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말하노니
신라시대 때 최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유불선을 아우르는 현묘한 도가 있는데, 이를 다른 말로 풍류라 한다.”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는 지금의 사전적 의미인 ‘멋스럽고 풍치 있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여기서의 풍류는 ‘바람의 흐름’을 뜻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물체 즉 생명사상’을 의미한다. 생명사상은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까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는 아마도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던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학계의 설득력 있는 학설이다.
우리나라의 영산은 지리산이다. 영산이란 신령스런 산이란 뜻으로서 신불을 모시어 제사 지내는 산, 참혹하게 죽은 사람의 넋, 광대가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부르던 노래 등의 뜻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리산은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가 온전하게 살아 숨 쉬는 산이다.
지리산은 우리나라의 슬픈 근현대사를 품고 있다. 동학농민운동 때 산속으로 들어간 동학도의 애환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항거하던 독립투사들의 처절한 삶이 들어있다. 광복 후 대한민국의 건국에 반대하던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빨치산들이 6·25전쟁이 끝난 이후까지도 은거하며 대한민국에 바락바락 대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리산에는 문학이 있다. 피아골 연곡사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 줄거리가 잡힌 곳이다. 동학 접주 김개주가 최 참판 댁 윤 씨 마님을 겁탈하여 불운아 ‘구천이’ 김환을 탄생시켰다.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진, 하대치 등의 빨치산 인물들을 만들었다. 빨치산 토벌대의 일원이었던 빨치산 염상진의 동생 염상구가 형 염상진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잉가!”하며 절규하는 장면도 이곳 지리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소설가 공지영은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인 ‘지리산 행복학교’를 지어 도시생활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있다.
이 밖에도 지리산을 배경으로 탄생한 문학작품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지리산은 우리 문학사의 엄마 젖과 같은 곳이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개의 산이 아름다운 민속적 이름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리산만큼 다양하고 질퍽한 삶의 모습이 담긴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은 찾기가 어렵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백두산에서 발현한 산맥이 지리산에 멈춘다고 했다. 이를 풍수지리학으로 해석하면 백두대간의 기운이 이 곳 지리산에 응집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응집된 기운만큼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출처: 역사와 문화를 깨우는 글마루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