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_-;;;
낮에 돌아다녀보니 육수가;; 한 바가지 쏟아지더라구요.
지역에 따라 바람이 살랑이는 곳도 있었으나,
지하철 플랫폼의 훅~한 기운,
전력 수급 제한으로 제가 있는 공간은 5시까지는 에어콘도 아주 약하게 나왔어요.
매미들도 오늘은 지쳤는지 장마철에도 죽어라 울어댔고, (매미는 비가 와도 운다, 라는 좋은 노래가 있죠!)
평소같으면 써라운드 4도 합창인데,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베스트에 보니 94년 여름 이야기가 있네요.
1994년 어느 늦은 밤.... 아니고 어느 여름날이죠!
저 역시 그 해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ㅠ
풋풋한.... 아니고 여드름 박박 난 그악스런 여학생이었던 저는
말할 수 없이 답답한 일상을 음악과 수다, 떡볶이로 풀며
여름 방학 틈틈 당시 3대 나와바리 중 하나였던 성신여대 앞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광화문, 대학로)
(라고 쓰면 싫어하실 분들이 계시겠군요. 닉네임이 좀 그래서 그렇지 조폭 출신 아닙니다ㅋ)
당시엔 에어콘 빵빵 나오는 데가 드물었던 것 같아요.
성신여대 골목 초입에는 불법 복제 테이프 리어카가 즐비했고, 스피커에서는 아마 투투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겠죠?
93년도 대학 가요제 영예의 1위 전람회가 94년 여름 즈음에 1집을 냈던 걸로 기억하고, 용돈을 쪼개서 씨디도 샀죠.
집에 가봐야 딱히 시원하지도 않고 친구와 저는 혀를 할딱이며 떡볶이집, 옷가게 등을 훑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늘 불시에 찾아오는 게 서사의 불변 원칙~!
이글대는 아스팔트 위에서 몸을 흐느적대며 얼굴이 벌건 아주머니 한 분이 저희의 팔을 꽉 잡는 거였습니다.
날도 덥구마 짜증이 팍! 나면서도 뭔가 싶었죠.
'학생들, 헌혈하고가~ 응? 남도 돕고 그래야지~ 선물도 줘!'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당황스러운데다가 이 더위에 피까지 뽑아야 하다니 주저했지만
아주머니의 급친절한 표정과 드센 손사위의 부조화에 잠시 정신이 나갔는지
저희는 어느새 헌혈의 집 2층인가, 3층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소녀시대가 한창 인기일 때 계단 하나 올라가면 태연, 하나 더 올라가면 윤아 이런 식으로
혈기 왕성한 청년들을 독려했다지만, 그 때도 하여간 누군가가 헌혈 공익 광고 속에서 웃고 있었어요.
담당 간호사 언니는 헌혈의 의의를 역설하면서
이 기회에 혈액형도 다시 확인하고 (혹시 출생의 비밀 헉 ㅠ)
에이즈 음/양성도 알 수 있고 (막상 결과지를 받기까지 떨리긴 했습니다;;)
하여간 좋은 거다 막막 어리둥절한 저희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문제는 헌혈하려면 체중 제한이 있는데,
저는 다행이지만 결국 불행으로 마지노 선에서 500그램이 모자랐습니다.
간호사 언니는 아주 잠깐 당황하더니 하하호호 밥 먹기 전이라 그렇다면서
하루 생활 중 표준 수치는 아니니 괜찮다고 침대로 막 밀었어요 (말이여 막걸리여~;;)
우리는 불편한 교복을 입고 그대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 와중에 저보다 키도 크고 등빨도 좋은 친구는 글쎄 피가 아니라 노랑 국물...같은 혈장을 뽑혔고
저는 선홍빛의 그러니까 당시 문구계의 루이비통급은 됐던 일제 '플레이 컬러'의 핏빛 같은 그런 색의
액체가 뽑히는 광경을 확인했죠. 갸녀린 팔뚝 (네네 그 때는 그랬습니다 ㅎ)에 굵은 바늘이 연결되고
비닐관을 타고 액체가 올라가는 동안 정맥을 불룩불룩.
더 이상의 반항은 무의미하단 걸 감지하고 저희는 얌전히 누워 피가 모자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ㅠㅠ
기증식이 끝나고 침대에서 내려 오니
수고했다며 제크 크래커 하나와 CD를 주더군요.
설핏 트랙을 보니 유명곡이길래 신난다 했는데,
베어리어스 아티스트의 컴필레이션 음반도 아닌 B급 가수들의 컴필이더군요.
그러니까 아 윌 올레이즈 러뷰를 나훈아 아니고 너훈아가 부르는 느낌이랄까요;;;
기분 탓인지 다리를 후들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니
햇살은 반짝, 공기는 헌혈 하기 전보다 세 배는 더 후끈,
그런데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었어요.
골목 초입 왼쪽엔 꽃파는 리어카가 있었고 신문 가판대도 같이 있었는데,
호외요~ 호외~
1면에 김일성 사망이라고 핏빛 글씨로 대문짝만하게 사진이 있더군요.
분단 한국에겐 베를린 장벽 붕괴보다 어쩌면 더 와닿을 만한 사건이었을까요.
우리는 잠시 멍~ 저게 과연 사실일까?
목에 붙은 혹이 유난히 강조된 그 사진을 보면서 순간 현실이 아닌 것 같은 그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태극당에 가서 빙수를 먹었나 그랬습니다.
문제는 바늘 꼽은 자리에 멍이 들고 한 일주일 간은 빈혈로 고생했다는 거.
그 당시 트라우마로 아직까지도 헌혈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몸무게 제한선은 가뿐히 넘었는데 말이죠 ㅋㅋ
그 때 소중한 혈장을 내어 준 그 친구도 참 보고 싶네요.
모두 여름 건강히 지나보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