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소품

갱스브르 조회수 : 466
작성일 : 2014-02-27 13:45:47

처음 해외여행을 갔을 땐 유물이나 유적지만 골라 다녔다

주섬주섬 보고 들은 걸 내 눈으로 확인한다는 자체가 기적처럼 다가왔다

누구나 다 아는 곳에서 찍은 사진은 사람만 바꾸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처음은 그렇게 모두가 아는 걸 나도 안다는 뿌듯함에서 출발한다

서서히 눈을 뜨는 순간은 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갈아타는 때다

자기만의 소소한 취향이 외국이라는 낯선 틀을 벗어나면 세련돼지고 여유로워진다

한 때 영국에서 공부했던 사촌언니를 따라 석 달여 런던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에 머문 적이 있다

처음 일주일은 신나게 돌아다니고 도심의 내로라하는 랜드마크를 따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이삼 주가 지나자

나 혼자 버스도 타고 전철도 타고 하다

본의아니게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게 됐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분위기가 예쁜 자그마한 소품 가게들...

영국인들이 썩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물건을 사고 팔 때의 대우는 참 싹싹한 인상이다

그때 산 빗이며 선물 상자, 브로치, 낡고 닳은 찻잔하며 쓰임새를 알 수 없는 묘한 재료들

값도 저렴하고 부피도 고만고만해 사 모았더니 한 살람 차릴 만큼 보따리에 두둑이 넣어오느라 땀 좀 뺐다

장터 같은 곳에서 산 요상한 너플너플 바지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멋스럽고 튀지 않는 개성으로 내 소중한 보물이 됐다

그 옷을 팔던 주인 왈 "짚시들이 입는 옷"이라는 말에

아마 순식간에 집어들었을 거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맛도 있다

영국 음식이 맛있단 생각은 못했는데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모닝 빵을 사려고 돌길을 걸어가 말도 안 통하는 가게 안에서

빵이 나오길 기다리며 멀뚱히  한 귀퉁이에서 소심하게 기다린 기억...

몇 번 그렇게 매일 드나드니 주인 아줌마도 어느 날엔가 포장 잘해서 잼까지 챙겨주시고

나중엔 다 팔릴까봐 내 몫을 따로 떼어놓고는 ... 기다렸다 했을 때

괜히 짠한...고마움

그리운 건 빵보다도 빵을 싸느라 부스럭대던 그 포장지 소리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이 오고 간 가게는 다음 날 아침 문을 열 때까지 고요하고 옛스럽게 그곳에 있다

마치 동화책에서 봤던 그림 같은 외관이 내겐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괜히 지나다 쓰윽 들여다보고는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몇 시간 전에 봤던 어느 손님은

하루 해가 다 가도록 책을 보며 옴짤달싹 않고 앉아있는 모습까지도 사진처럼 남아있다

두서너 모금이면 없어질 차를 대여섯 시간 씩 나눠 마시는 그 여유는 놀랍다

자잘하고 일상적인 소품이 주는 여운

그 작은 받침대 하나가 뭐라고

가끔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을 끌고 온다...

IP : 115.161.xxx.105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64160 문재인 "무공천 여부, 당원 의견 물어야" 27 샬랄라 2014/03/24 1,683
    364159 여자 체대, '고발 학우 도끼로 찍고 싶다' 1 손전등 2014/03/24 2,221
    364158 폰으로 소액결제시 승인번호 1 ㅁㅁㅁ 2014/03/24 949
    364157 Gabor, 제옥스 구두 신는 분들.. 8 --- 2014/03/24 2,969
    364156 소녀들아! 치맛단 한 단만 양보해다오 15 ... 2014/03/24 2,900
    364155 제과제빵자격증 따고 싶은데요. 2 제빵사.. 2014/03/24 1,713
    364154 초1, 어린이 안심 서비스 신청하는 게 좋나요? 5 질문 2014/03/24 1,361
    364153 고대구로병원 근처 잘만한 찜질방.. 3 gogo 2014/03/24 2,889
    364152 시댁에 혼자 가는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세요 16 시댁의 입장.. 2014/03/24 4,181
    364151 혹시 산드로 옷 아시는분? 6 .. 2014/03/24 3,402
    364150 돌선물로 옷말고 뭐가 좋을까요?? 2 선물고민 2014/03/24 1,613
    364149 남자들은 왜 아나운서에 환장을 할까요? 22 이유가뭔지 2014/03/24 7,298
    364148 경험없이 작은카페 하시는분 계세요? 4 혼자 2014/03/24 1,634
    364147 소꼽친구 청견 3 봄날 2014/03/24 1,243
    364146 저희엄마 불안장애이신가요? 5 2014/03/24 2,183
    364145 80대 할머니 옷 어디서 구입해요? 3 봄옷 2014/03/24 3,453
    364144 한근에 600g 아닌가요 7 한근 2014/03/24 3,624
    364143 시부모합가시 적당한 아파트 평수 97 thvkf 2014/03/24 13,299
    364142 남편과 사이는 그저그런데 아기 가져야 할까요? 7 2014/03/24 1,495
    364141 아름다운 개나리와 진달래...... 손전등 2014/03/24 756
    364140 고등 딸아이 에 대한 걱정으로 11 어제 2014/03/24 3,588
    364139 허리디스크 어찌나으신분들있으신가요 2 디스크 2014/03/24 1,267
    364138 성매매 의혹 업소 건물주는 3선 의원 3 울산 큰애기.. 2014/03/24 1,160
    364137 공무원시험 준비 1 ?? 2014/03/24 1,191
    364136 침술원이요 1 침술원 2014/03/24 1,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