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꾸리했지만 시원한 마음으로
간만에 룰루랄라 시내에 나갔습니다.
점 찍어 둔 덕수궁 미술관의 한국근현대회화 100선도 보고,
시립미술관의 북유럽 디자인전도 보고,
남도식당의 추어탕도 먹고,
맛난 커피도 마시야지.
그리고 82쿡에서 이 디자인, 저 디자인, 이 핏, 저 핏, 교습받았던 것처럼
5년이상 입을 코트나 한 벌 사와야겠다 맘 먹었습니다.
식민지와 전쟁과 가난과 분단과 개방, 개발로 숨차게 살아온 우리의 집단적인 자화상을 보는 듯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본 그림들은 나이가 들어 읽는 요사이 고전처럼 그냥 마음으로 읽힙니다.
이중섭의 '가족' 앞에선 눈물이 울컥 올라왔습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림을 6000원에 직접 보면서, 이게 무슨 호사인가
아 좋다,
참 좋다를 반복하며 즐겼답니다.
시립미술관도 가고,
남도식당 추어탕으로 몸을 뎁혀 정동길을 돌아 나오니,
흰 눈이 펑펑
함박눈이 내리는 시청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는 치장을 마쳤고,
스케이트장 개장 준비로 분위기는 이미 성탄이었습니다.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며 돌아가신 분의 분향소가 있기에,
잠시 묵념을 하며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두두두두두두 달려오는 소리
경찰이 몰아와 분향소 천막을 내리려는 트럭을 막아서고,
그걸 막으려는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마침내,
방금 제가 기도했던 그분의 분향소를 들어내고
제 눈 앞에서 질질질질
국화가 갈기갈기
유리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고
"협조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검거해" 확성기 소리에,
내가 아직 2013년에 사는 것이 맞는지 어두운 하늘처럼 혼란스러웠습니다.
몇 달전 분당지역에 보호관찰소를 반대하던 학부모들을 대하던 경찰과 미디어의 태도는
이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대하듯 야만적이지 않았습니다.
몇 명의 노인들과 시민들이 조용히 꾸리고 있는 분향소를 일방적으로 내팽겨치는 경찰을 보면서 너무 화가 나고 두려웠지만, 일반 시민인 제가 그냥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더 심한 폭력을 함부로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눈이 될까 하여
눈이 오는 시청앞 광장에 한참을 서서 다 보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으면서요.
저 말고도 지나가던 시민들 몇몇이 멀찌기 떨어져서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담고 있었는데,
백주대낮의 보고 있는 눈이 많다는 건 공권력에 감시의 눈이 되는 듯 했습니다. 사람에게 폭력을 쓰진 않더라구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 다쳐요"라는 말도 간간이 들렸는데, 이 또한 작은 방패가 되는 듯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다가와 집으로 향하는데,
고개를 돌려 돌아서는데,
그만 바닥에 나뒹구는 국화와 함께 성대한 성탄 트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는 누구를 위해 이 땅에 왔냐고
예수를 따르는 신자가 이렇게 많은데,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위해 세상에 온 그를 이런 식으로 기리고 있다니,
이게 무슨 성탄이냐고,
이게 무슨 성탄이냐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코트를 사려던 백화점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돈은 코트 말고 다른 데 쓰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