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글이지만, 내용을 보면 우리도 똑같은 길을 가고 있네용
미디어와 민주주의
제임스 커런 지음, 이봉현 옮김
제임스 커런 지음, 이봉현 옮김
제임스 커런(69)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비판적 성향의 미디어학자다.
책을 꿰뚫는 가장 큰 주제는 미디어가 민주주의를 발전 또는 퇴보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디어는 주로 뉴스보도(저널리즘) 매체를 지칭하는 우리말의 ‘언론’이라는 단어보다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모두 아우르고, 콘텐츠 면에서도 뉴스,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을 함께 다룬다.
커런 교수가 자국인 영국보다 더 많은 양을 할애하는 연구 대상은 미국이다.그는 ‘미디어 시스템, 공적 지식 그리고 민주주의: 비교 연구’라는 논문에서 다른 학자 셋과 함께
미국, 영국, 덴마크, 핀란드의 미디어 시스템과 국민들이 가진 공적 지식의 수준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밝힌다. 미국의 미디어 시스템은 국가 개입은 거의 없고, 이익 추구를 기본 목표로 하는 사기업 미디어가 주류인 ‘시장모델’이다. 핀란드와 덴마크는 법과 보조금으로 뒷받침되는 공영방송을 통해 시민들에게 공적 사안을 다룬 프로그램을 접하게 하려는 ‘공공 서비스 모델’이다. 영국은 이 두 모델의 중간쯤에 있다.
네 나라 국민 설문조사 결과 미국인은 정치·경제·행정·과학 등 ‘경성’ 시사 문제와 국제 문제에 어두웠다.미국인의 67%는 니콜라 사르코지를 프랑스 대통령이라고 답하지 못했다. 62%는 교토의정서가 기후변화협약이란 것을 몰랐다. 핀란드와 덴마크는 이를 모른 사람 비중이 20% 미만이었고, 영국은 39%였다. 미국인이 가장 밝은 분야는 연예인, 사람 얘기, 스포츠 등을 다루는 ‘연성’ 국내 뉴스였다. 종합하면 “핀란드와 덴마크인은 경성뉴스, 연성뉴스 양쪽에서 풍부한 상식이 있었고, 미국인은 유럽인들보다 주변의 세상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적게 알고 있었다.” 또한 미국은 소득·학력을 기준으로 한 상위계층과 하위계층의 지식 격차가 가장 큰 나라였다. 커런 교수는 “핀란드, 덴마크 두 나라의 주요 방송은 저녁 황금시간대에 공적 지식을 링거주사 놓듯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반면 시장주도적인 미국 텔레비전은 오락을 압도적으로 편성했다”며“미국의 시스템은 진지한 저널리즘에 갈수록 덜 노출되고 공적 지식의 수준도 낮아지는 허약한 공적 생활을 조장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커런 교수는 또한 다른 논문들을 통해 ‘객관주의’ 규범, 기자의 전문직주의, 언론의 자율성 등을 이상으로 하는 미국 저널리즘 모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런 모델은 <워싱턴 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보도에서 그 정점을 보였고, 지금도 이어지는 탐사보도 등에서 나름의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 주류 언론의 보도를 분석해보면, 그들이 지금까지 대부분의 미국의 외국 침공을 지지한 데서 보이듯 정부에서 진정으로 독립적이지 않다는 점, 미국의 극심한 불평등 문제와 빈곤 문제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드러난다.이 책의 또다른 주요 논제는 인터넷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이다.
지은이는 ‘자유의 꿈과 인터넷’ 논문에서 국제 웹진 <오픈 데모크라시> 분석을 통해 인터넷이 어떻게 저널리즘의 혁신을 촉진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그 한계도 짚는다. 즉 기고자가 여전히 남성, 영어 사용자, 엘리트계층에 치우친 점, 지속 운영을 위한 수익 창출에 실패한 점 등이다. ‘저널리즘의 미래’ 논문에서는 인터넷 등장으로 저널리즘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통제 가능한 전환기일 뿐,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저널리즘은 위기에 빠지고 이는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재창조와 르네상스가 도래할 것이다’ 등이다. 커런 교수는 “저널리즘의 미래를 수동적으로 예측하면서 비관과 낙관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니라,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1차적으로는 미디어 연구자를 위한 책이지만, 기자를 비롯한 미디어 종사자들이 읽어도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미국 중심, 자유주의 시각 중심의 국내 미디어 연구와는 다른 시각, 한국과 미국을 벗어난 다른 나라의 미디어 상황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미덕이다.
안선희 기자,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