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파는 곳을 '바(bar)'라고 해요. 우리 나라 빠처럼 럭셔리 메롱메롱한 분위기가 아니고
보통 구멍가게 분위기에요.
골목 모퉁이마다 타바키(tabacchi)와 함께 쉽게 볼 수 있어요.
타바키가 버스표도 팔고 핸펀 요금 충전도 해주고 우표도 팔고
한 구석에 빠찡꼬 기계도 비치하고 각종 로또와 토토칼초(축구 로또)도 팔고
문구류, 전화 카드, 기념품, 건전지, 과자와 사탕 등등 온갖 잡화를 파는 구멍가게라면,
바는 커피와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미니 먹거리 편의점 개념이에요.
작은 동네라면 타바키와 바를 함께 하기도 해요.
바의 크기는 제멋대로에요.
아예 테이블이 없는 경우도 있고 바 바깥에 딸랑 테이블 두 개 내놓은 곳도 있고요.
물론 시내 중심 관광명소에 자리잡은, 테이블 좌석을 많이 구비한 카페들은
특별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그런 곳을 '관광용(turistico)'이라고 불러요.
그런 카페들은 '카페테리아'나 '살라 다 떼'라는 이름을 달고 있어요.
카운터 쪽에 들어가서 보통 바에서처럼 커피 달라고 해서 서서 마실 수도 있긴 있어요.
하지만 카페테리아라는 곳은 보통 저 북쪽 추운 동네 (독일, 북유럽)에서 몰려내려오신
아저씨 아줌마 관광객들이 엄청 비싼 자리세를 내고 앉아, 로마를 태우는 햇살과
코앞을 지나가는 자동차가 뿜는 매연과 비둘기들이 파닥이며 일으키는 먼지들을 카푸치노에 버무려
함께 마시면서 추억을 만드는 카페에요……..ㅋㅋㅋ
관공서 주위나 사무실들이 많이 위치한 곳의 바는 점심 때 간단한 식사거리를 파는 식당을 겸하기도 해요.
보통 파스타 한 그릇, 고기나 생선 요리, 올리브유에 볶은 야채(콘토르노)나 인살라타(샐러드) 한 종류,
빵 한 개, 와인 반 컵이 한 셋트로 나와요.
학교 근처 싼 곳은 7-9 유로, 괜찮은 곳은 12-13유로까지 나가고요.
그 외에 각종 빠니노(이 동네식 샌드위치)와 트라메찌노(식빵 샌드위치)를 팔아요.
돈이 없는 학생들은 그냥 5유로 정도 주고 파스타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기도 합니당……..
더 돈이 없으면 피짜 알 탈리오 (잘라서 파는 조각 피짜) 한 조각 3 유로 주고 먹어요.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 아닌 바에서는
울 나라 포장마차 앞에 둘러 서서 오뎅이나 떡복기 훌떡 먹고 가는 것처럼
사람들이 커피 주문하고 서서 떠들다가 커피 나오면 홀짝 마시고 가버려요.
커피잔째 들고 바깥으로 나와서 꼬르네또 (아침이나 오전에 간식으로 먹는 크로와상 비슷한 빵.
통칭 리에비또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 꼬르네또는 가장 흔한 거. 보통 0.60-0.70유로.
칼집을 내서 누텔라나 마말레이드를 바른 것도 있고
그냥 '셈플리체'-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것-도 있어요)를 뜯으면서 마시기도 해요.
조그만 동네 바 메뉴에서 카페 모카 같은 건 잘 못 봐요.
아이스 커피도 잘 없어요. 관광지 바에는 있긴 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하면 냉장고에 넣어둔 커피 원액에 찬 물 부어서 얼음도 없이 그냥 줘요.
그냥 "까페"라고 하면 에스프레소를 뜻해요. 여러 종류의 커피를 주문할 때는
에스프레소를 카페 노르말레, 보통 커피라고 불러요.
에스프레소가 너무 진하면 카페 룽고가 있고
에스프레소를 두 배 정도 주는 카페 도삐오 (오후에 이거 잘 못 마시면 잠은 다 잤음),
카페 마끼아또 (에스프레소에 우유 한 방울과 거품 보태주는 커피) 정도가
이탈리아 사람들이 제일 많이 마시는 커피에요.
여기에 이것 저것 주문사항이 들어가죠.
거품을 많이 달라느니 적게 달라느니, 우유를 좀 더 보태 달라느니.
이것들은 메렌다 (통상적으로 오후 커피 브레이크)에 마시는 커피고
아침에는 카페 라떼나 카푸치노나 라떼 마끼아또 (우유 한 컵에 커피 쪼금 보태주는 거)를 마시고요,
스푼티노 (통상적으로 오전 커피 브레이크)에는 보통 꼬르네또 한 개랑 카푸치노, 아니면 그냥 카페를 마셔요.
돌체 (파이나 생크림 얹은 과자 등을 총칭)나 또르타 (케이크)도 조각으로 파는데
이건 2.50-3.50유로쯤 하기 때문에 돈 없으면 그냥 꼬르네또 하나 먹는 거고요.
카페 모카는 잘 못봤는데 조금 비싼 바에 가면 커다란 그릇에 빤나 (생크림)나 시럽을 담아서 스푼을 꽂아놨어요.
이거 그냥 먹고 싶은만큼 자기가 퍼다 커피에 얹어서 먹어요.
카푸치노 주문하면 어떤 곳에서는 시로뽀 디 초콜라따 (초콜렛 시럽)나 카카오 가루를 뿌려줄까 하고 묻기도 해요.
그거 뿌리면 카페 모카가 되는 건가? 기분 좋으면 카푸치노 위에 고작 하트 하나 그려줘요.
아니면 하트의 변형인 사과 모양. 거기다 이쑤시개로 잎사귀 같은 거 그리기도 하고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완전 감탄하면서 호들갑을 떨며
'너는 아티스트야, 너에게서 위대한 아티스트의 영혼을 볼 수 있어.
이거 사진으로 찍어서 나의 나라의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너의 작품을 촬영해도 되니?' 정도로
칭찬을 아낌없이 퍼부으면
자기들도 이게 다 입에 발린 아부라는 걸 알면서도 막 놀라는 척 하면서 기분 좋아해요 ㅋㅋㅋㅋ
좀 더 성의껏 뱅기를 태워주고 칭찬을 적립한 다음
나중에 손님들 많이 없을 때 커피 마시러 가면………..
'스페치알레 (특별한)'한 걸 맛보라면서
커피에 브랜디, 초코시럽, 빤나를 얹어서 엄청 멋진 (그러나 살찌는 소리 들리는) 커피를 투명한 유리잔에
가득히 만들어 줘요.
물론 공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 척하고 찬사를 퍼부으면서 맛있게 마셔주면 오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보리로 커피맛 나게 만든
카페 도르쪼(caffe d'orzo: orzo는 보리)라는게 있어요.
커피보다 비싸요. 1유로.
이건 씁쓸하면서도 구수해요. 보통 꼰 타짜 그란데 (큰 찻잔으로) 달라고 해서
카페 아메리카노처럼 설탕 없이 마시면 겨울에 몸이 녹는 기분이에요.
건강을 생각한다면 카페 진생, 즉 인삼 엑기스 커피도 있어요. 기억하기로는 1.40유로.
이탈리아 사람들도 인삼 좋은 줄은 알아가지고 그래요.
진생이 건강과 정력 식품으로ㅋㅋㅋㅋ 알려진 관계로ㅋㅋㅋㅋ
수트빨로 어깨에 힘 좀 준 아저씨들이 카페 진생을 자주 찾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페 도르쪼와 카페 진생은 각각 따로 작은 기계에서 뽑아요.
카페 진생을 전 안 마셔요. 비싸고, 또 인삼은 이미 한약에 넣어서 먹을 만큼 먹고 컸기 때문에……ㅋㅋㅋ
제 신체 구성 성분 중 약 30퍼센트는 한약일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어릴 때 질리게 먹었어요 ㅋㅋㅋㅋ
오렌지가 사시사철 열리기 때문에 바에서 스프레무따 (오렌지 생즙)를 주문하면
즉석에서 옆에 쌓아놓은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기계에 짜서 유리컵에 찰찰 넘치도록 담아줘요.
보통 2.0 - 2.5 유로.
바나 카페에서 파는 커피 값은 제멋대로에요.
관광지 부근에서는 서서 마시는 카푸치노가 0.90유로에서 1.20유로까지 나가지만
동네에서는 0.80-0.90 정도 해요.
관광지 카페에서는 바깥 테이블에 앉을 경우 자리세가 붙어서 둘이 앉으면
카푸치노 두 잔 포함10유로 정도 나가는데
동네 바에서는 웬만큼 얼굴을 익힌 경우 그냥 테이블에 가 앉아도 아무 말도 안 해요.
이런 가격차이에 대해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요.
관광지 부근에서는 관광객들은 언제나 뜯어먹힐 준비를 하고 오니까 당근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한 동네에서 30년, 20년씩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는 거기 걸맞게 오래된 단골들이 있어서
아무리 값이 더 비싼 다른 바가 근처에 있어도 값을 속속 올려 받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늘 자기가 가던 곳에 가요.
그런 곳에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들어가 보면 소외감 느끼기도 해요.
이미 바의 주인과 단골은 서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단골들이 어떤 커피를 어떻게 마시는지 바리스타 아저씨는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이 들어서면 알아서 커피를 척 만들어서 내줘요.
어쩌면 그 둘은 각자의 가족이 모르는 서로의 비밀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토토칼초 하느라고 아줌마 몰래 몇 백 유로를 날렸다든지 뭐 그런 거ㅋㅋㅋㅋㅋㅋㅋ
좀 큰 바들은 HD 화면의 텔레비전을 마련해 놓고 주말에 광고를 해요.
"오늘 저녁 몇시, 스카이 티비에서 하는 무슨 무슨 축구경기 생중계"
이탈리아 리그 경기는 유료채널이기 때문에
이렇게 바에서 경기를 보여주기도 해요.
동네의 평범한 바리스타는 커피를 내리며 맛과 향을 논하고 원두의 품질을 감별하는
아티스트 간지 철철의 예술가라기 보다
쉴 사이 없이 떠들면서 단골 손님 친구들에게 카더라 소식통도 해야 하고, 불평에 맞장구도 쳐야 하고,
빠니노나 트라메찌노도 만들어 진열하고 식기 세척기 돌리고 테이블도 치우고 돈도 계산해야 하는
멀티플레이의 실용 직업이에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들거 같아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이 동네 사람들은 떠들지 않고 조용하면
병이 났거나 이상이 있는 거거든요ㅋㅋㅋㅋ
바리스타는 대부분 남자들이에요.
아이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 짝귀걸이를 한 녀석들부터
무려 50년간 바리스타 일만 하셨다는, 마에스트로의 품위를 풍기는 할아버지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요.
일가족이 바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바리스타였던 아빠는 테이블을 치우고
엄마는 계산대에, 딸은 빠니노를 만들고 아들은 바리스타 현역으로 뛰는 식이에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남자 바리스타의 비율이 압도적이에요.
영어에 약한 사람들이다 보니, 어쩌다가 낯선 바에 들어가면
내 동양 얼굴을 보마자 '웰컴, 왓 두유원트? 커피?' 이러면서
영어의 만용을 부리는 애송이 바리스타들도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나 영어 할 줄 알아!'라는 자랑스러움이 얼굴을 휘황하게 비추고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맞장구 쳐주는게 상책ㅋㅋㅋㅋㅋㅋ
이탈리아말 모르는 척하면서
'와우, 캔유 스핔 잉글리쉬? 원더풀! 댓츠 그뤠이트!
웨얼 해브 유 런드 잇? 앱솔룰리 펄펙트!'
엉터리 영어로 치하를 하면 카푸치노에 코코아 가루가 컵받침에까지 쌓일 정도로 함박눈처럼 뿌려줘요 ㅋ
이건 만국 공통인지 모르겠는데
남자 바리스타들이 여자들에게 훨씬 친절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네들이 칭찬을 물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얘네들이 하는 입에 발린 찬사를 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ㅋㅋㅋㅋㅋㅋ
이건 전부 다 서로의 하루를 즐겁게 만들어 주는 기분 좋은 멘트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전자동 커피 기계가 비싸기 때문에 저도 그렇고 애들은 전부 그냥 카페띠에라나,
그거랑 똑같이 생겼지만 전기를 꽂아 쓰는 걸 가지고 있어요. 드립식은 사용하지 않아요.
저는 커피 맛 구별을 할 줄 모르고 원두 분쇄기도 없기 때문에
원두 가루는 수퍼마켓 커피 코너에 가서 아무거나 한 봉다리 집어 와요.
우리 동네 수퍼에는 주로 라바짜가 있어서 대부분 그걸로 사와요.
라바짜도 종류가 여러가지던데 그것도 전 맛을 구별할 줄 몰라요. 그냥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마셔봐요.
입맛이 예민하지 않다는 것과 입맛이 고급이 아니라는 건 특히 외국에서 좋은 거 같아요.
돈 들 일이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커피 자판기가 있긴 있어요
하지만 여간해서는 그 자판기를 잘 이용하지 않아요.
자판기는 커피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기는 거 같아요.
그래도 요즘 자판기는 라바짜나 이런 브랜드를 걸고, 작은 1회용 포장 커피를 자동 추출해서 뽑아내는
고급 자판기들이에요.
그래도 자판기 커피 마시느니 사방에 널린 바를 찾아가요.
자판기의 특징은 대부분 잔돈을 안 줘요. 커피는 60첸테시미인데 1유로를 넣으면
나머지 40첸테시미를 안 준다는……….
그래서 딱 맞게 동전을 투입해야 덜 억울해요 ㅋㅋㅋ
자판기가 무지 복잡한데………….
에스프레소, 카페 룽고, 카페 마끼아또, 카페라떼, 라떼 마끼아또, 모카치노, 카푸치노…………
제가 학교 자판기에서 모든 걸 다 한 번씩 실험 삼아 마셔본 결과
에스프레소와 카페 룽고가 똑같고
카페 마끼아또, 카페라떼, 라떼 마끼아또, 모카치노, 카푸치노가 똑같아요.
그다음부턴 그냥 에스프레소나 카푸치노로 통일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기숙사에서 여기 유학하는 이탈리아 애들한테 주워 들은 소문.
역시 사람은 아우라가 다르고 볼 일이야……….라고 생각하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