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무슨 특강이 있었나봐요.
"엄마 오늘 학교에서, '엄마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여러 가지 항목을 내 주시고
자기가 들어본 이야기는 동그라미 쳐보라고 했는데 나는 딱 하나 있어서 동그라미 쳤어"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그래서 속으로 뜨끔했죠. 평소에 말 곱게 하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있었을 테니..
그래서 뭔데? 하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은
"방 청소 해"
순간 휴..하고 안심했습니다.
아이가 받은 종이에 적힌 항목 중에는
"너는 왜 이렇게 못하니"
"너 같은 애를 내가 왜 낳았는지 몰라"
"어휴 지긋지긋해"
"저리 좀 가"
등등..이런 말들이 있었대요.
그러면서 진짜 그런 말을 하는 엄마가 있냐고 물어오네요.
저는 그냥 빙그레 웃었어요.
아이에게는 하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 저희 엄마는 저에게 위에 제시되었던 것보다 훨씬 심한 폭언 폭행을 마구 일삼았던 분이었어요.
뺨 때리는 건 너무 자연스러웠고
"너같은 건 낳자마자 엎어 죽였어야 한다.."이런 말도 아무렇지 않게 제 얼굴 보고
아빠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빠 닮았다는 이유로 제게 맘껏 쏟아냈던 분이죠.
언젠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됐을 때
엄마가 아빠랑 싸우다가 말리던 저를 보더니 갑자기 신발을 들어 제 얼굴을 내리쳤는데 제 입술에 맞았어요.
진짜 신기하게도 입술이..요술 부리듯이 순식간에 공기빵처럼 부풀더군요.
그게 너무 신기해서 아픈지 뭔지도 모르고..멍 하니 서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가 저를 때린 후 사과한 것은 그 때가 유일했어요.
다음날까지 입술이 딱다구리처럼 부풀어 있었는데..그걸 보고 엄마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냥..왜 엄마가 나에게 사과를 하지..이런 느낌이었어요.
엄마는 늘 나에게 가혹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가끔씩 엄마가 제 어깨를 안으려고 하면 (아마 엄마가 술 마셔서 취했을 때였을 거에요)
저는 그게 그저 어색하기만 했어요. 그냥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
너처럼 멍청한 아이는 처음 본다. 그것도 모르냐. 이런 머저리.
네까짓게 어떻게 대학을 다닐 수 있냐. 식당 종업원이나 할 팔자지.
이런 폭언을 늘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스물 다섯 살 쯤 되었을 때 나를 때리는 엄마에게 드디어 반항했어요.
때리는 엄마 손목을 잡고
"내가 이렇게 맞고 살 이유가 없다"하고 분명히 말했거든요.
그 뒤로는 때리지 않더군요.
그 대신에 금전을 요구해왔고 원하는 만큼의 금전을 못 드리면 폭언을 했습니다.
대학교 때 저..한 달에 3만원 용돈으로 살았고(80년대 후반이에요)
취업한 후 40만원 정도의 월급을 엄마 드리고 저는 5만원으로 회사 다녔습니다.
이쁜 옷 한 번 못 입어보고 20대를 보냈지요.
그러다가 너무나 착한 신랑을 만나 결혼을 했고
너무나도 이쁘고 착한 딸을 얻었습니다.
우리 남편이랑 딸을 생각하면 지난 어두운 과거쯤 다 잊을 수 있을 만큼요.
엄마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셔서 힘 없는 노인이세요. 이제는 제게 미안하다고 합니다.
저는 엄마도 힘들어서 그런 거 이해한다고 했고요.
그게 사실이거든요. 그냥 남편 만나 사는 동안 사랑 듬뿍 받고..딸 키우면서 행복하다보니 과거는 다 넘어가지네요.
우리 딸이 저에게 어제는 또 그래요.
"엄마 친구들이 내가 엄마한테 한 번도 맞은 적 없다니까 아무도 안 믿어. 친구들은 엄마들이 야단칠 때 때린대"
저는 또 빙그레 웃으며 딸을 안아 줬어요.
"이렇게 이쁜데 때리긴 왜 때려^^"
제가 예전에 엄마에게 그랬거든요
나는 나중에 자식 낳으면 엄마처럼 때리지 않을 거라고. 대화로 모든 것을 풀 거라고.
그 때 엄마는 저의 형제들과 함께 저를 비웃었어요(이게 우리 엄마의 주특기였어요, 언니 오빠랑 같이 서서 제게 비난을 퍼붓는 것을 즐겼죠.언니 오빠는 같이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구요.)
하지만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노라는 저의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니, 지킬 것까지도 없네요. 우리 딸이 정말 착하고 이뻐서 때릴 일도 없고 험한 말 할 일도 없거든요.
지금 열 세 살 된 제 천사는 오늘부터 수학여행 가서 내일 모레 돌아옵니다.
가기 전에 매직으로 흰 종이에 "엄마 아빠 다녀올게요" 라고 쓴 종이를 책상에 놓고 갔네요.
휴대폰 금지라 목소리도 못 듣고..딸아이가 그립네요.
저는 불우한 과거에서 자랐지만..우리 딸아이는 행복한 기억만 간직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