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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이 청년을 누가 내게 보냈을까 - 노무현

참맛 조회수 : 2,128
작성일 : 2013-07-19 20:34:04
이 청년을 누가 내게 보냈을까 - 노무현
http://haein.or.kr/contents/index.html?contents=default_view&webzine_no=86&ct...
--  노무현이 1996년3월[169호] 월간 해인에 기고한 글 --
인과응보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고 있다. 원인은 반드시 결과를 만들고 결과 역시 원인 따라 보답을 받는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더욱 더 인과응보의 오묘한 섭리를 깨닫게 된다. 저 서슬이 푸른 권력의 그늘 아래서 무슨 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사람들……. 심지어 신성한 종교까지도 짓밟아 법란으로 지탄받은 사람들이 역사의 준엄한 심판대에 올라 있음을 볼 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이 인과응보며 중생들이 인생을 얼마나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
내가 마치 대단한 인생 철학이라도 설파하듯이 늘어놓다 보니 조금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게 느껴지며, 이 역시 오만이라서 인과응보의 교훈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결과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러나 내가 체험한 아주 소중한 교훈이기에 이해를 부탁드리고 싶다.
내가 이른바 인권변호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때마침 전 국민의 시선을 한데 모은 5공 청문회 덕택으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는 정치인이 되었다. 이것은 정치 초년생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청문회 스타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치루었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문제이든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그야말로 요술방망이를 가진 사람인줄 알고 찾아와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막무가내로 부탁했다.

그러나 이들이 부탁하는 일들이 억지스러울 때도 있지만 조용히 애정을 가지고 들어보면 모두가 안쓰러운 사연이고 서민들의 삶에서는 그만큼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만일 내게 힘이 있다면 모두 해결해 주고 싶은 그런 일들…, 그러나 과연 내가 해결해 준 일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처음에 얘기한 소중한 체험도 그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무려 칠 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의원회관으로 청년 몇 명이 찾아왔다. 전혀 기억이 없는 생면부지의 청년들…, 그 가운데에는 소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아주 나이 어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로에 '딸배'라고 했다. '딸배'가 바로 신문배달을 의미한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당시 그들은 아주 열악한 조건에서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자기들도 권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청문회를 보면서 또는 사회를 풍미하는 민주화의 열풍 속에서 그들도 이제 자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결을 해야 했고 그러자니 이 역시 기득권 세력과 첨예한 마찰이 빚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득권 세력들은 '딸배'들이 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가졌고 또 그 힘은 막강한 언론사를 배경으로 했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현실적으로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솔직히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 줄 어떤 시원한 대답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이 내게 말했다. 그냥 자신들이 투쟁하고 있는 현장을 한 번 방문이나 해 달라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자기들은 용기를 갖게 된다고 했다.
종로의 한 동네 다 무너져 버릴 것 같은 한옥집에서 나이 어린 '딸배'들이 말 그대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노예 같은 생활

을 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었다. 전기가 끊기고, 폭력배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일곱 명이 해고되는 등…, 막상 그 모습을 보자 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무슨 짓을 했다고 폭력을 동원하는가. 나는 물러설 수가 없었다. 최루탄이 비오듯이 쏟아지는 속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던 투지가 되살아났다. 나는 내가 아는 법지식을 동원해 불법적인 일들을 조목조목 지적했고 말문이 막힌 관리인의 모습을 보면서 딸배들의 얼굴은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돌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다음 날, 그 신사의 기자 한 사람이 의원회관에 나타났다. 기자의 첫 마디는 이랬다. "정치가가 정치나 잘 하면 되지 이런 일에 왜 참견이냐"고. 나도 대답했다. 기자는 기사나 잘 쓰라고…….

그 후 딸배들은 삼 년이나 재판을 진행했다. 그리고 승리했다. 그 뒤로도 '딸배'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권익을 찾는데 더욱 용기를 가질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생활 조건은 향상이 되었다고들 감사해 했다. 그로부터 칠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칠 년은 내게 무척 긴 세월이다. 그 동안에 3당 야합이 있었고 그것을 거부했던 나는 원칙과 명분만으로 국회의원과 부산시장 선거를 치루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전화가 온 것이다. 전혀 예상치 않은 사람으로부터였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는 나로서도 이 전화만큼은 특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한 사람은 바로 '딸배'였다.

칠 년 전, 바로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찾아왔던 '딸배'의 지도자.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는 아직도 '딸배'들을 위해 일하며, 한복 디자이너로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끝에 그가 나에게 한 말은 또 한번 나로 하여금 인과응보를 생각하게 했다.
그는 이번에 은혜를 갚겠다는 것이다. 무슨 은혜를 갚느냐고 했더니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웃음의 의미가 자원봉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망설여졌다. 물론 더 없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게 인생을 제법 치열하게 살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늘 가슴속에 남는 의문이 있다. 나는 과연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있는가. 이 다음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 내 자식들은 애비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마지막 가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스스로에게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단 한 마디. "너는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간이었다." 라고 할 수 있는가.

시인 윤동주 선생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소망했다. 내가 어찌 감히 윤동주 선생과 비교를 할 수 있을까만 그래도 나 자식에게만은 부끄럽지 않은 애비가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생은 자기가 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나쁘게 살면 나쁜 결과를, 바르게 살면 좋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생은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오묘한 부처님의 섭리가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하늘 그물이 성긴 것 같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성현의 경구가 새삼스럽다.
IP : 121.151.xxx.203
1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가브리엘라
    '13.7.19 8:45 PM (223.33.xxx.204)

    그립습니다...

  • 2. ...
    '13.7.19 8:47 PM (211.199.xxx.179)

    하늘 그물이 성긴 것 같지만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 사후에 말고 생전에 일어나면 안될까나...

  • 3. oops
    '13.7.19 8:49 PM (121.175.xxx.80)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특정 종교를 떠나.....인간 노무현은 이미 생전에 어느 경지에 다달았던 분이죠.

    거의 극단적인 인간유형을 연이은 대통령으로 두었던 우리들,
    이 다음 날 우리의 후손과 역사는 과연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지.....ㅠㅠ

  • 4. 자끄라깡
    '13.7.19 8:50 PM (221.145.xxx.147)

    가슴이 뭉클하네요.
    일말을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텐데

    서민도 열심히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르쳐 준 사람
    정의가 뭔지 보여준 사람, 보고 싶습니다.

  • 5. 고장난 라디오
    '13.7.19 8:50 PM (182.210.xxx.85)

    잘 계시나요?
    보고싶어요. 나의 대통령!!

  • 6.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13.7.19 8:53 PM (1.231.xxx.40)

    또 눈물이....
    어떤 경지에 다다랐던 인물이었다는 거...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 7. ㅜㅜ
    '13.7.19 9:01 PM (211.246.xxx.63)

    저도 억울하고 힘든 상황이어서 저런분 한분 한분이 아쉽네요
    저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노무현대통령같은 분은 그분 한분만 아니예요
    선의있고 악의없고 거기다 약하지않은 일부 분들은 다들 저 분과 동급이라고 생각해요

  • 8. 보고싶어요
    '13.7.19 9:11 PM (125.186.xxx.64)

    나는 언제나 당신을 생각할때 나의 대통령이라고 말해요. 당신은 영원한 나의 대통령입니다.ㅠㅠ

  • 9. 보고 싶습니다.
    '13.7.19 9:23 PM (221.159.xxx.134)

    캡틴, 오 마이 캡틴, 오 겡끼데스까~~~~~?

  • 10. 훌륭하신 분
    '13.7.20 12:56 AM (118.209.xxx.64)

    그리고
    이다위 나라
    이 더러운 국민들보다
    너무도 훌륭하셨던 분.

    미국이나 독일이나에 태어나셨더라면
    칭송받으며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을 터인데
    어쩌다 이따위 나라에 태어나셔서.... ㅠ.ㅠ

  • 11. 그리운 분
    '13.7.20 1:12 AM (218.49.xxx.107)

    그리고
    이다위 나라
    이 더러운 국민들보다
    너무도 훌륭하셨던 분.

    미국이나 독일이나에 태어나셨더라면
    칭송받으며 좋은 일 많이 하시고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을 터인데
    어쩌다 이따위 나라에 태어나셔서.... ㅠ.ㅠ 2222222222222222222

  • 12. 이 땅의 무수한 딸배들
    '13.7.20 8:59 AM (59.187.xxx.13)

    주말도 없이 촛불을 켜지만 젖은 손을 잡아 줄,
    우리들이 투쟁하고 있는 현장을 한번 찾아달라고, 그것으로 힘을 얻을 수 있겠다고 머리라도 조아려 볼 노무현이 그리운 만겁같은 시간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주던 바보 노무현의 손을 허망하게 놓아버린 죄값을 치루는것이라고 생각해거리면 차라리 암흑같은 이 시간들이 견뎌지기도 합니다.

    당신을 누릴 수 있었던 시절이 딸배들에게 최고어 호사였음을 절규같은 고백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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