나오셔서 멀찌감치서 그 꼴을 보고 계시던
에드위나 할머니 웃으시다 틀니를 풀숲에 떨어뜨리셨는데,
제인 할머니네 강아지 코라가 틀니 찾아 물고 튀어서 한바탕 소동.
틀니 때문에 얼핏보면 잇몸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 것처럼 보이는 코라 잡아서
할머니께 틀니는 돌려드렸어요.
그 와중에 뭔가 골똘히 생각하시던 제인할머니
저더러 코트 같은 큰 옷을 입고 펄럭대면서 달려보라고 하시더니
다음날 할머니 오래 된 코트를 기어이 가져다 주시고는 입고 뛰라고.
이 녀석들 밤새 안녕한가 궁금해서, 춥거나 비가 쏟아지는 아침에도 뭉기적대지 않고, 벌떡 일어납니다.
그렇게 열심히 비행을 연습시켰는데 날아보기도 전에
여우한테 당한다거나 차에 치인다거나 할까봐 걱정이었다가
어느 순간 날아오른다면 정말 감격스러울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하면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가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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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 지나고 봄이 온 지금,
백조들은 제가 안 볼 때만 날아 다닌다는 이웃들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제 앞에서는 시치미를 뚝 떼고,
부리로 제 손등을 툭툭 치면서 얼른 주머니의 맛난 것들이나 내놓으라고 조릅니다.
이제 백조들도 많이 자랐고, 혹독한 날씨도 다 지났으니,
스스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백조들에게 제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시련이 닥쳐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