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그의 조강지처 정성왕후는
국왕과 왕비가 살아서 환갑을 맞이한
매우 희귀한 케이스였습니다-기준은 조선
하지만 실제로 정성왕후는 환갑 잔치를 열지 못했습니다
왜?
남편이 파토냈거든요
어떻게?
영조 18번이 나왔습니다
'나 임금 자리 더러워서 못해먹겠으니 선위하련다'
이 말을 듣고
세자가 당연히 석고대죄를 합니다
그 전에 홍역이 돌아서
세자 빈궁 세손-정조- 세 가족이 앓다 일어난 몸인데....
세자는 석고 대죄를 합니다
이 때는 섣달....
한중록 묘사에는 눈이 엄청 옴에도 비키지 않아
눈인지 사람인지 구분 안 되었다 합니다
할머니 인원왕후가 그만 되었으니 일어나라 해도 안 일어 납니다
그런데..
더 큰 사단이 벌어집니다
인원왕후-대왕대비-가 허락했다는....
그리고 임금은 가출..
궐은 당연히 뒤집혀집니다
인원왕후는 내가 실언했다고 사과성명까지 해야 했던....
그런데 이 사건의 이유는?
알 수 없어요...
실록에도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한중록은 몇 달전에 있었던
홍준홰가 이종성 탄핵한 일을 끌고 옵니다
야사 대천록은 숙의문씨의 방자한 행동을 혼낸 인원왕후에 대한 분풀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홍준홰 상소는 다 끝난 일
숙의 문씨는 저 사건 있은 뒤에야 숙의 첩지를 받았으니....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저 사건으로부터 며칠 후가
왕비 환갑 날이었으니
왕비 환갑 파토가 목적이 아니었나 하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싫은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싫은 영조의 눈에 찍혀
환갑은 고사하고
죽을 때 까지 대우 못 받은 사람이 영조의 첫 번째 부인 정성왕후입니다
부인이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데도 오지 않았고
다 죽어가니 와서 하는 일이
세자 갈구기+궁녀들과 수다
죽어도 왕이 곡을 못하니 절차 정지....
그런데 그 때
영조가 지극히 아끼던 딸 화완옹주의 남편 정치달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여 옵니다
그제서야 곡을 하고 딸 집으로 향한 영조....
그런데 사도세자와는 달리
왜 싫어했는지도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야사의 기록으로 봐서는
신혼 초 부터 뭔가 단단히 박힌게 있다는 정도만 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