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남자의 어깨

갱스브르 조회수 : 3,342
작성일 : 2014-03-15 12:01:51

주말 결혼식

30 중반 넘어가니 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꽤를 부린다

사람들의 인사치레도 지겹고 매번 받는 질문에 까르르 웃으며 호기롭게 넘기기엔 내 맘에도 뒷끝이 남는다

해서...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주례사 시작할 때쯤 슬며시 빠져나가기도 한다

봉투만 누구 통해 보내는 것보단

방명록에 이름 석자 남기고 가는 것이 상대도 덜 서운하고 나름 생색내기에도 낫다

그렇게 맘에서 우러나지 않는 결혼식에 지쳐가다 보니

남의 결혼식 핑계 삼아 한두 벌씩 장만했던 옷에 대한 관심도 흐지부지

그냥 결혼식 의상이 지정돼 무슨 유니폼처럼 입고 또 입고 했다

특히 요즘처럼 멋내다간 얼어죽을 날씨인 때는 뭘 하나 걸치기에도 참 애매하고

게다가 운전이라도 하면 조금 불편하게 멋을 내도 흐트러질 염려가 없는데

토요일 오후인데다 차는 수리 중이고 택시를 탔는데 강남 한복판에서 거의 주차 수준

중간 삼성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야했다

평소 단화에 길들여져 있던 내 발은 좁은 하이 힐에 뒤꿈치가 슬근슬근 벗겨지려 하고

발가락을 연신 꼬무락거리며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 그렇게 다리를 연거푸 번갈아가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경복궁역까지 가는 내내 자리 한번 잡지 못하고

3호선에서 갈아탈 때쯤엔 눈물까지 찔끔...

드뎌 ..뒤꿈치에 살갗이 샤악 벗겨지려 한다..ㅠ

대롱대롱 손잡이에 의지해 한쪽으로 몸이 축 쳐졌는데 사람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던지라

옆사람이 누군지 신경 쓸 겨를도 없고 내 몸이 어떤 위치인지도 귀찮고

그런데 뭔가 비스듬히 쏠린 몸이 편안하고 안정되게 기대어 있는 거다

다닥다닥 밀착돼 있어도 불쾌하지 않은 상황이 있다

서로 민폐를 주지 않은려 조심성이 느껴져서다

그러다 내 앞에 있는 어떤 남자분의 어깨에 본의아니게 파묻히게? 됐는데

조용히 "죄송합니다. 아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말끝을 흐리고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는데

그분 말없이 괜찮다는 듯 미동도 않고 그렇게 꿋꿋이 서 계신 거다

침묵이 주는 상대의 친절함

몇몇 사람이 빠지자 살짝 자리를 비켜 내 자리 만큼을 내어준다

바로 얼굴을 보진 못하고 슬쩍 그 어깨를 올려다 보는데

그 묵직함과 믿음직스러움...

게다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들 스마트폰에 의지해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 비춰 연신 시계를 보며 뭔가에 조급해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경복궁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

출입문 열리자마자 후다닥 뛰는데 아..그놈의 힐이 발모가지를 잡는다

저절로 인상은 짜푸려지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는데

뭔가 익숙한 앞선 남자의 어깨!

경북궁 뒷문을 지나 청와대를 가로질러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내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순간 발의 고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앞선 남자의 어깨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봄날

노처녀의 앙큼한 상상은 꺼질 줄을 몰랐다

아..별것도 아닌 상황이 감정에 이런 파동을 줄 수도 있구나...

잠깐이었지만 "설렘'이 아직 나와 살고있었다... 

IP : 115.161.xxx.128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외로우신가요?
    '14.3.15 12:05 PM (115.140.xxx.74)

    결혼하고 싶으신거네요 ㅎㅎ

  • 2. 남자는
    '14.3.15 12:11 PM (198.228.xxx.146)

    불쾌했을지도... 남녀가 바뀌었다면 큰일날 글인데

  • 3. ..
    '14.3.15 12:12 PM (112.170.xxx.82)

    소설 한토막 같아요 ^^

  • 4. ㅇㅇ
    '14.3.15 12:15 PM (39.119.xxx.125)

    늘 느낌있는 갱스브르님 글^^

  • 5. 저도 시계
    '14.3.15 12:20 PM (98.217.xxx.116)

    찹니다. 밧데리 안 들어간 손목 시계.

  • 6. ^___^
    '14.3.15 1:10 PM (211.178.xxx.152)

    맛깔스런 수필 한 토막 읽네요.
    글 재주가 뛰어나세요!

  • 7. 장식장
    '14.3.15 1:20 PM (119.194.xxx.239)

    와 봄느낌의 걸레임 넘 좋아요

  • 8. 장식장
    '14.3.15 1:20 PM (119.194.xxx.239)

    아니 설레임이요 옴마야

  • 9. ㅎㅎ
    '14.3.15 1:37 PM (61.79.xxx.76)

    남자는 어깨지요.
    남자 어깨보고 결혼한 1인,저.
    역시 마음도 넓구요.
    넓은 어깨 가진 남자 만나기를요! ㅎ

  • 10.
    '14.3.15 2:27 PM (223.62.xxx.75)

    위에 장식장님 댓글에 빵 터졌어요 ㅎㅎ

  • 11. ㅇㅇㅇ
    '14.3.15 3:05 PM (121.130.xxx.145)

    예식장에서 다시 마주친 우리.
    친구들 사진 찍는 타임에 그 남자도 나도 함께 사진을 찍었고,
    신랑의 절친인 그와 함께 신랑신부를 공항까지 에스코트를 해주었는데...
    띠리리리~~ 급하게 휴대폰을 받는 그.
    "아빠~ 언제와?"
    앙증맞은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 들려오고 남자는 처음 보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12. ㅎㅎㅎㅎ
    '14.3.15 3:06 PM (223.62.xxx.108)

    장식장님 댓글빵!!ㅎㅎㅎ

  • 13. ...
    '14.3.15 3:09 PM (121.131.xxx.32)

    원글님설레임ㅎㅎ 만원버스.. 훈남품에안겨본1인예요..ㅎㅎ
    넘 설렛어요ㅋㅋ

  • 14. 남녀를 바꾸면
    '14.3.15 9:02 PM (221.150.xxx.57)

    100% 성희롱 아닌가?

    만원버스에 글래머 처자 엉덩이 스쳤어요...

    이래서 노처녀인가.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60337 화장수 만들때.. 1 스킨 2014/03/15 497
360336 말린 호박나물에 푸른곰팡이가 2 아까워 2014/03/15 1,227
360335 어르신들이 어려우세요..아니면 별로 안어려우세요..??? 4 ... 2014/03/15 984
360334 타고난 허약체질이 있을까요? 9 건강 2014/03/15 2,943
360333 건조한 두피 가려움으로 고생중-샴푸리뷰 10 화성행궁 2014/03/15 7,885
360332 남친 모임에 나가야 하나요. 3 메론 2014/03/15 1,223
360331 찾다찾다 포기요. 82님들 도와주세요~ ㅠ 6 궁금해요 2014/03/15 1,065
360330 행복해 뵈는 대학 신입생 우리 아들 13 빛나는 3월.. 2014/03/15 6,082
360329 '타워팰리스' 집주인 건보료 '0원'..라면집 사장은? 6 참맛 2014/03/15 2,006
360328 팁 얼마나 주시나요? 3 미용실에서 2014/03/15 760
360327 프레쉬 기초가 그렇게 좋나요?? 19 kickle.. 2014/03/15 6,040
360326 긴급생중계 -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증거조작사건_국민설명회 lowsim.. 2014/03/15 315
360325 김주열 열사 그린 '3.15 벽화 공개 1 315부정선.. 2014/03/15 281
360324 kt 메세지확인 ㅇㅇ 2014/03/15 1,105
360323 모 60프로 남자애 교복바지 세탁 어떻게 하나요? 15 세탁 2014/03/15 7,031
360322 신의선물 질문이요. 6 큰물 2014/03/15 1,637
360321 내일 결혼식장 보러가는데요 4 봄이다 2014/03/15 1,157
360320 엄마가 지켜야하나요? 1 초1맘 2014/03/15 629
360319 JTBC 밤샘토론...가장 역겹게 구는 인간... 2 손전등 2014/03/15 1,718
360318 시아버님 생신때 제가 우째야 할까요? 12 birthd.. 2014/03/15 3,179
360317 철분제의 위력에 고민이에요 8 2014/03/15 5,578
360316 봉사활동 할려면 어디에 어떻게 신청해야 하나요? 4 추웁다 2014/03/15 1,106
360315 민변 "검찰과 <문화일보>의 물타기, 좌시 .. 1 샬랄라 2014/03/15 385
360314 곽티슈 사이즈가 캐나다도 같은가요? 2 크리넥스티슈.. 2014/03/15 918
360313 전업이신분들 친정엄마가 살림도와주시구 애봐주시면..용돈 따로 드.. 24 전업주부 2014/03/15 4,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