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 보셨고 글도 여러 개 올라왔지만
저는 특별한 상황에서 보게 되었어요 .
전 ... 세 아이를 둔 직장맘입니다 .
그리고 어제 삼 일간의 무단가출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그런 상황입니다 .
82 에서의 지랄총량의 법칙에 예외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생에 사춘기도 없던 제가 꼬맹이들을 놔두고
직장과 육아의 쳇바퀴같은 생활에 지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무단 가출을 감행하기에 이르죠 .
해본 결과 가출은 가끔 해볼만한 것이라는 거 ^^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게요 .
처음은 기차를 기다리며 보았습니다 .
많은 분들이 그러셨듯이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
더군다나 저 같이 불량한 엄마가 보기에는요 .
첫 번째 영화를 볼 때는 에바 ( 엄마 ) 에게 감정 이입을 하면서 보았습니다 .
영화를 보면 에바는 준비된 엄마는 아니었습니다 .
자유분방하고 피임에서도 자신의 감정과 느낌 때문에
방심해서 아이가 생겼고 아이를 낳고서도 상당시간동안은 엄마의 역할에 낯설어합니다 .
배부른 자신의 약간은 망가진 모습을 보는 장면에서 그렇고
아이를 낳고 바로 모성애가 생기지 않아 당황스러워하는 장면에서 그랬습니다 .
그리고 자신의 자유분방함을 막고 있는 아이는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존재로 느껴질 때가 많죠 .
대부분의 엄마들은 한 번씩 느껴봤을 느낌입니다 .
그래서 결국 케빈같은 소시오 혹은 사이코패스 ( 어느 것에 맞는지 모르겠지만 ) 인 아이는
엄마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상당부분이 타고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줄 알았어요 .
그래 .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가 그렇게 태어나게 한게 아니라
상당부분은 기질적으로 갖고 태어나는거야 . 합리화 하면서 말이죠.
세 아이 직장맘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들을 키우며 아무리 해도 역부족인 엄마의
역할에 도피하고 싶은 심정으로 가출을 단행한지라
이때는 엄마의 감정선만 보였습니다 .
현재 내 아이가 이렇게 산만하고 공부에의 열정도 없고
엄마와의 관계도 어긋나고 사춘기라 그런지 자꾸 엇나가고 이런건
아이의 양육환경 때문인가 아니면 원래 그런 아이었던가 하는 것은 늘 내게 죄책감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
네이버 영화에서는 "( 에바는 ) 자신이 가장 큰 희생자인데도 마치 가해자처럼 고통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
케빈이 자신에게서 왔 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 라고 되어있는데 아이가 사회적으로 원하는 방향대로 크지
않는다는 것을 엄마도 받아들이기 힘든 데 결국 그 결과에 대한 블레임은 엄마에게 돌아온다는 점 .
거기에 엄청나게 공감이 되더라구요 .
맞아 . 내 탓이 아니야 하면서요 .
첫 번째 영화를 볼 때는 보이지 않았어요 . 케빈의 감정선이 .
그런데 왠지 영화를 보면서 해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영화평들을 읽어보니
이 영화를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의 사랑 회복 이야기"로 보는 관점들이 있어서
아니 ???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지 ? 하면서 다시 영화를 보게 되었어요 .
케빈에게 초점을 맞추고 보아도 케빈은 절대 키우기 쉬운 아이 , 평범한 아이가 아니에요 .
타고났다면 자신도 불쌍한 일이죠 .
엄마의 입장에서 첫 번째 징그럽게 우는 장면 .
예민했던거죠 .
엄마도 처음 아이를 키우니 몰랐겠죠.
아이가 정말 징그럽게 우는 어느 시기가 있어요 . 그 시기가 지나면 대부분 좋아지기도 하고요 .
대부분의 엄마들 경험하지 않았나요 ? 저도 경험이 있어서요 .
케빈엄마가 아빠한테 깨우지 말라고 겨우 잠들었다고 했는데 희안하게 아빠가 와서 안으면 또 엄마랑 있을 때처럼
그러지 않는 경험 . 미칠 노릇이죠 .
7 살 무렵 기저귀를 차고 있는데 선천적이든 양육 환경 미숙이든 7 살까지 대소변 훈련이 안된 아이가 보였을 여러 가지 지체
들 ... 아이가 젖 떼고 똥오줌만 가려도 다 키운 것 같거든요 .
처음에 그렇게 고생했을 엄마가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
엄마아빠 사랑나누는데 다 아는 것 같은 눈빛으로 들어오고 ...
하지만 케빈을 주의해서 보면 케빈은 계속 엄마를 보고 있더라구요 .
엄마의 사랑을 , 인정을 , 따뜻함을 찾았던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을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필요했던거 아니었을까요 ?
그런데 안타깝게 그 부분에서 엄마에게는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더라구요 .
특히 초반부의 엄마 모습에는 더욱 그렇구요 .
케빈은 계속 엄마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
안아주는 모습도, 웃어주는 모습도 별로 없었고요 .
아이를 객관적인 객체로는 인정하지만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로 느끼게 해주는 모습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 에바를 설명하자면 냉정하고 이성적인, 의무를 다하는 정도 ?
결국 케빈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나중에 엄마와 헤어지게 될 16 살 생일에
그런 대형 사고를 쳐버리는 결과까지 낳게 되는 ... 선택을 하게 했던거죠 .
두번째 영화를 보니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네요 .
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입장을 변호해주고 싶어요 .
엄마도 인간이고 실수하니까요 .
후반 엄마의 모습은 나라면 저럴 수 있었을까 ? 싶게 동네 사람들의 블레임을 다 감내하고
매주 같은 시간에 면회를 가고 정말 자신의 기질과 다른 아이를 내 아들로 품고 ...
내 직장과 내 모든 것을 잃게 한 아들을 정말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거라고 보여져요.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Why me? 하면서 원망했을거 같아요.
그리고 엄마가 차갑고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
사이코 패스 같은 비사회적인 인간형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대비해서 보여주기 위해
둘째 아이를 아주 이쁘고 정상적 (?) 으로 그리고 있죠 .
감독이 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강하게 했네요 .
저건 엄마라는 역할을 해본 사람이 그릴 수 감정선들이 있어서요 .
찾아보니 저랑 나이가 비슷한 영국 여자 감독이더군요 .
첫째 아이는 늘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요 .
둘째 아이를 보면서 확인해보고픈 욕구 .
또 엄마가 미숙하게 키운다고 다 그런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
그러니 엄마의 잘못으로만 탓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고요 .
그럼 결국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뭘까 생각해봤어요 .
설마 인간이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을 새삼스럽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걸까 ?
아니면 엄마가 임신 때 술 마시고 생각없이 임신하면 저런 아이 낳으니까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걸까요 ?
아니라는 주관적인 결론을 얻었네요 .
결국 이 둘을 다 담으면서 나머지는 보는 사람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 같다고
저는 보고 싶어요 .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의 사랑회복 이야기 .... 라고 보기도,
부족한 모성애로 빚은 괴물 혹은 소시오 패스의 이야기 ... 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거 .
비약같지만 케빈에 대하여라는 영화를 통해 얻은 저 개인적인 결과는 참으로 교훈적입니다 .
아이의 현재 결과는 나의 잘못이 아니라 내 탓을 할 필요는 없다 .
굿윌헌팅에서 나오는 잊혀지지 않는 대사 . “It’s not your fault.”
단지 .... 그런다 하더라도 엄마의 역할에는 최선을 다하자 . 아이에게 엄마는 너무 큰 존재이다 .
그 최선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 라구요.
오래 전 영화를 다시 써봄은
이런 관점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