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시아버님이 영면하셨습니다.
저녁에 갑작스런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배추 겉절이와 총각김치를 담는다고 부산을 떨고 있을 때였습니다.
7시 반경 걸려 온 신랑의 전화에 어떻게 김치 마무리를 했는지
어찌 짐 가방을 꾸렸는지 기억도 없습니다.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싣고 나서야 아버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제서야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님..향년 81세...
막내 아들인 우리 부부를 참으로 예뻐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서른 다섯에 보신 자식이라 그런지...
그리고 대학생인 큰 조카보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5학년인 저희 딸을 정말 많이 예뻐하셨습니다.
손주라고 해 봐야 세 명이 전부이고 느즈막히 본 손주라 더 이쁘셨나 봅니다.
항상 손녀딸이 오면 과자 사주신다고 손 잡고 가게를 다녀오시고
딱히 수입이 없으신데도 항상 손녀딸 용돈을 두둑히 쥐어주시며
공부 잘해라 이 한마디 하셨습니다.
씽크대 음식물까지 당신이 직접 수거해 버리시면서
시어머니보다 더 깔끔하게 집안 정리를 하셨습니다.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으시다고 항상 말씀하시며
가끔 드리는 안부 전화에도
에미가 하시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우린 신경쓰지 마라 너네 잘 살면 그걸로 된다
음식 타박 한 번 없이
맛있다 좋다 괜찮다 만 얘기하셨습니다
서울 아들네 오는 것도 부담될까 봐
전세집을 옮기거나 집을 사 이사 했을때만 올라오셔서
딱 하룻 밤만 묵고 가셨브니다.
어머님이 애들이 오라고하니 같이 다녀오자고해도
꿈쩍도 안하셨습니다.
그러다 이 삼주전
어머니에게 서울 아들네 어찌 사는지 보고싶다며
월말에 다녀오자고 얘기해 놓으셨답니다.
대구에 기차를 타고 내려 갈 때면
말씀도 없이 기차역에 일찍 나오셔서
저희 내외와 손녀딸을 기다리곤 하셨습니다.
당신이 해준 게 없다고 항상 안타까워하시며
아파서 병원에 가셔도 일이 있어도
서울에 알리지 말라며
어머님과 두 분이서 해결하시곤 했습니다.
두 달전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가셨을 때
연락처가 없어서 자식들이 오기 전까지
그 삭만한 곳에서 몇 시간을 혼자 계셨는데
지난 주 수요일
집에서 홀로 운명하셨습니다.
건강하게 퇴원하신지 불과 삼주만에...
언제 몇 시쯤 돌아가셨는지
뇌출혈로 쓰러지시면서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이
계속되었는지 아무도 모른채
그렇게 홀로 먼 길을 가셨습니다.
행여 자식들 부담지울까봐
그렇게 서둘러 가셨나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시더니...
아버님
명절 때 저희랑 고스톱 치시면서
즐겁게 웃으시던 모습 이제는 더 이상 뵙지 못하겠네요.
저희도 자식에게 아버님만큼의 부모가 되어야지라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저 부모와 자식이 서로 바라는게 없이 따뜻한 말과 눈길로 지켜봐주어야 함을 새삼 느낍니다.
아버님 그립습니다.
편히 잠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