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최인호 선생님께서 30대이셨을 때 뵌적이 있어요.

못난이 조회수 : 2,569
작성일 : 2013-09-26 13:55:46

제가 고3이던 70년대 후반의 어느 겨울의 지방 대도시.

아직 준공이 덜된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이어령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같이 오신 분이 최인호선생님과 소설가 손장순씨.

이유인즉슨 여류소설가였던 손장순씨가 쓴 소설에서 제 모교인 여고를 졸업한 여주인공을 형편없이 그려서 학교를 폄하해서 학교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그랬던거 같아요.

70, 80년대 당시 각 여고마다 이미지가 있었는데 시험치고 들어가던 당시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녔던 명문여고는 과부학교, 시내 중심에 있어서 공부는 못하지만 예쁘고 날라리애들이 많이 다녔다던 저희 모교.

아마 그 소문 그대로 손장순씨가 모 소설에서 묘사했던거 같고, 그걸 알게된 모교 동창회에서 난리가 났었어요. 사과하라는 압력에 못이겨 사과를 하고 당시 재학생들에게는 덤으로 문학강연을 한거죠.

그 단편소설이 ‘문학사상’인가 하는 월간지에 실렸었고 당시 이어령선생님께서 ‘문학사상’의 주간이었던거 같았어요. 최인호선생님은 당시의 베스트셀러 인기작가라 그랬는지 같이 오셨더군요.

너무 오래전이라 이어령 선생님 강연은 기억나는데 최인호 선생님이 강연을 하셨는지는....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사과받고 강연 후 사인회에서 구름같은 인파를 헤치고 강연메모를 했던 노트에 이어령선생님 사인을 받고 감개무량해 했더랬죠.

이어령선생님의 수필을 모조리 다 섭렵하고 감동받았던 이어령 선생님 팬이었던지라..

친구들이 다들 최인호 선생님 사인 받으려고 발버둥을 치는걸 보고 코웃음을 쳤어요.

그땐 제가 한창 겉멋에 빠져 순수문학이니 뭐 이런 거에 집중하며 최인호 선생님 같은 분들은 통속작가라며 무시하던 철없고 허세덩어리 여고생이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그 후에는 최인호 선생님의 소설을 재밌게 읽고 영화도 재밌게 봤어요.

30년 넘게 샘터라는 잡지에 기고되었던 ‘가족’이 가장 좋았고. 그 외에도《타인의 방》,《잃어버린 왕국》,《바보들의 행진》,《별들의 고향》, 《지구인》,《상도》,《깊고 푸른 밤》, 《해신》, 등 수많은 수작을 남겨 감동을 주었던 분을 가까이서 뵙고도 남들 다 받는 사인을 못 받은 저는 역시 사람보는 눈이 없나봐요.

 

최인호선생님의 비보를 듣고 예전회상에 잠기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IP : 58.29.xxx.134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그당시
    '13.9.26 2:02 PM (183.109.xxx.150)

    이어령이 한국의 살아있는 지성이니 뭐니해서 엄청 떠받들던 시절이었죠
    한국영화는 방화라 불리면서 외화에 비해 천대받던 시절
    그당시 분위기가 그랬던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어령 그분은 암기력좋은 백과사전적 인간에 짜깁기를 잘하는 사람?
    최인호씨같은 분이 요즘이 전성기였다면 정말 훨씬 대접받고 많은걸 누리시고 사셨을것 같아요

  • 2. 못난이
    '13.9.26 2:10 PM (58.29.xxx.134)

    그러게요.~
    이어령선생님은 요즘으로 치자면 여고생들에게
    무한 추앙받는 한비야씨 정도로 인기인이었던거 같아요.

    그에 반해서 최인호 선생님은 당대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시대를 앞서가며 문화를 선도하셨던 분.

  • 3. roo
    '13.9.26 2:14 PM (202.14.xxx.177)

    쾌유하시길 바랬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4. ...
    '13.9.26 2:36 PM (118.43.xxx.3)

    http://theacro.com/zbxe/free/922295

  • 5. 못난이
    '13.9.26 2:43 PM (58.29.xxx.134)

    ...님그 시절의 제가 그랬었나봐요.

    그분의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고 인기에 연연하는 깊이가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문학이란 그렇게 단순한 잣대로 규정되는 게 아니란 걸 알 수가 있다.
    다만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를 뿐이다.'

  • 6. ....
    '13.9.26 4:03 PM (114.201.xxx.42)

    최인호 선생님의 작품중 관음증 환자의 애정 행각을 그린 적도의 꽃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나이 많은 사업가의 첩 노릇하는 여자를 좋아해서 나중에는 그녀가 겪는 버림과 배신을 고스란히 체험하다 복수까지 해준다는 작품이죠.

    관능적이고 나름 스릴 넘친 작품이였습니다.
    80년대 아파트가 신분의 상승처럼 여겨지고 정신보다 물질이 앞선 상황에서 일어나는 괴리를 아주 통속적이게 그린 작품이였네요.

    최선생님은 유독 여성이 성을 파는 상황을 아주 담담하게 그리셨어요.
    그 속에는 경제를 창출하지 못하는 존재는 성이라도 팔아야 산다... 이거 아닌가 싶습니다.

  • 7. 영원한 청년
    '13.9.26 4:30 PM (175.114.xxx.168)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04151 너무 일방적인 세입자. 답답해 미치겠어요. 20 집주인 2013/10/02 4,196
304150 사람을 찾습니다. 그리움 2013/10/02 663
304149 조용하고 야심한 새벽에 경비아저씨랑 무슨 얘길 할까요? 12 vv 2013/10/02 3,005
304148 귀촌에 성공하신분 계신가요?? 8 기쁨의샘 2013/10/02 2,608
304147 세탁소에 맡긴 한복저고리에 물이 들었어요. 2 엉엉 2013/10/02 767
304146 제가 피곤한게 저혈압 때문일까요? 8 으잉 2013/10/02 2,967
304145 엄마와 아들과 제주도 3박 4일로 놀러가려해요~ 3 외동딸 2013/10/02 1,340
304144 홈쇼핑에서 홍보하는 무료체험 5일 정말인가요? 5 소심녀 2013/10/02 1,554
304143 집에서 닭봉 튀김 해보려는데요 4 처음 2013/10/02 1,143
304142 프라이머리 노래 좋네요.. 10 .... 2013/10/02 1,572
304141 10여년 만에 취직했는데,,떨려 죽겠어요 7 에휴 2013/10/02 2,337
304140 얼굴 이마에 오돌도돌하게 뭔가 많이 났어요... 3 ... 2013/10/02 1,832
304139 요새 모기 때문에 미치겠어요. 9 분화구 2013/10/02 1,503
304138 호텔에서 돌잔치를 했는데 완전 바가지쓴거 같아요.ㅠ.ㅠ 2 바가지 2013/10/02 2,959
304137 광화문쪽으로 한가롭고 커피 맛있는 집 추천 부탁드려요. 7 ^^ 2013/10/02 1,588
304136 아이를 안는 방법도 나라마다 다른 가봐요 10 .... 2013/10/02 1,926
304135 눈꺼풀 안쪽에 물집 같은게 있어요 4 ??? 2013/10/02 10,424
304134 눈밑떨림이 거의 7개월째 이어지고있어요 11 따우닝 2013/10/02 4,171
304133 유부남들이 어떻게 업소 이용하고 바람피우는지 궁금한분들 1 ㅇㅇㅇ 2013/10/02 5,456
304132 남편이 싫은건 아니지만... 6 모찌 2013/10/02 1,693
304131 컴퓨터 본체 버릴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anfro 2013/10/02 2,099
304130 제주도 캠핑 태풍땜에 취소---연휴에 뭐하죠? 2 좌절 2013/10/02 1,457
304129 급) 발톱이 부러졌어요 ㅠ.ㅠ 5 so 2013/10/02 3,617
304128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는 바이올린을 시키는게 잘못된걸까요... 9 ..... 2013/10/02 3,638
304127 미국 셧다운은 왜? 7 미쿡 2013/10/02 3,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