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무슨 말이나 글로
뭐라 위로를 드려야할지
참으로 안타까우면서 난감합니다.
지난 64년을 살아오면서
국민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고서도 가난으로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형들이 공부하러 서울로 가고 없는 시골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삶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없이
막연하게 오색 환상의 꿈을 꾸며 살다가
18살 나이에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초라해
없는 살림에 방앗간에 방아를 찌러 가서
쌀 한 말을 부모님 몰래 팔아
지금은 9급 이지만
당시 5급 을 공무원 시험에 필요한 책을 사서
일 하기 싫으니까 공부를 하는척 한다며
제가 있는 방문을 작대기로 후려치며 분노하시는 아버지의 역정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부모님을 보다 편하게 모시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보무님을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는 신념으로
꼭 필요한 일만 하고서는 공무에 전념해
정확히 4달 반 만에
처음 치름 5급 을 교정직 필기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합격의 기쁨도 잠시
당시만 해도 시험에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제한이 있었던 때라서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다니던 5째 형님의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아
막내형님이 5째 형님의 이름과 출생년도를
연필을 깎는 면도칼로 긁어내고
볼펜으로
제 이름과 출생년도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 중의 짓거리였지요.
그리고 6 달 후에 있는 체신부 5급 을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고
이어서 4달 뒤 있은 서울시 5급 을 행벙직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때는 일하기 싫어 공부하는척 한다며 구박하시던 아버지께서도
국민하교 밖에 안 나온 제가
당시 고등하교를 졸업하고서도 시험에 번번이 합격하지 못한
동네 친인척도 합격하지 못한 공무원시험을
제가 혼자 공부해 합격했다며 자랑스러워 하고는 하시었습니다.
이 때는 5급 공무원시험에 학력제한이 철폐되어
체신부와 서울시에 합격자 등록을 마치고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소위 고시를 한 번 도전해보라는 형들의 격려와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시법고시를 준비하는 도중에 영장이 나와
군대에 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이 병무청에 근무하는 친척분게 손을 쓰고
저도 훈련소만 들어갔다가 그날 나오게 될 것이라는
친척분의 말만 믿고 훈련소에 입소했으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군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군대에서 월남전에 파병되어
식민지 유산이 남긴
먕븐없는 더러운 이념의 대리전쟁에 참전하고
귀국후 얼마되지 않아 제대후 바로 서울응암우체국과 서울시에 발령이 나고
그리고 길지 않은 공무원생활과
상사의 일방적인 횡포에 멱살을 잡고 시장실에 가려던 소동을 벌인 후에
못다한 사법시험 도전을 위해 서울시에 사표를 쓰고 나온 것 까지는 좋았으나
이어진 파란만장한 쌂의 극심한 굴곡을
어찌 제한된 사람의 말과 글로서 다 말 하고 쓸 수 있을까요?
서울대를 나와 중학교 교직에 있다가
채 피지도 못하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자심의 삶을 마감한
아홉 아들에 단 하나 있던 바로 아래 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날은
어찌 하늘도 그리 서럽고 슬프도록 푸르고 파랗던지...
몇 년을 뒤를 돌오 볼 새 없이
앞을 향해 줄곳 바쁘게 달려오던 중
참으로 오랫만에 오늘 아침
경영씨께서 주신 쪽지를 접하고서
지난 날을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작년에 언니를 먼저 보내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언니께서 떠나시고 혼자 남은 형부마져
곧 보내셔야 하는 경영씨의 상흔과 슬픔을
어찌 남인 제가 다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언제부턴가 죽믕에 대해
언제 가더라도 담담하게 갈 수 있겠다는
삶도 죽음도 긍정하게 되면서부터는
삶이나 죽음에 공포를 불안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언제 갈지 모르고
바로 지금 이땅에서 삶을 마감하고 떠날지라도
미련과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루 하루 주어진 시간을
나름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살며
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을 하다가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먼저 가신 언니에 이어
다시 가실 날을 앞두고 있는 형부를 위해
햑교를 쉬시는 매 주말을 형부의 간호와 뒷바라지를 위해
쉬지도 못하고 대구에서 서울을 오가시며 헌신하신
경영씨의 지극한 정성과 애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언니 뒤를 따라
가실 날을 눈 앞레 두고 있는 형부를 두고
하시는 일이 가르치심이라
자신과 가족의 생활을 위해 학교를 빠지지 못하고
오늘 수헙을 위해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을을 돌려야 하는
서럽도록 안타깝고 애처러운 마음을 생각하니
어찌 어떤 사람은 사는 일이 이리 고통의 형극인지
신이 정말로 존배한다면
그 신에게 따지고 싶습니다.
사람이 한 번 나서 가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스를 수 없
상투적인 운명과 섭리를 운운하기에는
어제
잘 하지도 못하시는 맥주캔을 사서 들고
열차에 올라
끊임벗이 흐르는 눈물과 맥주를 함께 마시며
주체하기 어려운 고통과 아픔에
혼자서 소리없이 속으로만 통곡하며 오열하셨을 경영씨께서
닥친 현실을 보다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받아들여
하루속히 자신을 추스리고 자신을 찾아
자신을 사시길 바라는 마은 간절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열린 창박으로
마지만 시퍼렇게 묻어날 것 같은
시리도록 파랑고
슬프도록 투명한 하늘을 마라보며 이 아침에
우리 진정한 이웃이 되어
남은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며
이땅에서 친구가 되기를 청합니다.
경영씨를 비롯해
제 이웃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이웃이 되도록 쉬지 않고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