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학벌주의, 대학서열화의 필연적 결과인가 / 이범

열정과냉정 조회수 : 1,269
작성일 : 2014-02-20 18:23:08
가을이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학생들이 있다. 
특성화고(실업계고) 또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려 하는데, 
엄마가 결사반대하니 엄마를 설득해 달란다. 
몇년 전부터 기업에서 고졸자 채용을 늘리거나 지방대 졸업자 채용을 확대하고 
스펙을 안 보는 ‘열린 채용’을 넓히는 등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의 총장추천제도 실상 이러한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런 얘기를 학부모들에게 하면 대체로 ‘쇼하고 있네’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기업의 인사·채용 담당자들을 만나보면 무척 진지하다. 쇼가 아닌 것이다.

흔히 학벌주의의 원인으로 대학 서열화를 지목한다. 
하지만 한국의 학벌주의는 한국 대학시스템의 모델이 된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심하다. 
학벌주의를 곧바로 대학 서열화의 결과로 파악하는 환원주의는 
시급히 보완되고 교정되어야 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나라는? 소련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때 좌익이었을 때 이를 접했을 것이다. 
관료들이 돈과 권한을 틀어쥐고서 어디에 조선소를, 
어디에 비료공장을 세우라고 지휘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와 거리가 멀다. 
관료의 힘이 매우 강한 것은 식민통치의 유산이자, 정부 주도형 경제성장의 결과다. 
그런데 우리는 이 관료를 시험을 통해 선발해왔다. 
서구 각국의 공무원 채용이 일반 기업처럼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이뤄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는 ‘정부 주도 성장’과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이 익숙하지만, 
실은 두 가지 모두 예외적인 현상이다. 
한국의 극단적인 학벌주의는 ‘중첩된 예외’의 결과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입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이른바 ‘스카이’에 모이게 된다. 
대학입시와 고시는 유사한 유형이므로 이들은 고시 합격률이 높다. 
이렇게 고급 관료가 되면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

정부 쪽의 학벌주의는 이로써 설명된다. 
그리고 이것이 민간기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 정부가 ‘갑’이고 기업이 ‘을’이었으니까. 
정부 주도 성장하에서 기업은 기왕이면 ‘갑’과 친한 사람을 두고 싶어한다. 
대학 동문이 보증수표다. 룸살롱에서 술 따라 드리며 선배님에게 엎어지기도 해야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대학 서열화, 정부 주도 성장, 그리고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 등 
세 가지 요인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정부 주도 성장’이 끝났다.
 금융업 정도를 제외하면 더는 정부가 ‘갑’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 기업이 굳이 ‘관료들과 친한 사람들’을 포진시킬 이유가 줄어들었다. 
지난해 삼성그룹 사장 승진자 여덟명 가운데 스카이는 단 한 명이다. 
모 그룹 임원진 승진자 명단에 스카이 출신이 몇 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소식이 돈다. 
최근 채용 트렌드의 변화도 이러한 정치경제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고전적인 ‘1차 학벌주의’는 정부 주도 성장의 종료로 인해 완화되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잘 안 먹힌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변화에 의해 ‘2차 학벌주의’가 심화된 탓이다.
 좋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구직자의 심리 속에서 ‘좋은 대학 간판’이라도 확보하고 싶은 간절함은 더 강해진 것이다.

학벌주의 강화 신호와 약화 신호가 동시에 들린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1차 학벌주의는 대학이 평준화되어야만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갈수록 간판과 스펙보다는 역량과 전문성이(구체적으로는 경력과 추천서와 면접이)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2차 학벌주의는 이와 별도로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높이는 
사회경제적 개혁을 요구한다.

이범 교육평론가


IP : 221.152.xxx.95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57460 농심 생생우동 방사선처리 아시는분? ㅇㅇ 2014/03/04 894
    357459 남편이 바람피우는 꿈 5 ..... 2014/03/04 5,229
    357458 '변호인' 조용히 내렸어요! 3 좋은추억 2014/03/04 1,820
    357457 입주도우미에 대해 궁금한 점. 6 ... 2014/03/04 1,774
    357456 이정도 댓글이 악플인가요? 34 물어봅니다... 2014/03/04 2,865
    357455 공항면세vs현지면세vs인터넷면세 어디가 저렴할까요? 5 어쯔까잉 2014/03/04 1,909
    357454 단백질 섭취에 좋은 음식 1 스윗길 2014/03/04 1,453
    357453 세제 10kg 너무 많나요? 7 2014/03/04 1,033
    357452 깍뚜기가 좋으세요, 김치가 좋으세요...? 9 여쭈어요 2014/03/04 1,333
    357451 애들의 악기 연주 수준.. 5 엄마마음 2014/03/04 1,131
    357450 새 아파트 시스템에어컨 선택 어찌 해야할지.. 5 질문 2014/03/04 16,870
    357449 김연아 팬 불구속 기소 127 사이코 2014/03/04 13,781
    357448 클래식 음악 연주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머리가 좋겠죠? 8 클래식 2014/03/04 2,856
    357447 3월3일 월요일 대체휴일로 쉬신 분?? 4 ㅇㅇㅇ 2014/03/04 1,351
    357446 이보영 이미지와 완전 다르네요 13 밝아서 2014/03/04 20,922
    357445 만나면 맨날 돈없다고 죽는 소리 하는 사람이... 7 도대체뭐냐고.. 2014/03/04 3,218
    357444 요즘 중고생들 교복 위에 적당한거 뭐가 좋을까요? 4 세일 2014/03/04 1,004
    357443 초등 1학년 방과후 수업 여쭤요~ 4 학부모 2014/03/04 2,936
    357442 힘들면 꾹 담아두시나요 아니면 주변에 말하시나요? 8 성향 2014/03/04 1,612
    357441 73000번의 칭찬과 격려 46 카레라이스 2014/03/04 6,901
    357440 블랙박스 선택에 참고하세요 4 KS기준 미.. 2014/03/04 1,999
    357439 댓글 감사해요 내용은 지울게요. 6 왜이래 2014/03/04 936
    357438 채린이가 한편으로 이해는 되더군요. 7 .... 2014/03/04 1,797
    357437 저처럼 스카프 안좋아 하시는 분 계시나요? 23 독특 2014/03/04 3,681
    357436 시력 좋지 않은 아이 담임선생님께 어떻게 말씀드릴까요? 11 .. 2014/03/04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