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결혼식
30 중반 넘어가니 안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꽤를 부린다
사람들의 인사치레도 지겹고 매번 받는 질문에 까르르 웃으며 호기롭게 넘기기엔 내 맘에도 뒷끝이 남는다
해서... 왔다는 흔적만 남기고 주례사 시작할 때쯤 슬며시 빠져나가기도 한다
봉투만 누구 통해 보내는 것보단
방명록에 이름 석자 남기고 가는 것이 상대도 덜 서운하고 나름 생색내기에도 낫다
그렇게 맘에서 우러나지 않는 결혼식에 지쳐가다 보니
남의 결혼식 핑계 삼아 한두 벌씩 장만했던 옷에 대한 관심도 흐지부지
그냥 결혼식 의상이 지정돼 무슨 유니폼처럼 입고 또 입고 했다
특히 요즘처럼 멋내다간 얼어죽을 날씨인 때는 뭘 하나 걸치기에도 참 애매하고
게다가 운전이라도 하면 조금 불편하게 멋을 내도 흐트러질 염려가 없는데
토요일 오후인데다 차는 수리 중이고 택시를 탔는데 강남 한복판에서 거의 주차 수준
중간 삼성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야했다
평소 단화에 길들여져 있던 내 발은 좁은 하이 힐에 뒤꿈치가 슬근슬근 벗겨지려 하고
발가락을 연신 꼬무락거리며 힘을 줬다 뺐다를 반복 그렇게 다리를 연거푸 번갈아가며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 경복궁역까지 가는 내내 자리 한번 잡지 못하고
3호선에서 갈아탈 때쯤엔 눈물까지 찔끔...
드뎌 ..뒤꿈치에 살갗이 샤악 벗겨지려 한다..ㅠ
대롱대롱 손잡이에 의지해 한쪽으로 몸이 축 쳐졌는데 사람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던지라
옆사람이 누군지 신경 쓸 겨를도 없고 내 몸이 어떤 위치인지도 귀찮고
그런데 뭔가 비스듬히 쏠린 몸이 편안하고 안정되게 기대어 있는 거다
다닥다닥 밀착돼 있어도 불쾌하지 않은 상황이 있다
서로 민폐를 주지 않은려 조심성이 느껴져서다
그러다 내 앞에 있는 어떤 남자분의 어깨에 본의아니게 파묻히게? 됐는데
조용히 "죄송합니다. 아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말끝을 흐리고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는데
그분 말없이 괜찮다는 듯 미동도 않고 그렇게 꿋꿋이 서 계신 거다
침묵이 주는 상대의 친절함
몇몇 사람이 빠지자 살짝 자리를 비켜 내 자리 만큼을 내어준다
바로 얼굴을 보진 못하고 슬쩍 그 어깨를 올려다 보는데
그 묵직함과 믿음직스러움...
게다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다들 스마트폰에 의지해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에 비춰 연신 시계를 보며 뭔가에 조급해하는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경복궁역에 도착했다는 안내 방송
출입문 열리자마자 후다닥 뛰는데 아..그놈의 힐이 발모가지를 잡는다
저절로 인상은 짜푸려지고.. 한걸음 한걸음 발을 떼는데
뭔가 익숙한 앞선 남자의 어깨!
경북궁 뒷문을 지나 청와대를 가로질러 목적지를 향해 가는 내내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순간 발의 고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앞선 남자의 어깨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 봄날
노처녀의 앙큼한 상상은 꺼질 줄을 몰랐다
아..별것도 아닌 상황이 감정에 이런 파동을 줄 수도 있구나...
잠깐이었지만 "설렘'이 아직 나와 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