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의 가을비를 데려온 가을은 이미 무척 성숙해버렸습니다.
봄하고 가을은 마치 맛난 곶감처럼 하루하루 그들의 자람이 어찌나 아깝고
아쉬운지... 하루하루 이 가을을 그냥 놓쳐버리긴 아깝다는 강박관념을 갖게합니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지닌... 정말 듬직하고 잘생긴 계절입니다...
바쁘지만.... 하루쯤은 가을하고 놀아야겠다는 생각에...
일요일 늦은 아침을 분주히 먹고 ...
경복궁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마침 비가 온다는 예보에.. 언젠가 무척 인기있는 프로에
나오셨던 유홍준교수님이 그토록 자랑해마지않던 경복궁 근정전 돌바닥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휴일의 경복궁은 한가하면서도 부산합니다... 중국말로... 또...
어느나라인지 알지 못하는 언어로.... 작은 깃발아래 다큰 어른들이 줄지어 다닙니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근정전 바닥의 물흐름은 보지 못하였지만...
마치 시골에서 올라온 촌부처럼... 경복궁에서 즐거웠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다가 생각했던 것들을 만나보면... 무엇 하나도 모르고 있던 나자신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흐린 날 고궁에서.. 먼 옛날 이곳이 삶의 전부였던 사람들을 생각해보며...
그들은 이 나무밑, 연못가를 거닐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뭐 그런 상념이 떠오르더군요...
몇년전에 상영되었던 "세상의 모든 계절"이라는 영화를 저는 보지 못했는데...
마침 씨네코드선재에서 재상영을 해주네요..
경복궁을 나와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참 고즈넉하고 예쁩니다...
그곳은 길을 걷는 사람들도 다 예쁜 것 같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기전... 이미 좋은 영화라는 것을 알고 오면...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면서... 앞으로 두시간정도 내가 느껴야할 행복감에 살짝 떨립니다..
마치 따뜻한 물에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좋은 영화는 삶을 유연하고 다채롭게 해주는 간편한 방법중에 하나입니다...
당신은 행복은 지금 몇점입니까?
라는 영화속의 대사에.... 생각해 봅니다... 나의 행복은 몇점일지...
영화속 메리는 산만하고.. 어린애같고.. 외롭고...
하지만...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프더군요...
마지막 장면에 잡혔던... 메리의 얼굴...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 모두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초라한 현재를 견디며.. 살고 있는 거겠죠...
이렇게 다정하고 따뜻한 휴일 하루를 보내고...
다시금 정신 바짝 차리고... 긴장하여 살아야합니다..^^
가을은 아끼며 야금야금 꺼내먹는 간식처럼...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겨울이 올테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