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추모 4주기 헌정시집 <꽃, 비틀거리는 날이면>에 수록된
시인 김태형의 시입니다.
절벽
-김태형
바라다보는 것만으로 절벽은 아름답다
실개천 건너 그늘진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깎아지른 절벽은 높이마저 지우고
아름답도록 공허하다
다시 그 이름을 찾아갔다
느릿느릿 트럭이 앞서가며 모래와 부서진 자갈을 뿌렸다
경사진 길을 오르지 못할까 싶어 바짝 따라갔다
바람이 얼어붙은 곳까지 다다랐다
제 가지를 쳐서 소나무가 묵은 눈을 흩날렸다
절벽 위에서 절벽은 절벽을 다 내던진다
누가 이곳까지 올라왔는지
가만히 서서 긴 숨결을 한없이 내려만 놓고 있었는지
가파른 허공이 시퍼렇다
내 입술에 묻은 하늘이 파르르 떨렸다
한차례 묵은 눈가루가 흩날리자
한 줌의 그림자가 햇볕 속에서 선명하게 반짝였다
다 던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절벽은 절벽을 내려놓게 된다
다 내려놓고 저만치 홀로 개울을 건너간 이가 있다
그곳까지 건너다보인다면 이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자
당신도 나도 이 세상도 그때만큼은 조금은
김태형은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로큰롤 헤븐』『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코끼리 주파수』, 산문집 『이름이 없는 너를 부를 수 없는 나는』이 있다.