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 남자사람 주말부부인데요.
오늘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한 어르신을 뵈었어요.
70대 초반? 공무원이나 교직으로 은퇴하셨을 것 같은 분위기와 차림새의 할아버지
고가로 보이진 않지만 점잖은 노인네 스타일 코트에 연세와 분위기에 썩 어울리는 안경태...
그런데...
가슴에 예쁜 꽃 바구니 하나를 소중히 안고 계시더라구요.
꽃 장식도 무척 예뻤지만(문외한인 제가 봐도 가격이 꽤 되보이는듯한), 저의 눈을 사로 잡는 것은....
아름다운 꽃 가운데에 꽂혀 있는 심플한 카드와 글귀
"사랑하는 당신 생일 축하해"
무심하게 보일만큼 꽂꽂한 자세와 우직해 보이는 할아버지의 그 모습이시라 처음에는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서인지(?) 저는 기분이 참 좋아지더군요. 그리고 진심 멋져보였습니다. 그 어르신이
나는 언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해 보았던가?
오늘 읽은 기사에서 한국 부부들 30%가 하루 30분도 대화를 안한다고 했는데....
꽃은 고사하고 나는 주 중에 전화로라도 얼마나 대화를 하고 사는가?
가부장적 전통에 솔직한 애정표현이 익숙치않은 우리사회의 분위기 등등....
평소엔 생각하지 않던 것들을 자책 비슷하게 했겠지요.
하지만 지하철 안에서는 할아버지를 곁 눈으로 보면서도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우리 부부의 미래 모습도 그려 보았을겁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입가에는 그야말로 "빙그레" 미소가 절로 지어졌습니다.
빨리 아내가 보고싶기도 하고요.
마침 저와 같은 역에서 내리셔서 우리 동네에 사시는구나 했지요. (ㅎ, 우리동네 로멘틱 타운!)
그런데...
역을 지나칠뻔 했다는듯 서둘러 내리시는 모습과 그 다음 행동을 보았을 때, 저는 분명 깨달았지요.
그 분은 꽃바구니 배달을 가고 계셨다는 것을....
저 혼자 멋대로 행복한 노년의 로맨스를 상상하고 마음 속으로 기쁘게 웃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그 분의 코트가 아무리 풀린 날씨라지만 약간 추워보인다는 것을
역명을 확인하고 출구 번호를 헤매이시는 모습에는 꽂꽂하다거나 우직한 모습과는 거리가 있더군요.
제가 참 순진한건가요?
하긴 현 한국사회에 이 정도의 마음적 여유와 로멘스를 간직하고 계실 어르신들이 과연 얼마나 계실지 그제서야 생각이 들더군요.
저 혼자 마음대로 노년의 소소한 행복을 상상하고 웃다가 불과 수 분 후에 슬퍼진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요즘 하는 말로 "웃프다"는 감정이었군요. ㅠㅠ
하긴 아내에게 그런 꽃바구니 사주면 쓸데없는 데 돈 썼다고 책망이나 들을 것도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