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다죠.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만 안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엄청 잘 먹고 마시면서, 싼 값에 럭져리하게. 근데 문제는 평범한 중생들은 그게 안 된다는 거죠. 삐까뻔적한 도박장이 한 두개 있는 것도 아니고 첨엔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도 결국은 거기 이끌려 들어가서 손 떨면서 밤새 도박하다 탈탈 털려서 나오게 된다는. 오늘 응사를 보면서 뜬금없이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나정이 남편이 누군지만 신경끄면 기막히게 재밌는 드라만데, 그게 평범한 중생인 나는 쉽게 신경 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근데 참, 세상은 넓고 개취는 다양하다고, 18회가 재미 없었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전 웃다가 울다가 눈물 콧물 오줌도 살짝, 암튼 재밌게 봤고 주말밤에 시간도 쫌 남는 김에 생각난 이야기 몇가지 적어 보기로 합니다.
1.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 감동 아닙니까?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매일 듣던 그 땐 왜 몰랐을까요? 중간에 장필순 노래 나올 때 깜짝 놀랐지요. 그래, 장필순이란 가수가 있었지. 저 목소리, 가사, 노래, 기가 막혔었는데, 그런 감동을 이십년이란 긴 시간 동안 까맣게 잊고 살수도 있다니, 제 자신이 더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후반부의 밀레니엄 장면에서 윤상 노래가 나올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부터 주룩. 비록 91년에 발표된 노래이긴 하지만 1990년대에 10대 후반이나 20대를 한국에서 보낸 여자분들 중에 이 감미로운 목소리를 다시 듣고 새삼 기억의 한자락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지 않을까요, 많음 말고요. 전 암튼 엄청 감동있었습니다.
2. 1997년의 절망감. 그때의 뉴스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절절하게 다시 떠오르던데요.
3. 그리고 밀레니엄의 약속들. 그런 약속을 유치하다고 하면서도, 기억할 수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다들 한 두개는 하지 않았던가요. 1999년의 마지막 날에 어디서 몇시에 만나자는 둥, 2000년에도 지구가 멸망하지 않았으면 다시 만나서 뭘 같이 하자는 둥. 그 때의 흥분이 떠올라서 정말 가슴이 뛰더라고요. 그날 밤 저의 쓰레기님은 종로에 가고 싶다고 했고, 저는 부모님과 함께 티비로 보신각 종소리를 듣으면 샴페인 터뜨리고 싶다고 했고, 그래서 각자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지요. 쿨하게. 방송을 보다가 궁금해 진건, 그때 그 시간에 그와 함께 있었더라면 우리가 약속했던 대로 결혼할 수 있었을까, 오늘 이 순간까지 함께 있지 않았을까. 그날 그 시간에 누구와 함께 있으셨나요?
기타 잡담:
1) 해태가 드디어 첫사랑과 맺어져서 정말 흐뭇하고 행복했어요. 근데 해태는 왜 갑자기 빙그레 헤어스타일을 하게 된 건가요? 날라리 라이프스타일을 포기하고 본인의 진심을 들여다 보려면, 순수한 사랑을 이루려면 역시 머리 모양도 순딩이 스타일이 되어야 하나보죠? 전의 스타일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어려운 스탈이고 그래서 해태 한 인물을 더 돋보여 준다고 믿었는데... 그렇다면 간만에 보는 나정의 헤어스타일 변화는 뭐지요?
2) 암만 결혼식 장면에 대역배우 썼다지만, 암만 나정 신랑 누군지에는 관심 끄려고 한다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갠적으론 칠봉쪽도 쓰레기쪽도 확 쏠릴 것 없다지만, 오늘 장면은 정말 칠봉 아니던가요? 일단, 결혼식장에 들어가면서 웨딩드레스 밑에 단화신고 가는 신부는 세상에 찾기 어렵다는 건, 마치 썬탠하고 나타나는 신부가 없다던가, 갑자기 숏 커트하고 나타나는 신부가 드물다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단화신은 것도 아닌데 신랑과 그 정도 키차이 난다면 단연 칠봉 아닌가요? 게다가 이것까지 지적하면 정신 나갔다고 하시겠지만, 신랑 귀모양을 보면 역시 쓰레기 아닌 칠봉인데요. 그래도 작가가 나중에 아니라면 아닌 거 맞겠지요 뭐.
3) 정말 쑥쑥이는 어디갔나요? 드라마가 모든 걸 설명해야하는 의무는 없지만 어린 것들땜에 디너쇼는 커녕 몇 년동안 극장 한 번 못가보고 밥 한번 맘놓고 못 먹어 본 육아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아닌지... 까칠한 어린이들에 둘러싸인 제가 볼 땐 리얼리티가 좀 손상되는 부분이라 아쉬웠습니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