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로 만나 세 달 사귀며 결혼 얘기까지 오고 간 사이입니다.
둘 다 나이는 아주 많아서 진지하게 만났고요. 신원 확실(?) 하고 장난칠 성격들도 아닙니다.
연락 끊기기 전날 밤까지 서로 잘 자라는 문자도 주고 받았습니다.
저녁 때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주기로 했는데 날이 어두워지도록 연락이 없더군요.
전화를 해보니 연락이 되지 않아 소리샘으로 넘어간다는 멘트.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어 온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걸어보니 신호음은 가는데 안 받습니다. 문자를 넣었습니다. 연락이 안 되어 걱정된다. 아픈 건 아니냐고요. 추후에 한 번 더 걸어보니 역시 안 받더군요.
이제 열흘 남짓 되었습니다.
남자의 확실한 의사 표현인 것, 저도 알겠습니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저도 사실 만나면서 결혼 얘기는 오고 갔지만 맞지 않는 면들이 자꾸 보여 조심스럽게 고민하고 있었고
부모님께 인사드리자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진지하게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상태였어요.
그래서 다행히 이 사람에 대한 미련은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까지는 아니었으니까요.
내가 뭘 잘못했나, 이 사람한테 더 잘 할 걸, 나한테 또다른 기회가 올까, 이 정도 사람 또 만날 수 있을까 등등
나이 많은 미혼 처자들이 하게 되는 자괴감과 절망감은 당연히 저도 처음엔 조금은 들었으나 다행히 이젠 없어요.
제 잘못도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저도 경험으로 아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의 결말이 너무나 불쾌한 거죠. 관계라는 것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고 나이도 들을만큼 들었고
사회적 지위라는 것도 있고 더구나 예의 차리는 걸 그토록 중요시 하는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하루만에 그냥 연락두절?
생각할수록 유치하고 어린아이 같은 거에요.
사람이 하기 싫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귀찮았나보죠. 그냥 도망간 거니까요.
제가 싫거나 감당 못 하겠다던지 그만 만나자던지 의사 표현을 분명히 했으면 무슨 일이 있나, 아픈가 하는
필요하지도 않은 상대방에 대한 걱정은 안 했을텐데 말입니다.
'대답하지 않는 것도 대답이다' 라는 말을 되뇌이며 이게 이 사람의 인격이고 제가 늘 걱정하던 차갑고 이기적인 성격의
결정적인 단서이며 결혼해서도 마음에 안 들면 차갑게 단칼에 돌아설 사람이라는 걸 미리 알았으니 괜찮아, 하고
저를 다독이고 있습니다. 일에 몰두하고, 운동하고, 친구들 만나고 다 해요.
그런데 마음 속이 괜찮다 싶다가도 갑자기 속에서 뜨거운 것이 끓어 오르는 겁니다.
'네가 네 방식대로 했으면 나도 내 방식대로 할 권리가 있다. 너도 내 말을 들을 의무가 있어'
그런데 사실 별 할 말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냥 분하고 너 이러면 안 돼, 말해주고 싶기도 하고
이미 마음 떠나간 마당에 그게 무슨 소용이냐 싶기도 하고.
문자는 답 안 하면 그만이고 전화도 안 받지 않을까 싶고
조목조목 내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정리해서 메일이라도 보낼까 싶기도 하지만
어지러운 제 마음 누르고 이메일 쓸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도 사실 듭니다. 읽기나 할까 싶기도 하고요.
지나간 시간이 한순간 쓰레기가 된 느낌, 저라는 존재가(여자로서 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순간적으로 통째로 무시당하고 거부당한 느낌. 정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정말 하루에도 수십 번 이랬다 저랬다 하는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까요.
제가 아무 반응 없이 있는 것이 정답일까요?
직간접적으로 경험 있으셨던 분들의 따뜻하고 현명한 말씀 간절합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