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37446
시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광주에 사는 대학생 최문석이라고 합니다.
지난 14일 저는 '시민으로서, 학생으로서 요구합니다.
지난 대선 국가권력 개입한 명백한 불법선거, 대선무효 박근혜 자진사퇴하라'는 피켓을 들고
광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간다는 광주 동구 충장로 우체국 앞에 섰습니다.
1인 시위는 태어나 처음이었습니다. 막상 많은 이들 앞에 서니 얼굴이 화끈거리더군요.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지나가는 이들이 저를 위아래로 훑어볼 땐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습니다. 피켓을 들고 멀뚱히 서 있는 저를 향해 주변 거리의 상인들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핀잔을 주기도 하더군요. 그럼에도 저는 14일에 시작한 1인 시위를 일주일간 계속할 예정입니다.
전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도와 매일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일을 합니다.
항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졌습니다.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일과 잠자는 일이
제 일상의 전부였죠. 하지만 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제 실명을 밝힌 채 스스로 거리에 나섰습니다.
이 글을 통해 그 이유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국정원 발 부정선거 논란, 일상을 무너뜨렸습니다.
올해 4월 전역한 뒤, 제 또래와 별반 다름 없이 복학 준비도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년간의 공백이 있어서 그럴까요. 갑자기 달려든 자유가 무척 좋았습니다.
"아들, 아침이다. 밥 먹어라" 어머니의 목소리, "아따, 문석아. 오늘 뭐할까?" 친구의 전화 한 통에
낄낄 거리며 웃음 짓는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중한 그 자유에 비해 전역 뒤 찾아온
공허함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방황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일감이 들어오지 않아, 본업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그런 뒤 24시 편의점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이 일에 가세했습니다. 어머니는 오전 11부터 오후 11시까지, 동생은 학교 끝나고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와
저는 그 뒤를 이어받아 이틀씩 교대로 새벽에 손님을 맞이했습니다.자유와 맞물려 느닷없이 달려든 불황에
뭐가 뭔지를 몰랐습니다. 특히나 아버지가 걸렸습니다. "컴퓨터는 내 두 번째 아내"라고 시시껄렁한
농을 던지시던 아버지. 누구보다 컴퓨터를 사모한 아버지께서 새벽에 술버릇이 안 좋은 손님으로부터
손찌검을 당하는 걸 보게 됐습니다. 때로는 손님 사이에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는 이를 말리기도 하고,
경찰도 부르는 등 정신 없는 새벽을 보내십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갈 때마다 아버지는 제게 "괜찮아"라고
덤덤하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아침을 맞으며 생각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어제처럼 오늘도 편의점이란
특정한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일하는 가족의 모습. 편의점이란 공간만 다를 뿐이지 다른 가족들도 힘들긴
마찬가지겠지요. 그래도 모든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수많은 일상의 사진첩을 만들어 가는 건 오늘보단
내일이 사뭇 달라질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 가족 생계를 위해, 곧 납부해야 할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일상의 욕구를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그 평범함들이 모이고 모여 수 많은 사람들의
삶으로 채워지는 것은 일상의 '원리'입니다.하지만 개개인의 소소함이 일상의 '원리'를 이루지만 진정한
일상을 '구현'하지 않습니다. 소소하고, 세심한 일상의 모습들은 개개인이 만들지만, 정치는 그 일상을
만들기 위한 '선행 조건'이 됩니다. 저를 포함해 아버지 그리고 이웃의 일상을 좀 더 바람직하게 만들 수
있는 건 '정치'입니다.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잠시 빌려 공동체 구석구석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법을 만듭니다. 일상의 욕구를 실현하려는 당위가 개인의 욕구를 만족 시키면서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틀을 만들려는 현실적인 귀결이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은 '투표권'입니다.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무너뜨리는 행위를
국가기관이 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에 의하면 국정원은
재작년부터 작년 12월까지 2270개의 트위터 계정에서 2200만 건의 글을 조직적으로 올리거나
퍼나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 중 국정원이 정치 개입했다고 판단해 기소한 글이 121만 건입니다.
이조차도 수사 인력 한계로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 경찰청장의 공판이 진행되는 와중, 검찰의 공소장 변경
신청으로 드러난 사실입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뤄봤을 때 원세훈·김용판씨에 대한 사법 판결과는
별개로 시민의 선거권이 명확하게 훼손됐음이 뚜렷해졌습니다. 더군다나 기존에 이 사건을 수사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는 국정감사에서 수사의 외압을 폭로했지만, 공소장 변경 신청을
상부에 말하지 않았다며 일종의 좌천을 당했습니다. 당당히 요구합니다,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십시오
처음 저는 국정원의 댓글이 실제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친 것과는 별개로 시민의 선거권이
훼손된 사실만 견지했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이 사안이 어떻게 흘러갈지 지켜봤습니다.
또한 새누리당과 연관된 흔들림 없는 증거가 나타나야 사퇴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명확하게 해결할 수 있는 국정조사가 잘 되기를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생각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남북정상회담록 NLL 포기 논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언에 대한
종북 낙인, 장하나·양승조 의원의 제명 시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둘러싸고 수많은 사건들이
맞물려 터지고,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항상 대선개입에 대한 명확한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대선 불복 프레임'과 '종북 몰아가기'가 횡행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 속의
답답함은 더해졌습니다. 그래서 전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젠 더 이상 세상과 저를 분리 시키지 않겠습니다.
좌냐 우냐, 서울권 대학생이냐 지방대생이냐를 떠나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바보 같은 믿음으로
거리를 나섰습니다.대통령은 시민의 권리를 수호해야 합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각종 이슈 뒤에서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지는 정기 선거 외에 보궐선거와 재선거가 가능합니다. 보궐선거는 대통령이 자진사퇴하거나
사망·질병·사고 등으로 실시되는 선거를 말합니다. 대통령의 어떠한 사과나 해결책 없도 없고, 말끔하게
이 사건을 해결할 특검조차 실시되지 않는다면 시민의 권리로 요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시민으로서, 대학생으로서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부정선거가 명확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진 사퇴해야 합니다.
제 믿음, 안녕할 수 있을까요전 오늘도 편의점에서 밤을 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시 해가 뜨면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겠죠. 1인 시위를 마치는 날이면 요새 뜨거운 문구대로
제 몸은 정말 '안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그 믿음을 부여잡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많은 이들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모여 우리 사회가 안녕해질 수 있다면 정말 미약하지만
제 '안녕'을 기꺼이 포기하려 합니다. 제 믿음, 안녕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