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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쓰레기장에서 고양이가

고냥이 조회수 : 1,326
작성일 : 2013-11-26 19:04:46

음 한 달 전 쯤 일이에요.

 

갑자기 기온이 내려간  맑은 가을 날이었는데 마침 분리수거일인데다가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허겁지겁 쓰레기를 버리러 갔지요.

 

기온은 찼지만 햇볕이 잘 드는 분리수거 쓰레기장의 한 귀퉁이 버려진 스툴에

비쩍 마른 새끼 고양이가 앉아 볕을 쬐고 있다가 제가 급하게 다가서는 소리에 놀라 도망가면서

저를 원망스레 돌아보더라구요.

 

방해한게 미안해서 또 안쓰런 마음에 다가갔지만 도망가고 저도 외출하던 길이라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날 밤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가면서 혹시나 싶어 길냥이 용으로 사둔 어린 고양이용 사료와 물을 갖고 나갔어요.

새벽 두 시 쯤이라 아무도 없겠거니 했는데 어떤 중년 아저씨가 역시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나오셔서 흠칫했어요,

길냥이 밥 주는 거 들켜서 봉변 당할까봐.

 

야옹야옹 소리만 내던 녀석이 그 아저씨가 들어가니 모습을 나타냈는데 낮에 본 그 녀석인거예요, 예상한대로.

저를 경계할 것 같아 밥만 놓아두고 가려고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밥엔 관심이 없고 제게 다가와 제  다리 사이를  들락날락 하면서 부비대는 거예요.

순간 가슴이 철렁했죠. 이게 바로 집사로 간택된다는 건가

 

하지만 정말 부담스럽고 두려운 마음 백배였습니다.

제발 이러지마 난 널 데려갈 수 없어, 이럼 안 돼..하면서도

너 나랑 같이 갈래 하면서 손을 내밀어 안아볼까 하니 뒷걸음 치더군요.

그러다 다시 다가와 제 다리 사이를 오가고 목덜미를 살짝 쓰다듬는 건 허락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저를 따라오다가 어느 지점 자기 영역을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이상 발을 떼지는 못하고

원망스런 울음 소리만 내는 걸 들으며 집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아 냥이야 왜 하필 나를 고른거니...

 

다음날 쓰레기장을 내다보니 제가 밥 준 자리에 있던 차가 빠져버려 사료와 물그릇이 훤히 보이더군요.

아파트 청소아저씨한테 들키기 전에 치워야지 했는데 잠시 주춤한 사이 싹 치워져 있더라구요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확인도 못했는데 말이죠.

 

그 새끼 고양이는 제가 좋아하는 노랑이나 고등어, 까망이는 아니었구요,

한 세 가지 색깔의 털이 섞인 얼룩이덜룩이였습니다.

 

다시 또 만나게 되면 아무래도 데려오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밤에 다시 나가봐야지 했는데

그날부터 제가 심하게 아파 집 밖에 나갈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근 한 달간 병원만 간신히 왔다갔다하느라 고양이를 보러 갈 수가 없었어요.

아직도 아프지만 더이상 쓰레기를 쌓아둘 수 없어 이따가 나가게 되었을 때

그 냥이를 만나게 되면 어쩌죠?

만나도 안타깝고 못보게 되면 해코지 당해서 변을 당한게 아닐까 싶어 마음이 쓰일 것 같아요.

 

고양이, 나한테 왜그랬을까요? 냥이들, 너무 서글픈 짐승이에요...

 

 

 

IP : 58.228.xxx.15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3.11.26 7:13 PM (1.241.xxx.158)

    이런 말 미안해요.. 데리고 오시지.. 정말 배고파서 얘네들 너무 배고파서 그러는걸거에요.
    애기고. 곁을 줄 사람도 없고. 외롭고 배고프고.
    어휴.. 왜 사람들은 처음에 고양이를 버렸을까요.

  • 2. ㅠㅠㅠ
    '13.11.26 7:16 PM (125.186.xxx.63)

    어제 학교에 갔다온 아들이 제가 밥주는 냥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것 같다길래(초딩)
    설마 얼룩이는 아니겠지하고서 고무장갑끼고 봉투들고 길에 가보니
    얼룩이가 아니고 이제 태어난지 한달이나 됐을 아기냥이더라구요.ㅠ

    차에 치여 얼마나 또 차들이 치고 갔는지 납작해졌어요.ㅠ
    초딩아이들이 구경하고 망설이다 용기내여 그 아이를 봉투에 담아 묻어줬어요.ㅠ
    그 아기냥이는 엄마를 따라가다 빨리 못따라가 그렇게 됐겠지요?

    그 아기냥이는 태어나자마자 추위와 배고픔속에 한달남짓 살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생각하니
    인생이 뭔지 그 아기냥이가 느꼈을 고달픔에 맘이 우울했어요.

    그 쓰레기장의 고양이가 그래도 사람을 그렇게 따르는게 흔한 일은 절대 아닌데요.
    녀석 그냥 용기내어 원글님께 의지하고 따라가지 그랬니..ㅠ
    원글님
    다시 만나면 데려오지는 못해도 먹이와 물을 밤마다 주시면 알아서 잘 찾아서 먹을거예요.
    그럼 그 아기냥이는 그걸로 생명이 유지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길 바래봅니다.
    빨리 쾌차하시고요

  • 3. 짠하네요.
    '13.11.26 7:20 PM (180.70.xxx.59)

    그 아이 삼색인가봐요.
    오랫동안 그아이가 원글님을 그리워했을거에요.
    집에 데려오지 못해도
    먹이만 챙겨져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고
    이제라도
    몸이 회복되시면
    사료 챙겨주심 은인이죠.

  • 4. ff
    '13.11.26 7:50 PM (220.78.xxx.126)

    삼색이 공주님이었나 보네요...
    계네들도 목욕 잘 싴면 색이 오묘해서 이뻐요
    음....하...
    아마..지금 가보면 없을 확률 클꺼에요..

  • 5. ff
    '13.11.26 7:50 PM (220.78.xxx.126)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그런 어린애들은 조금만 더 추워지면 얼어 죽을 확률이 크데요..

  • 6. 삼색이...
    '13.11.26 8:00 PM (121.132.xxx.61)

    아가씨들 예뻐요.
    물런 세상에 안 예쁜 고양이는 없지만...
    그 아이 데려오시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고양이가 될거예요.

  • 7. 저도..
    '13.11.26 10:45 PM (121.162.xxx.239)

    저도 82의 도움받아 길고양이 밥주고 있는데요 ,매일 챙기면서도 매일 후회해요.ㅠㅠ
    왜 시작했을까 모른척하고 살걸 하구여.
    매일 추울까 배고플까 잘 있을까 걱정하는데, 고양이가 혹여 날 따라올까 염려되기도 해요.
    거둘처지가 아니라서요,그래서 더 괴롭고 후회스럽고 그러네요.
    혹여 거둘 처지가 되신다면 저처럼 괴로운 일은 없으실듯... 22222
    그냥 모르고 살 걸....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 8. 전..
    '13.11.27 12:09 AM (59.22.xxx.238)

    두달전 비오는밤
    경비실앞에 물에 젖어 우는 4~5일된.
    눈도못뜬아이 데려와서
    주사기로 초유 짜넣고
    우유병으로 키워냈네요

    강아지가 넷인 집이라
    갈등 엄청했지만 어린생명앞엔...
    장사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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