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나서 댓글 달았는데...
손가락이 아프게 다다다다 친 댓글이 아까워서 여기 올려요.
그 글 원글님! 저 완전 반가웠거든요.
이런 익명 게시판에서나마 만나서 반가웠어요~!
------------댓글---
어머, 누구세요? 저보다 더 중증인 분은 처음 보는데요!
아예 다 외우고 계시네요!
음식 얘기 나오는 책, 영화 얘기 계속 눈팅하다가 이 글 때문에 참을 수 없어 로그인했어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를 아는 사람은 오늘 아까 글에서 처음 보고,
솔로몬의 보물을 아는 사람도 처음 봅니다.
그거 쓴 작가가 '동굴의 여왕' 쓴 거 아시죠? 이 충격적인(어린 아이 마음에) 책이 더 인기 많았던 것도...??
본론으로 돌아와서
먹는 얘기, 묘사, 저 그런 거 진짜 좋아했는데
그래서 원글님처럼 무지하게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ㅋㅋ(막 우리래) 음식 묘사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이 열악한 환경에서 뭔가를 만드는 장면 같은 것에서 알 수 없는 쾌감을 느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로빈슨 크루소가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어 빵 굽기에 성공하는 장면은 괜히 뿌듯하고!
몬테 크리스토 백작에서 파리아 신부의 물건들, 정말 매력적이었죠.
그리고 혹시 보셨는지, 기억나시는지 모르겠는데
소공녀, 소공자 시리즈처럼 집 없는 소녀, 집 없는 소년 시리즈도 있었어요.
집 없는 소녀에서 그 주인공 소녀가 정말 집 없이 떠돌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어느 늪 가에서인지 골풀을 채취해서 그걸로 신발을 만들어 신어요. 제 기억에는 리본도 넣어 만들어서 꽤 그럴싸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 신발을 보고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하고... 그런 스토리가 있었어요.
그 대목이 어찌나 좋았는지!
이게 부작용이 있었어요, 저에게는 ㅋㅋ 그런 야생의 생활을 해 보고 싶은 욕구가 늘 있었던 거예요.
심지어 아주 어릴 때 꿈이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였다는 거... -_-;;;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봐도
크눌프가 라스무스랑 비슷한 직업(?)이잖아요. ㅋㅋ 노래하는 떠돌이!
물론 크눌프는 일종의 철학자 비슷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노래와 휘파람 등 잔재주가 많고
아름다운 계절에 이 지방 저 지방 떠돌아다니며 사람들(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는 점이 공통적이었죠.
저 어릴 때, 커서 이런 떠돌이 생활을 해야겠다... 정말 진지하게 다짐했었어요.
커서 보니 이것은 헛 꿈.
대신에 그 꿈의 일종의 변형으로, 다른 고생길을 자처해서 시골 구석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아... 제가 한 고생은 이루 말로 다 못합니다. 여기서 그 썰을 풀 수는 없지만, 고생 바가지 바가지 정말 많이 했어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가 그런 거친 곳에 가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고생을 하게 한 주 원인이, 저는,
집 없는 소녀, 로빈슨 크루소, 라스무스, 크눌프, 몬테 크리스토 백작... 등등 어릴 때 읽은 책들에 크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실은... 그렇게 고생 바가지로 하고도 그 때 추억이 즐거워요. ㅋㅋ 고생하던 그 순간에도 은근 즐기던, 그런 심리가 있었고요.
참, 크눌프에서 크눌프가 친구에게서 다리미를 빌려 모자를 말쑥하게 다리고,
친구가 옷을 수선해 주는 장면 같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도구의 인간인지도 몰라요. ㅎㅎ 우리 모두 말이에요.
요리 나오는 장면도, 음식 그 자체의 묘사도 있지만 만드는 장면 장면에서 그 현란하고 부지런한 손길에
넋을 잃고 보게 되는 게 있잖아요. 카모메 식당도 그렇고. 바베트의 만찬도요.
썰고 다지고 굽고 튀기고... 결국 접시에 그득히 담아 내는 그 감각의 향연.
뭔가를 만들고 그걸로 결과물을 내놓는 것, 감각을 자극하는 것, 그런 것들에 사람들이 약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해 봐요.
아참 그리고, 꼭 하고 싶던 말.
그 책들을 쓴 작가들은 모두 천재였던 것 같기도 해요! 묘사에 정말로 탁월했던 거죠...
물론 우리같이 ㅋㅋ 상상력 뛰어난 독자들과 합이 딱딱 맞은 것도 있겠지만,
제가 이런 말을 왜 하냐면요,
메이플 시럽도 그렇고 스튜도 그렇고 두꺼운 검은 빵이니 하는 것들... 책 읽으면서 상상했잖아요.
신기하게도, 커서 만나고 맛본 그것들은 제 상상의 것들과 딱, 일치했어요.
이걸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어 답답한데, 메이플 시럽의 냄새를 맡는 그 순간 저는 그게
책에서 그토록 읽어 오던 단풍나무 시럽인 것을... 한 번에 알았다니까요. 낯설지 않았어요.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캐비어도, 보는 순간 아, 이건 캐비어야, 알았고요.
그걸 그렇게 묘사한 작가들 정말 대단하고...
다 큰 지금도 살면서, 책 속에서만 읽고 아직 못 만나 봤던 것들을 하나씩 더 만나게 되면 저는 그걸 은근 확인하면서 기뻐요.
마치 어린 시절의 어떤 순간을 다시 만난 것처럼.
그것이 아직 이 세상에 있고(시럽이든, 빵이든) 제가 다 커서 어른이 되어 그걸 맛보고 있다는 게,
산다는 게, 참 재미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