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여론조사(20일, 한국갤럽)에서 안철수 신당은 32%의 지지율로 새누리당(35%)까지 위협했다. 민주당 지지율(10%)은 뭐, '안습'(안구에 습기 찬다)이다. 박세일 신당, 유시민 신당, 문국현 신당…. 포말로 사라진 '○○○신당'과는 기세가 다르다. 2008년 총선 한 달 전 급조돼 14석을 얻은, '박근혜 신당'이라 할 '친박연대'도 지지율은 7% 내외였다. 심지어 안철수 신당의 지지율은 '안철수' 지지율(20~22%)보다 높다. 신당의 주체는 안철수고, 신당은 안철수의 객체인데 주객이 전도됐다. 안철수 신당이 안철수보다 지지율이 높은 건 민주당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기대가 결합한 현상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지금 자기의 신당보다 새롭지 않다. 기대(안철수 신당)와 현실(안철수)이 하나가 될 때 어떤 화학변화가 일어날진 아직 미지수다. 아무튼 안철수 신당은 안철수보다 민주당에 고마워해야 한다. 몇 달 전 서울고속터미널 부근에서 6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이런 얘기 하는 걸 들었다.
"조명철 같은 XX이도 민주당이 국회의원 만들었잖어."(어르신 乙)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은 민주당이 아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이다. 며느리가 미우니 발뒤꿈치가 달걀같이 보인다. 조 의원을 비하하는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무조건 민주당에 잘못을 묻는 바닥 민심을 전하려 함이다. 민주당은 억울할 것이다. 그러면 대선이 끝난 뒤 1만 시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뭘 했는지 돌아보라. 올 한 해 민주당이 올인한 건 국정원 댓글 문제였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 인사의 주장이다.
"여권에 뛰어난 책략가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정부가 국정원 댓글 정보를 던져주면 민주당은 꽉 물고 목소리 키워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대통령은 거부하고 민주당은 화내며 특검을 요구하고. 그럼 다시 대통령이 거부하고, 민주당은 다른 할 일 하나도 못하면서 더 끌려들어가 대선불복론까지 발을 들여놓고. 1년 내내 댓글만 쫓아다니게 만들고."
강성노조에 파업을 하게 만들어 코너에 몰려고 했다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을 연상시키는 '신종음모론'이다. 이 말대로일까만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무전략'이었다. 바둑에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 했다. 자기 말이 산 다음 상대 돌을 잡아야 하는데, 민주당은 자기 지지율 꺼지는 건 개의치 않고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떨어뜨리기에만 올인했다. 그런 차원에서 민주당은 예측 가능한 정당이었다. 당내 강경론만 잘 자극하면 "나 장하나는 대선 불복을 선언한다" 같은 발언이 나왔고 여권은 민주당의 실수 뒤에서 숨통을 틔웠다. 김대중·노무현의 '카피(copy)정당' 체질을 뛰어넘는 데 써야 할 1만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오늘 철도 파업 철회의 막후에서 한 그런 일을 민주당은 자주 했어야 했다.
신당의 출현이 그래서 이번엔 반갑다. 민주당은 코레일을 많이 닮았다. 어찌 보면 경쟁체제가 더 절실한 건 코레일보다 민주당이다. 당은 선거에 계속 져서 지지자들에 대한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있는데 소속 의원들은 지역 독점구도에 안주해 원내기득권을 누려왔다. 새누리당은 2004년 탄핵사태 때 당 해체 수준까지 가면서 체질을 바꿨건만 민주당은 딱 기득권에 안주하기 좋을 만큼 져왔다. 1470만 표를 얻고 지거나, 127석을 얻고 지거나. 강한 외부 자극이 아니면 민주당이 바뀔 이유가 없다. 안철수 신당이 알짜노선을 취한 '코레일 자회사' 같은 역할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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