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점심먹으면서 ebs 라디오를 듣는데,
그 프로가 책읽는 라디오..인가 하는거예요.
단편소설을 읽어주는데, 그날의 소설이 '그밤의 경숙' 이었어요.
내용은 콜센터 직원으로 고객과 다른 직원과의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숙이
육아와 가족안의 빗나가는 소통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이 그려져있거든요.
밥을 먹으면서 무심코 라디오를 틀어놓고 듣다가 안듣다가 하는게 습관이었는데
그날은 책에 그려지는 주인공의 심리에 너무 몰입해서 듣게 되었어요.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애들을 키우는 문제,
연로한 부모님 모시는 문제로 친정에서 형제들끼리의 갈등,
대출받아서 마련한 집의 융자 갚는 문제,
남편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운전중에 퀵서비스 남자와 도로 한복판에서 싸움이 날뻔한 거.
집으로 가는 길을 넘어서 낯선 길로 남편이 마구 주행하던 거.
그 차 안에서의 남편과의 말싸움..
그리고 사고..
거의 총체적인 난관이죠.
밥을 먹으면서 듣다가 제가 심장이 쿵쾅거리고 식은 땀이 나더라고요.
우리 애들 키우면서 직장 다니면서
정말 마지막 한방울의 힘까지 쥐어 짜내면서 일하던 제 젊은 시절이 떠올라 너무 괴로왔어요.
그때 시댁이고 친정이고 저희에게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많은 짐만 되었구요.
더우기 첫째는 많이 아파서 죽을뻔한 고비도 여러번 넘겼는데
그때 가족 안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러가지 힘든 일이 많았어요.
돈은 하나도 없이 거의 빈민이었지, 애는 병원에 입원해서 죽네사네 하지,
일은 해야겠지.
시댁이고 친정이고 도와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상처만 주지..
도대체 우리 애가 과연 살기는 할까..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 모든 것이 다 어둡고 긴 터널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애들 어릴 때 제가 거의 고갈되기 직전의 정신상태로
이를 악물고 맨땅에 헤딩하면서지푸라기라도 잡으면서 버티던 시절이
그 소설속의 경숙의 심리에 오버랩 되면서 머리 속에 그대로 재현되는 거예요.
그 라디오 방송을 들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 제가 마음이 안 다스려져요.
젊은 시절의 힘들었던 상황이 바로 지금도 그런 것처럼 느껴지고,
괜히 마음이 다급해지고 신경이 곤두서고 그래요.
사실 요즈음엔 애들이 다 커서 별로 제가 집안일이라고 해봤자 힘들게 없어요.
지금도 직장 열심히 다니지만 지금은 제가 단련이 되서인지 예전과 같은 스트레스는 아닙니다.
집안 살림도 애들이 학기중에는 집을 떠나 있고
방학에 와 있으면 애들이 빨래니 청소니 다 해줘서 제가 몸은 안 힘들어요.
이제는 그렇게 힘든 날 모두 지났으니 마음 편히 지내면 되는건데 왜 이러는 걸까요.
그 단편소설 들은 뒤로는
제가 마음 속으로 몸살을 하고 있네요.
평소에는 6시에 깨어서 상쾌한 마음으로 아침준비하고 운동하고 출근하는데
요즘은 4시 반, 5시반.. 이렇게 깨서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서야 부랴부랴 황급히 준비하고 그러네요.
아침 일찍 깨니 낮에는 졸립구요.
신경만 마구 곤두서있고 말이죠.
아무래도 제가 예전에 너무 힘들게 살았던 것이 외상으로 남았나봐요.
좀 많이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