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찬란한 것을 이야기하라

조회수 : 1,262
작성일 : 2013-08-02 08:31:41

 

요즘 나리꽃이 한창이네요. 주황색에 검은 반점이 있는 이 꽃은 여름철 산야에서 제일 흔한 꽃입니다. 저희집 마당에는 종로 5가의 꽃시장에서 사온 나무에 딸려온 비늘인지가 싹을 틔워서 몇 포기가 돋더니 매년 너무 번져서 걱정인, 생명력이 아주 왕성한 놈입니다. 입 줄기마다 주아라고 불리는 씨가 맺히는데 그게 땅에 떨어지면 곧바로 싹으로 돋으니까요. 처음에는 외잎 한 줄기가 돋다가 4~5년 자라면서 구근이 두툼해지면 꽃을 피웁니다. 보통 다른 식물은 꽃이 피고 진 뒤에야 씨가 맺히는데 나리는 꽃을 피우지 못하는 어린 놈도 주아는 만들어내니까 번식력이 더 남다른 것 같습니다. 나리꽃의 구근은 옛날에는 먹기도 했다고 하네요.

저희집에 있는 것은 나리꽃 중에서도 제일 크고 흔한 참나리입니다. 나리꽃은 전세계에 100여종이 있는 데 그 중 10여종이 한국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하늘나리 땅나리 하늘말나리 솔나리 섬말나리 등 이름도 다양하고 색깔도 분홍부터 주홍까지 다양합니다. 땅을 향해 눕는 꽃이 있는가 하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내미는 꽃도 있습니다.

보통 나리꽃의 크기는 종류에 따라, 영양상태에 따라 30센티도 못되는 것부터 1미터가 넘는 것도 있습니다. 참나리가 제일 큰 종류에 속합니다. 저희집에 있는 것 역시 꽃이 피는 건 80센티에서 1미터 정도 되는듯한데 실상 산에 가서 보면 참나리꽃이 이 정도거나 더 적거나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참나리꽃을 2미터가 넘는 것을 강원도에서 보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이만큼 자라기는 한다는군요. 그러나 사진 찍힌 것은 외국에서였지 한국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렇게 거대하게 장엄하게 피어난 꽃을 한국에서 보았습니다.

제가 4년 전 강원도 정선으로 아이들과 휴가를 갔다가 평창과 횡성 원주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워낙 길치라 서울행이라는 도로표지판만 따라가던 길이라 정확히 어느 동네인지 이름을 모릅니다. 가파른 산에 있는 소떼를 본 다음, 횡성에 있는 안흥찐빵집에 이르기 전에 지나간 동네라 평창에서 횡성 사이거나 횡성에 있는 동네쯤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정말 거대한 나무 같은 참나리가 슬레이트 지붕을 한 시골집 옆에 서있었습니다. 8월초 딱 지금 철이었습니다. 주황의 꽃송이가 무성했습니다. 차를 멈춰세우려다가 고속도로가 막히기 전에 국도에서 원주-서울간 고속도로 올라타야한다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안흥찐빵집에도 들러야했으니까요.

어찌나 장엄하던지 오는 내내 그 꽃 생각만 했습니다. 곧 다시 여름철에 그 길을 차로 달려서 꼭 그 모습을 다시 보겠노라 했지만 지금까지 실행을 못했습니다. 그 후로 영월 평창 계속 강원도로 휴가를 갔으면서도요.

허버트 조지 웰즈가 지은 소설 중에 ‘담장의 문’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다섯살 때 길다란 담 사이에 초록문을 발견하고 그리로 들어가지요. 거기에는 정말 마음 편안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고 강아지처럼 순한 표범도 있고 아름다운 소녀도 있었습니다. 꿈결 같은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그곳을 벗어난 소년은 다시 그곳으로 가보려고 하지만 이상하게 그 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점점 자라면서 몇 번 그에게 그 문이 나타나기는 했는데 그는 입학시험을 치르러 가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 문을 봐도 들어가지는 않지요. 나이가 들어서 그는, 왜 그 문을 그냥 지나쳤을까, 크게 후회하게 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사실은 어쩌면 사소한 것이고 그 문이 그에게는 이 세상 최고의 기쁨과 편안함을 주던 곳인데 라는 생각을 하지요. 그리고 얼마 후에 그는 이 문을 다시 찾았는데…단편소설이니까 한번 직접 읽어보세요. 오늘 칼럼을 쓰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영어로는 전문을 소개해놓은 곳도 있더군요. 하하하

사실 오늘 이야기는 저 소설의 전체 주제와는 좀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소설 속 주인공이만난 문 속 세상이나 제가 본 거대한 참나리꽃처럼 우리는 살다가 어느 순간, 현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만큼 놀라운 광경을 보고 놀라운 사연을 겪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순간은 사람들에게 삶을 되돌아보게 하지요. 나중에 곰씹을 때도 다른 아무 생각 없이 오직 그 순간만 생각하게 하는 적멸감을 주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 적멸의 순간을 많이 느끼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공의 시간, 아무 생각도 없는 시간, 고요의 시간, 평화로운 시간. 그래서 제가 겪은 신비로운 장면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제 휴가들 가실텐데요. 무엇을 느끼자, 보자, 그런 각오 없이 그냥 자연 속에 던져져서 어느 순간 문득 이런 놀라운 장면을 부딪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모두 매일 조금씩 더 고상하게 삶을 살아봅시다.  

☞ 2013-8-1 서화숙의 3분칼럼 팟캐스트로 듣기

http://news.kukmin.tv/news/articleView.html?idxno=408
IP : 115.126.xxx.33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햇살
    '13.8.2 9:30 AM (115.91.xxx.8)

    전 아이들을 통해 이런 소중한 순간을 많이 느끼는데요..
    내품에 폭 안겨있을때, 딸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 순간, 제가 퇴근하면 달려와 안기는 몸짓 표정..

    이런 순간들을 맞이할때마다..잠깐 시간이 멈추웠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스치곤 하지요..
    특정한 곳에 아름다운 순간은 아니지만..일상에서 찾는 이런 소중한 순간, 시간들도 참 소중한거 같아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308399 시스템복원? 7 컴맹 2013/10/16 716
308398 [펌] 역사왜곡류 갑 드라마 기황후(여걸에서 영웅으로 그려진다는.. 3 이달 21일.. 2013/10/16 1,068
308397 해리코닉쥬니어..미혼인가요? 1 ,,, 2013/10/16 481
308396 편하게 입을 바깥옷 골라주세요.. 4 2013/10/16 967
308395 눈에 순한 아이라이너 없을까요? ........ 2013/10/16 1,228
308394 혼자 3박4일 제주도 가요~ 17 첨으로 2013/10/16 2,296
308393 남편이 해외근무 간지 2주 되었는데 *비로 고생하나봐요. 11 ..... 2013/10/16 2,197
308392 영상미 뛰어났던 드라마를 꼽는다면.. 26 2013/10/16 2,361
308391 ”MB 최측근 천신일 회장에 '금메달 120돈' 상납 의혹” 세우실 2013/10/16 501
308390 "깜짝이야" 머리없는 닭 거리 활보 ㅋㅋ 2013/10/16 1,183
308389 국제 연애 국제결혼은 실패가능성이 높은건가요?? 13 베스트글보고.. 2013/10/16 5,189
308388 유리창에 붙여 유리창 청소하는 기구 파는곳 아시는분 있으실까요?.. 1 유리창 2013/10/16 651
308387 음식알레르기로 아픈데 어떻게 해야할까요?? 4 .. 2013/10/16 1,517
308386 박근혜 대통령은 진짜 효녀일까? 3 샬랄라 2013/10/16 513
308385 전지현은 종아리근육이 울퉁불퉁한데, 다른 연예인들은 다 미끈한 .. 6 ... 2013/10/16 6,298
308384 82 신고기능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82시스템 2013/10/16 278
308383 제주도 비행기티켓 싸게 나오는것 어디서 알아보나요? 2 ... 2013/10/16 977
308382 장흥무산김 담백하니 맛있네요 2 오울 2013/10/16 636
308381 요사이 나꼼수 소식이네요 9 토깡이 2013/10/16 1,932
308380 정수기가 더럽나요? 4 고민중 2013/10/16 1,294
308379 전지현 다리는 확실히 안예쁘네요 14 ㅇㅇ 2013/10/16 9,355
308378 아....전 82자게가 너무 좋아요 15 ㅎㅎㅎ 2013/10/16 1,536
308377 극세사 카펫,바닥요 대용으로 어떨까요? 2 카펫 2013/10/16 672
308376 영어 초중등 프랜차이즈 어느 곳이 좋을까요?? 4 학원 2013/10/16 953
308375 초록마을 바다애참치와 참숯칫솔 써보신분계세요? 4 괜찮나요??.. 2013/10/16 1,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