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숙]어쩌다 거짓말과 친일이 보수가 됐나
가끔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가면 자칭 보수라는 분들이 거짓말을 아주 쉽게 합니다. 자기 주장의 근거로 통계를 들이대는데 실제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내용입니다. 제멋대로 만들어낸 게 분명한 수치를 들이대면서 좌파다, 종북이다 위험하다고 비판을 해서 도대체 그런 자료가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자기는 아는 자료라고 대답을 합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교학사판 역사교과서도 그렇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에서 근대화가 시작됐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개인소득이 올랐고 주거와 보건이 향상됐다, 산업국가로 나아갈 토대가 생겼다, 이런 내용도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역사교과서라면 이런 주장을 하려면 동시에 일제가 얼마나 많은 자산을 수탈해갔는가, 얼마나 많은 양민을 끌고 가고 죽였는가도 밝혀야 합니다. 식민체계에 길들이기 위해 얼마나 억압적인 교육을 하고 가혹한 공안체계를 만들었는지도 써줘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시대라는 봉건왕조를 벗어나면서 개인에게는 풍요가 확대돼 보이나 알고 보면 철저한 수탈의 기반에서 이뤄진 식민지의 참모습이 그려집니다. 양쪽 입장을 다 다루면 그건 들여다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의 주장만을, 그것도 상식을 벗어난 주장을 합니다. 적국에 저항한 우리나라 의병을 두고 '소탕'했다, '토벌'했다는 표현을 쓰고 동학농민혁명을 ‘전통적 질서를 복구하려는 민란’이라고 씁니다. 조선왕조를 살리려는 복고운동이라는 거지요.
동학농민혁명은 노비제를 없애고 여자의 개가를 허용하고 토지제를 개혁하라고 주장한 자생적 자발적 근대화운동이었습니다. 일본군이 그때 이미 들어와 농민학살로 완전히 도륙내지 않았으면, 만일 동학농민혁명이 성공했으면 그대로 조선 근대화의 토대가 됐을 것입니다. 이 운동은 나중에 동북아시아 전체, 아니 인도에까지 자주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왕조에 빌붙은 운동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때 이미 우리나라에 개입한 일제의 탄압상을 감추고 식민지 시대에 이르러서야 근대화가 이뤄졌다는 뉴라이트 논리를 확보하기 위해서겠지요. 이 역사책에는 일제의 강제동원 수치도 일본 공식통계보다도 적게 쓰고 관동대지진에서는 그 끔찍한 한국인 학살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런 역사교과서가 보수교과서일까요? 친일교과서지요.
이 '친일교과서'를 쓴 3인의 공동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11일 새누리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에 70% 예술계에 80% 출판계에 90% 학계에 60%를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네요. 이건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온 수치일까요? 그냥 갖다 붙인 겁니다. 이런 걸 시속어로는 '뻥'이라 하고 정확하게는 거짓말이라고 하지요. 그는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이 언제 일이냐 물으니 2006년쯤 나온 말이라고 답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인으로 활동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분입니다. 그런데 공식기록에는 이런 발언이 전혀 없다는 게 노무현재단의 설명입니다. 저 정도 발언이면 보수진영이 난리를 쳤을 텐데 기사검색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있지도 않은 사실을 연도까지 창작하면서 거짓말하는 버릇이 몸에 밴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날 강연을 유치한 사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입니다. 작년 대선 투표일 닷새 전인 12월 14일 부산 유세에서 2007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줄줄 읽은 분이지요. 당시 박근혜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습니다. 2007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국가기밀입니다. 도대체 어디서 누구한테 얻은 국가기밀일까요? 그걸 밝히려고 국회가 국정조사를 벌이자 그는 싱가폴 몽골 중국을 다니다가 국정조사가 끝나자 귀국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는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이명희 교수 초청강연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수라고 부릅니다.
가장 심각한 거짓말은 작년부터 국정원과 경찰에 의해 이뤄졌고 새누리당의 비호 아래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11, 12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의 정치개입이 작년 12월 11일 김하영 직원의 노출로 공개될 상황에 처하자 차문희 당시 국정원 2차장, 박원동 국익정보국장이 서울경찰청 김용판 전 청장, 권영세 당시 박근혜 캠프 종합상황실장,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과 여러 차례 통화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원은 댓글을 지우고 서울경찰청은 축소은폐 수사하기로 갈피를 잡았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입니다. 결국 12월 16일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의 단독토론회에서 국정원 직원의 정치댓글은 없었다 주장하고 여직원의 인권 문제를 제기해서 여론조사를 역전시킨 일이 가능했습니다. 그날 밤 서울경찰청은 거짓말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고요 그런데도 국회 국정조사에서 국정원과 서울경찰청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합니다.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딱 한 사람만 빼고는 말입니다. 이들의 거짓말을 감싸준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역시 거짓말에서 한패거리입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북심리전'과 이 땅의 ‘종북’을 몰아내기 위해 달았다는 댓글은 또 어떻습니까? 민주화 운동을 모욕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이를 두고 성폭행까지 언급해서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들 정도입니다. 국정원의 활동과 보조를 맞춘듯한 일베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쓴 글일까 싶은 혐오스런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들 역시 보수를 자처합니다.
원래 보수는 기존의 체계를 지키려는 이들입니다. 도덕적으로는 완고할 정도로 원칙을 지켜야 보수입니다. 더 예의바르고 고지식할 정도로 법을 지키는 이들이 보수여야 맞습니다. 그런데 왜 2013년의 한국에서는 거짓말과 친일과 혐오스런 행위가 보수가 되었습니까? 이유는 명백하죠. 2013년 한국의 정부가 이런 짝퉁 보수를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과 친일과 혐오행위의 죄를 묻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가란 신뢰가 기반인 체계입니다. 언제까지 거짓을 옹호하며 국가가 유지되길 바랍니까? 진짜 보수가 지키는 진짜 자유민주국가를 원한다면 이 거짓말과 친일과 혐오스런 행위부터 끊길 바랍니다.
☞ 2013-9-13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