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어머니는 막장 시어머니는 아니지만 지난번 어느 분이 여기에 쓰셨던 것처럼 포인트 카드 적립하듯
조금씩 꾸준히 교묘하게 저를 미워하시며 구박하시는 분이에요.
확 대놓고 대들기에는 증거가 없으나 저는 충분히 느낄 정도로 저를 미워하시며 시어머니 노릇을 하세요.
물론 아들과 손주들이 있을 때는 제게 아주 잘해주시는 척 하시구요.
남편은 원래가 착하고 바른 사람이라 제게 아주 잘해줘서 결혼초부터 제 마음을 잘 이해해 줬어요.
그런데 남편은 제가 시어머니께 느끼는 감정들, 이를테면 이중성, 비인간적인 품성, 진실하지 못함 등등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본인의 어머니를 위대하고 불쌍하게만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시어머니께 당한? 이야기를 하면 그 내용에 공감해서 저를 위로해주고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어머니를 오해해서 기분이 나쁜 거고, 자기는 저를 사랑하니까 기분 풀어주려고 잘해준다는 거죠.
이번 설을 예를 들면 저희 가족이 설 이틀 전 오후에 어머니께 내려갔어요. 다른 형제들 가족은 아무도 안왔구요.
매 해 이렇게 해요. 남편이 장남이고, 연휴에는 꼬박꼬박 쉬는 직업이라 일찍 내려가요.
어머니 집에 도착했더니 집이 완전히 쓰레기장이에요. 평생을 깔끔하게 사셨던 분인데 요즘 제게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녁 먹을 것도 없고, 집은 너무 춥고 드러워 당장 치우지 않으면 밥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해서 남편이 나가서 먹자고 했더니 어머니가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셨어요.
추운 부엌에서 제게 저녁하라고 하시는 거죠.
어머니와 남편이 실랑이 끝에, 애들도 나가서 먹자고 조르고 하니 마지못해 나가서 먹고 왔어요.
어머니는 화가 나셔서 드시지도 않고, 남편은 어머니 좀 드시라고 자꾸 권하고, 어수선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왔어요.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저와 아이들 모두 따뜻한 방 하나에 모두 앉아 있으라고 하고 혼자 고무장갑 끼고
거실, 주방 다 치우고, 보일러 돌리고, 목욕탕 청소를 해요. 목욕탕까지더 완전 난장판.
어머니는 안전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하시고, 방에 앉아 있는 저도 가시방석이라 같이 도우려고 나가면
남편이 추워서 안된다고 저를 막 힘으로 방으로 다시 들여보내요.
1~2번 이러다 저도 그냥 방에서 애들이랑 텔레비전 보며 있었어요. 물론 어머니는 계속 좌불안석 이시고요.
어머니 댁에 가면 항상 이런 양상이에요.
어머니는 저를 힘들게 하시려고 뭔가 일을 만들어 놓시고, 그 뒤치닥거리는 남편이 하고.
그럼 "제가 남편에게 어머니는 나를 겨냥해서 그러시는 거니 내가 힘들게 일을 해야 만족하신다. 자꾸 당신이
내 대신 하니까 어머니가 다양한 품목으로 강도를 더 세게 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이 하면 더 화가 나셔서
내게 더 심하게 하신다"라고 말하면 남편은 아니라는 거에요.
어머니께서 그때그때 마다 핑계 대시는 - 몸이 아프다, 힘이 없다, 잠을 못잤다....- 등등의 이유를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죠.
남편은 엄마도 많이 사랑하고, 저도 많이 사랑하는 거죠.
저는 남편이 어머니를 더 사랑해도 좋은데 제가 어머니께 힘들어 하는 부분을 공감해 줬으면 하는 거구요.
남편은 명절만 다가오면 집안 일도 더 열심히 도와주고, 내려가는 날은 애들은 집에 놔두고 저만 데리고 나가
브런치 하고, 집에와서 애들 좋아하는 찌개 끓이고 밥도 해서 먹이고 내려가고, 가는 길에 꼭 카페에 들려
커피 마시고(제가 카페 가는거 좋아해서), 시댁에서도 연휴내내 어머니의 눈치와 방해 공작을 묵묵히 이겨내며
팔 걷어부치고 도와주고, 저녁에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주선해서 친구 부부들과 술 한잔 하게 해주고
제사만 지내면 바로 짐싸서 나와 친정 가는 길에 또 카페 들려 커피 마시자고 해요.
제가 그냥 빨리 친정 가자고 하면 명절동안 수고했으니 좋은 카페 가서 커피 한잔 하고 가라고 끌고가요.
이번 설에는 어머니께서 거의 매달리다시피 점심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남편이 단호히 처가에 가야 한다고
나왔어요. 차에서 제가 그냥 점심 먹고 가자고 하고, 아이들도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던지 점심만 빨리
먹고 가자고 해도 남편이 아니라고 엄마도 이제 쉬고 외가에는 안가냐고 하며 그냥 왔어요.
이렇게 좋은 남편 이지만 절대 어머니에 대한 제 생각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러는게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어머니는 정말로 몸이 안 좋으셔서 제게 그러시는 건데, 어쨌든 저도 착한 며느리이고, 무엇보다
자기가 나를 사랑해서 잘해주는 거죠.
제가 바라는건 남편이 자기 어머니의 본심을 정확히 봤으면 하는 거구요.
저는 어머니 때문에 화병이 걸릴 지경인데 남편은 그건 오해라고 생각하니 제게 아무리 잘해줘도 해갈이
안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저도 알아요.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본인 어머니를 잘 모르고, 오히려 부인들에게 뭐라고 하기만 하고,
잘 해주지도 못한다는 걸요.
제 남편 정도면 제가 고마워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는데, 남편이 제게 "에이 우리 엄마가 그래서
그러신게 아니야. 니가 오해한거야. 진짜 몸이 안 좋으셔서 그래"라고 하면 남편에게 화가 나요.
이 정도 남편이면 더 바라지 말고 고마워하며 살아야겠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